북촌 풍경2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 중앙에는 경복궁 담과 분리된 동십자각이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있다.
1901년 프랑스 청년이 바라본 한양 풍경
" 남산을 거쳐 한양에 도착하는 사람은 나뭇가지 사이로 초가지붕으로 가득 덮인 큰 마을을 볼 수있다.
처음에는 굴뚝 연기에 휩싸인 이 초가가 가득한 마을이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끝없이 늘어선 초가들과 시가를 둘러쌓고있는 성곽,
웅장한 성문을 보게되면,
더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어진다.
여기가 바로 한양이며 한양은 겉보기가 볼품없는 농촌의 아낙 같아 보인다.
초가들은 꾸밈없어 보이며 무척 가난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처량하지는 않다."
(가난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 조르주 뒬크로,프랑스 1894~1927)
고래등 같은 기와집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
그들은 한양성에 들어가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서
삼시세끼 쌀밥을 먹는게 최고의 꿈이었다.
오늘날 기와집과 쌀밥은 서민용이되었다.
서울에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
선조들이 그토록 원했던
꿈을 모두 이루었다.
1904년 스웨덴 기자가 바라본 황실 장례식풍경
"황제의 얼굴은 개성이 없었으나 원만해 보였고 체구는 작은 편이었다."
"황제의 옆에 서있는 태자는 아주 못생긴 얼굴이었다.
작고 뚱뚱한 체격에다가 얼굴은 희멀거코 부은듯해서 생기가 없어보였다.
입술은 두꺼워 육감적이었고, 코는 납작했으며, 넓은 눈섭 사이로 주름살이 움푹파여있었다.
노란 두눈은 연방 깜박거리고, 한시도 쉴새없이 이곳 저곳 시선을 둘러대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봐서 찡그린 돼지의 인상을 보는 것 같았고, 무슨 악독한 괴물을 대하는 느낌이들었다."
"내 눈앞에 펼처진 한 폭의 그림은 아마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으리라.
아무리 비용이 많이든 가면무도회 일지라도 여기에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한마디로 웅장했다.
눈이 부셨다.
동양의 찬란함이요 풍성함이었다.
내 눈을 도무지 믿을 수없어서 내가 혹시 꿈을 꾸고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들었다."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W. Ason Grebst/러일전쟁을 취재하기위해 동경에서 영국 무역상으로 위장 1904년 11월 24일 부산으로 밀입국해 1905년 초까지 한국 여행후 1912년 스웨덴에서 여행기를 펴냄)
뜰 앞의 대나무
조선의 선비들은 뜰에 대나무를 심고
푸른 대나무를 바라보며 그 기개를 배웠다.
삼청동
그 곳에가면
볼거리 먹거리 풍성하다.
해영 부부와 함께
이중섭 전시회를 보고
수제비와 막걸리를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