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엽서화

산딸기

Sam1212 2020. 6. 16. 22:22

산딸기

산딸기

 

6월이 되면

가시덤불 속

살짝 얼굴을 내미는

빨간 알맹이들

난 언제나

그 유혹에 넘어간다

(2020.6.15)

 

"우리는 돌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앞으로만 갈 수 있을 뿐이다.

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혹은 유아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

자궁이나 유아기로 갈 수 없으므로, 성장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인생이란 사막을 거쳐 황페하고 볼모의 땅을

고통스럽게 넘어 점차로 더 깊은 의식의 수준으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면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을 뿐이다."

(스캇 펙/끝나지 않은 여행)

 

"인간은 미지의 환경을 발견하면 그곳으로 잠깐 들어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헤어나지 못하기 마련이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며,

어제같지 않은 내일을 만나고 싶어한다.

때문에 나는 여행을 꿈꾼다.

여행이란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가는 것이며

어제 같지 않은 내일을 확실하고도 완전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안전하게라고 말하는 것은 여행이란 결국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思索紀行)

 

산딸기의 유혹

(유혹1)

초소에 팔각정 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필요한 나무를 DMZ에 들어가 베어가지고 나오기로 결정했다.

초소 앞은 적 전차 접근로로 표준형 지뢰지대(대전차지뢰 1발 옆에 대인지뢰 3발씩 매설))가 넓게 매설되 있다. 정작 위험한 곳은 미확인 지뢰지대다. 큰 나무들이 무성한 산 언덕에 접근하려면 미확인 지뢰지대 300m 정도를 통과해야 한다. 9명의 대원을 인솔해 미확인 지뢰지대에 들어갔다. 맨 앞에 선 대원이 지뢰덧신(두꺼운 철판 밑창을 댄 군화)을 신고 지뢰탐지기로 통로를 개척하며 앞으로나갔다. 지뢰 탐지병 뒤에 일렬 종대로 삽으로 앞 사람이 밟았던 발 자욱을 파내며 조심스럽게 전진해 목표한 산 언덕에 다다랐다.

 

이때 아카시아 숲 속에 산딸기 밭이 펼쳐진 광경이 나타났다. 빨갛게 잘익은 산딸기가 대원들을 유혹했다.  모두들 긴장감이 풀리고  철모를 벗어 딸기를 따 담기 시작했다. 사실 사고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위험한 순간이었다. 벌목 작전을 무사히 마쳤고 덤으로 산딸기도 5kg 넘게 따가지고 복귀했다.

그해 6월 여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벙커 위에 멋진 팔각정을 세웠다. 산딸기는 술을 담가 초소를 방문한 동기생에게 내보여 부러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소대 전우회 대원들과 함께 옛 부대를 찾았었다. DMZ 내에 우리가 긴장하며 통과 했던 미확인 지뢰지대에 금강산 가는 길이 잘 뚫려있다. 도로 개설 공사에 투입되었던 건설장비 포크레인이 지뢰 폭발로  파괴되어  방치된 상태로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유혹2)

다음해 6월 말에 까치봉에서 전역을 명받았다. 정들었던 대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보급로라 부르는 비포장 군용 도로를 따라 산길 3km 정도를 걸어 대대 본부까지 혼자서 걸어 내려가야 했다. 정들었던 우리 초소의 모습이 산 넘어로 사라져 버리고 인접 초소가 위치한 고황봉 가파른 비탈길을 지날 때 였다. 보급로 옆 풀숲에 산딸기가 보였다.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였다. 이번에도 딸기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해 6월의 마지막 날에 산딸기를 입에  넣었을 때 그 까칠했던 촉감과 새콤달콤한 맛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