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향기수목원(가평)
나무처럼 / 문인기
굴곡의 세월도 몸에다 무늬로 새기며
꼿꼿이 성장하는 나무처럼
변덕의 계절도 역설로 대하여 품고서
철마다 변화하는 나무처럼
분노의 바람도 유연히 껴안아 굽히며
겸손히 달래주는 나무처럼
한 여름 태양도 앞으로 시원히 가리워
그늘로 초청하는 나무처럼
집 없는 새들이 날아오면 가지를 선뜻
거처로 허락하는 나무처럼
한여름 큰 나무로 자라 베어진다 래도
편안한 벤치로 섬기는 나무처럼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도 하늘을 향하여
팔 벌려 양모하는 나무처럼
경로석을 바라보며/ 한중섭
지하철 열차 칸마다 경로석이
저 만치 구석에 밀려나
승객들의 눈총을 받으며
무겁게 가라앉아있다
떠나야 할 사람들이 기다리는 터미널의 자리처럼
막걸리 취기에 흔들리며
자신을 돌아보듯 나는 경로석을 둘러본다
충분히 늙었다고 자부하는 노인들이 꾸벅이고 있다
먼저 앉을 생각일랑 말라고
난간에 주저앉아 오줌을 쌀망정
난 거기에 앉기가 싫고만
난 아직 쉽게 제껴지는게 싫고만
일자리 없어 어깨처진 청년들에게나 주라지
독한 담배 빨며 께임으로
시들어가는 젊음에게나 주라지
가랭이 벌리고 취해 널부러진 철모르는
계집애들에게 주라지
포대기로 욕먹는 방향 잃은
청와대 그 잘난 인물들에게나 주라지
우리들은, 우리 노털들은
빛바랜 옛신문처럼
한켠에 처밖아 두거나 버려도 좋은 잊혀진 계절일 뿐인가
태극기 흔들고 잘못을 질타하는
시끄럽고 성가신 노년일 뿐인가
젊은 축들아 칼자루 쥔자들아
껍대기만 남은 경로는 그만두고 떠다니는 민초들의
소리를 귀등으로라도 듣고 자신을 돌아보라
우리의 성공을 비웃고 싶으면
실패라도 귀를 기울이라
실패에서 성공을 배운다면
성공에서 실패로 가는 것보다
두 걸음은 빠르리라
우리 노털들에서 시작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손쉽게 제껴 놓고 위험과 제악의
근원처럼 치부해버리는 그것들은
수많은 대안들 중의 하나였고 만인이 검증한고심의
산물이었음을
설익은 뿌연 이상에서 시작하며
정말로 정말로 그것이
그대들을 새로운 어떤 곳으로
데려갈 거라고 는 꿈도 꾸지 말라
우리가 그랬듯 그대들도 함정에
빠져 허우적 댈 것이다
새로운 어떤 것으로
세상은 가야만 한다는 환상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며 함정이다
분칠하고 돈 찍어내 선심쓰고 많은 사람들의 땀을
빼앗겠지만 결국은 쓰레기로 남을
이미 실패한 욕망의 속임수
민초의 세상을 만들겠다던 이념이
노예로 만들어 질곡을 헤매고
물려받은게 없어 품을 판다던
근로약자는 근로조차 세습하여 세상의 열매는
모두 차지하겠다
떼를 쓰지 않던가
행복으로 이끌 이정표는 이념도
종교도 뭣도 아닌 인간 존엄을
가리키고 있음을 명심하라
그리고 그것에서 부터 시작하라
어떤 정의 어떤 결벽증을 위하여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젊음 다바친 충정과 그들이 사랑한 자존심도 적폐로
여겨 가벼히 본다는 말인가
여기서 지금 시작하는 것이
미래의 천국을 준비한다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묶어
두는 것보다 바르지 않겠는가
그밖의 것들은 모두가 헛일이고
그대들의 능력을 넘어선
유혹일 뿐이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이 있다던가
옛 우물에서 건져낸 두레박에서
뭔가 꺼내 새로운 이름을 붙일뿐
중심을 잡아라
그리고 겸손하라
그리고 귀를 기울여 찾아라
세상이 뭘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리도 주장하고 싶은 나를
그대들은 넘어설 방법이 무었인지
온전한 우리가 됐을때
우리는 역사상 그래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