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엽서화

독립공원

Sam1212 2019. 3. 2. 17:18





"선혈하 이 나라를 보소서"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게 하리라.

(성경 마태복음13-30)


독립운동을 했다는 저명 인사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오늘날 얼굴을 들고 다니는지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을 때가 허다할 정도다.

또 광복군만해도 그렇다.

광복군 출신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일부 인사들이

광복군 모자 하나 얻어쓰고 기실 과연 어떤 일을 했는가 하는 것도

 역시 밝히고자 함이다

('돌베개' 부치는말/장준하)


장준하 선생은 우리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독립 투사다.

일제 시대 학병으로 끌려가 쉬저우에서 일본군 병엉을 탈출하여

 7개월 동안 6천리 길을 온갖 사투 끝에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에 도착

광복군으로 활동하셨다.

해방 후 알곡에 가라지나 쭉정이가 섞이는 모습을 보며 분개하며 일침을 가했다.

선생이 가신지 30년이 지났다.

 지금 알곡에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논쟁이 다시 일고있다.

가라지나 쭉정이는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알곡이 값지고 빛난다.




독립문


초등학교 시절 백원짜리 지폐에 독립문이 그려저 있었다.

독립문 앞에 커다란 기둥  2개가 서있어 이상해 보였다.

그 기둥이'영은문'을 바쳤던  돌기둥인 줄을 고등학교 때야 알게됬다. 

문 꼭대기에 좌우 태극기 사이에 '독립문'이라 현판석에 음각되어 있다.  

남쪽 에는 한글로 새겼고

북쪽에는 한자로 獨立門이라 새겼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을 옥죄엇던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 의지의 표현이었다.

북방에서 서울의 관문을 들어서는 중국인 향하여 그들이 읽기 쉽게 한자로 새겨넣었다..

 


"유체찰사가 강화를 못하도록  임진강 배를 모두 없애버려

우리 사절 일행이 왜 진영에 드나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독은  나를 즉시 잡아와 곤장 40대를 때리라는 명을 내렸다"

(징비록/ 유성룡)


"한국인들은 자기나라보다 중국 연구에 더 치중하며

오늘이나 내일보다 과거를 더 예찬하며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중히 여기며

광산에서 금을 캐거나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하며 배불리 먹으며 사는 것보다

굶으면서도  벼슬하는 것을 더 원한다"

(한국 평론 The eductional needs of Korea 1904 10/헐버트)


임진왜란시 류성룡 대감이 중국 장수에게 불려가 빳다 40대를 맞을 뻔한 대목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헐버트가 당시의 한국 사회 모습을  기고한 글이다.

 

1896년 독립문 건립과 헐버트의  글 발표 이후  100년,

영특한 후손들  드디어 자주성을 되찾고

중국인들 면전에서  경제적 문화적 우월감을 뽐내며 천년의 한을 풀게되었다.


요즘 다시 그들에게 빌 붙어 권력의 꿀단지를 빨아보려는 자들이 보인다.

광장에선 자주 독립을 외치고 마이크 잡으면 큰소리 꽝꽝치던 정치인

 북경에 들어가면 300년 전으로 돌아간다.

 황제 앞에서 오금떨리는 모습을 보이며 할 말도 못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대문 독립공원에가 독립문 문루에 새겨진 '獨立門' 다시 한 번 처다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