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 36 (이름 없는 병사들)

Sam1212 2021. 5. 1. 12:09

40년 전 전방 철책선에서 함께 근무한 변은섭 대원이 옛 전우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그는 고향 아산에서 연 밭을 가꾸면서 연잎을 재료로한 농촌형 식품 가공업을 경영하고 있다.

 

변사장은 군 시절에 만능 선수였다.

키는 좀 작지만 단단한 체구다.

사격 행군 총검술은 같은 기본 과목도 잘하고 소대원들과 아래위로 인화도 좋으니 모범 병사였다.

그의 진가는 당시 전방 생활에 필요한 만능 기술자 역할에 있다.

야전 곡괭이를 갈아서 자귀를 만들고 자귀를 활용해 통나무를 쪼개고  판자를 만들어냈다.

철조망을 잘라 못을 만들고 크레모아 박스나 벙커 공사장에서 필요한 질통을 만들어냈다.

당시 험난한 군 생활에서 소대에 이런  대원 한 명 있으면 큰 힘이 되었다.

우리 대원들은 요즘 만나면 변사장을 맥가이버 변병장이었다고 말한다.

 

전역 후 사회생활 하면서 이따금 소식을 전했다.

워낙 성실하고 재주가 많아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하리라 믿었다.

군 시절 그의 집 주소가 과수원으로 적혀 있어 과수원 경영으로 성공했을 줄 알았다.

아니면 그곳에도 부동산 개발 바람이 불었으니 시골의 땅 부자가 되었을 줄 알고 있었다.

 

 

전우와 옛 소대장에게 사업장을 보여주고 삽교천 횟집으로 안내해서 함께 식사를 했다.

변사장은 그가 고향에서 겪은 험난한 삶의 과정을 식사 중에 들려주었다.

부지런하고 억척같은 그는 고향에서 한우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한우 대량 사육을 국가가 장려했고 전국적으로 번진 적이 있었다.

80년대 한우 가격 폭락 사태로 사업은 위기에 몰렸다.

금 싸라기 같은 과수원을 처분하여 융자금을 가까스로 상환했다.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한 사업은 연잎 가공 사업이다.

논에 연꽃 단지를 만들어 연잎으로 차 국수 연잎 밥을 만들어 납품하는 농촌형 식품 가공업이다.

사업이 잘되고 정부 기관에서도 지원해주기로 약속해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예상은 또다시 빗나갔다. 또 한번 나락으로 떨어졌다.

몰려드는 채권자들을 변 사장은 도망가지 않고 온 몸으로 막아내며 신뢰를 지켰다.

그의 신의와 검게 그을린 얼굴 그리고 마디 굵은 손이 사업 재기의 보증이 되었다.

변사장은 사업을 다시 안정 괴도에 올려놓았다.

 

변사장은 횟집 식당에서 마루 바닥에 무릎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앉았다.

사연인즉 군 시절 건봉산 자락에서 작업하다 다쳤던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소대원들과 철조망을 메고 산에 올라가다 앞서가던 병사가 떨군 철조망 뭉치가 굴러와 발목을 쳤다.

당시는 큰 부상이 안되 별 치료 없이 넘어가고 전역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군 생활은 경계근무 보다 작업이 더 어려웠다.

고지마다 산 능선마다 수많은 지하 벙커작업

동해안 해안선 따라 철조망 설치작업

군용 메리야스로 횃불을 만들어 밤을 밝히며 작업을 기한내 완료했다.

병사들은 손에 피멍이 들었고

용접병의 눈은 항상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변사장의 분투기를 함께 들으며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그의 영광스런 마디 굵고 검게 탄 손을 그리고 3소대장이었던 한중위님(한중섭 /성균관대 13기)이 작시를 해

변사장에게 드린다.

 

 

(한중섭)

 

덩그러니 마디 드러난

고행승 닮은 손이여

지문 닳아 거친 손바닦에

세월의 눈물과 땀이

비치네

 

네 부지런함으로

멕이고 입혀 삼남매

가르치고

늙은 아버지 몸 누이실

저 곳 마련했다네

 

삽과 망치

기꺼이 잡지 않았다면

연스토리 어느 것이

제 모습으로

반듯할 것인가

 

일마다 열망에

등은 굽고 주름살 깊어도

오래 가슴에 남을

아름다운 손이여

감동적인 변사장의 손.

 

초소 이야기를 끝 마무리하며 청춘시절 최전방 GOP 철책을 지키며 고락을 함께 했던 우리 소대원들

모두 역사에 이름없는 국민으로 살아가며 노인이 되가고 있다.

 

여기 이름없는 병사들의 이름과 그들의 고향을 기록해 남긴다. 함께했던 대원들이 5~6명 정도 더 있을 텐데 다 기억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강필중(진주) 고영대(당진) 고광동(해남) 권재식(예천) 김동신(당진) 김연기(제천) 김영일(창녕) 김성술(화순)

김창기(전남) 김철호(수원) 김양곤(서울) 김학수(충북) 김양환( ? ) 노수경(의령) 박노상(논산) 변은섭(아산) 박동열(당진)

문준근(장흥) 박형수( ? ) 변영신(서울) 서정관(대전) 신중석(대구) 손봉익(서울) 송홍규(거창) 유병식(강릉) 이상래(청주)

이종범(경기) 이병건(이천) 이상칠(서울)  이연섭(전남) 이성백(서울) 오춘선( ?  ) 임환구( ?  ) 엄기순(춘천) 전성기(예산)

정삼채(청도) 지필순(이천) 정현모(충북) 최병도(서울) 한기성(이천) 허광회(봉화) 함명세(충북) 황병옥(익산)

 

이름 없는 사람들

 

시력이 안 좋아서

평발이라서

학위 받느라 늦어서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서느라

군역 면제 받은 사람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그들이 우리 사회를

움직여가고 있다

나라의 발전을

민족의 통일을

큰소리로 외쳐댄다

 

글 잘하고 언변 좋은 사람들

임진왜란 때

임금님만 모시고 북으로 내뺏다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숨었다

육이오 전쟁 통에도 그랬다

사직 보전을 위하여

항전 준비를 위하여

 

부끄러운 이름들

그들이 떵떵거리고

우리를 호령하고 있다

민족과 국가의 안녕을 외쳐댄다

부끄러운 얼굴들이

자랑스러운 이름 되고

때로는 유공자도 된다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고

훗날 가문의 자랑이 된다.

 

칼 들고 돌진하다

조총 맞아죽은 의병들

맨발로 만주 벌판 끌려갔던

흰옷 입은 여인네들

코 베어 소금에 절여져

교토에 묻힌 원혼들

태백능선 골자기에

낙동강 언덕 위에

흙이 되어 묻힌 일등병

그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2015년 호국 보훈의 달에 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