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29(전령)

Sam1212 2021. 5. 5. 15:55

초소 이야기 29 (전령)

 

GOP 부대 초소장의 힘든 생활 중에  위안이 되는 제도가 있으니 전령이란 명칭의 인사 편제다. 보병소대의 전투 인원 편제는 병사 33명 과 1명의 장교다. 병사 중엔 분대장을 직책의 하사관 4명 과 선임하사(중사)가 있고 1명의 전령이 있다. 전령은 전투 시 소대장과 상급 부대 또는 소대원과 연락을 담당하는 병사다.

 

철책선 경계 부대에서 전령은 실제적으로 소대장 초소 생활 도우미 역할을 한다. 전령은 경계근무 편성에서 제외되고 교육이나 작업에서도 열외 하는 경우 가 많다. 전령이 실제적으로 하는 일은 소대장의 식사를 책임지고 세탁물과 잠자리를 챙겨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령이 소대장 세면을 준비를 끝내고 나서 소대장실을 노크해 알린다. 겨울철이면 취사장에서 따뜻하게 데운 물을 준비해서 세숫대야에 떠다 놓는다. 칫솔에 치약까지 짜주고 세수를 마치면 수건을 받쳐 들고 있다 전해준다. 소대장실 침구 정리 뿐 아니라 소대장의 속옷과 전투복을 세탁하고 다림질해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 이런 개인적 위상과 대접은 육군 대장도 누릴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오직 GOP 소대장 만이 가질 수 있는 당시의 관행이었다.

 

전령이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일은 소대장의 식사와 식단을 챙기는 일이다. 취사장에서 정량 공급되는 기본 식단 외에 더덕이나 산나물을 채취해와 별식을 만들어가지고 오는 일이 종종 있다.

 

전령은 소대장이 직접 선정하는 경우는 없었고 상황병이나 고참 분대장의 추천하는 방식이다. 계급은 보통 일병이나 상병이 맡는다. 군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고 초소 주변의 지형에도 익숙해 있어야한다. 전령은 소대장과 항상 근접 거리에서 생활하기에 다른 대원들이 신경을 많이 쓴다. 소대장의 심기를 대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해서 다른 선임병이나 분대장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내가 소대장으로 부임해 첫 번 째로 만난 전령은 문O근(전남/장흥)이었다. 그는 듬직한 체격에 말 수가 적고 조금 무뚝뚝한 편이다 특별했던 기억은 내가 주간 순찰이나 중대본부에 갔다 돌아올 때면 초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면 2,30m를 쏜살같이 달려와 소총과 철모를 받아들고 갔다. 함께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전남지역 출장 나와 장흥 지역을 지나갈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때 마다 혹시 문O근 대원을 만나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다. 한번은 혹시나 하고 장흥의 주막집에서 술 한잔을 하면서 주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장흥의 천관산에 대해 자랑하던 말이 생각난다.

 

두 번째로 함께한 전령은 이O우(서울) 대원이. 키 크고 얼굴이 웃는 인상으로 잘생겼다. 말수가 작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으로 내가 좀 나무래도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입대하기 전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빌딩 유리창 닦는 일을 했었는데 부모님이 위험한 직업이라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이O우의 도움으로 위기 탈출한 기억이 있다. 에비대 생활은 훈련이 많다. 중대원이 완전 군장에 산악 행군을 할 때였다. 건봉산을 오르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체력이 소진되었다. 대원들 모두가 힘들지만 소대장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낙오하면 소대는 무너진다. 10분간 휴식 시간에 모두들 배낭을 벗어 놓고 가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이O우가 사전에 준비 했었는지 어디서 구해왔는지 전투식량인 미숫가루 가지고와 물에 타서 마시고 기력을 회복했다. 그날 밤 야간 행군 도중에 바람이 불고 눈이 많이 내렸다. 더 이상 행군이 위험해 산 속에서 텐트치고 야영을 하게 되었다. 이O우와 한 텐트에 들어가 추워서 잠은 잘 수 없고 체온을 유지하며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이O우가 식판에 식사를 수령해왔다. 나는 춥고 떨려서 도저히 식사를 다 할 수 없어 반쯤 먹다 남겼다. 이O우는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내가 남긴 식사를 받아들고 허겁지겁 깨끗하게 비웠다. 이 O우의 식사 모습을 좁은 텐트 속에서 마주했던 짠한 기억이 남아 있다.

이O우는 내가 직장생활 초년병일 때 서울에서 반갑게 만나 우리 집에까지 함께 와서 식사를 하고 간 적이 있다. 그 후 연락이 끊겼으나 얼마 전 다른 대원들을 통해서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세 번째 전령을 맡았던 대원이 고O동(전남/해남)이다. 고대원은 조금 단신이고 통통한 편이다. 신체적 특징은 유난히 엉덩이가 크다. 일반적으로 이런 체형은 소총 소대에서는 훈련 받을 때 고전한다. 걷고 달리는 일상이 많은 부대에서는 체형은 좀 마르고 약해 보여도 이런 병사는 의외로 지구력이 좋고 힘든 훈련도 잘 적응한다. 보병 소대장을 1년 쯤 하면 사람 보는 안목이 생긴다. 신병을 받을 때 서울 출신 배나온 병사를 받으면 절대 안 된다. 무장구보나 장거리 행군 시 틀림없는 낙오병이 된다. 비쩍 마르고 허수아비처럼 생겼어도 농촌 출신 대원은 끈기 있고 절대 낙오 안한다. 집단 훈련하는데 낙오병 한 사람은 소대 전력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

 

고O동 대원을 볼 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떠오른다. 휴가 나왔다가 동대문시장에서국산 침낭 하나를 구입해 가지고 부대에 들어갔다. 당시 부대에는 군용 침낭 보급이 없었다. 미군용 오리털 침낭이 군용 물품 시장에서 암거래 되었고 국방색 폴리에스터 천에 보온재를 넣은 국산 유사품이 시장에 나와 있었다. 침낭을 혹한기 훈련이나 야외 훈련 시 가지고 나가면 아주 유용했다.

 

고O동 대원은 야외 훈련 때마다 내 침낭을 돌돌 말아 본인의 배낭 아래 달고 참가 했다. 큰 무게는 없으나 그의 배낭 하단에  침낭 하나를 더 매다니 침낭이 엉덩이 까지 내려왔다. 걸을 때마다 커다란 고o동의 엉덩이에 걸려 뒤뚱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고O동 전령 때문에 야외 훈련 시 포근한 침낭 속에서 잘 수 있었던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