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43

GOP 소대장

GOP 소대장 우리는 전후 세대다. 전쟁 중에 태어난 사람도 있으나 참혹한 전쟁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세대에 비하면 축복받은 세대다. 그러나 우리는 휴전이란 이름으로 남은 분단 조국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더 힘든 일은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평화와 전쟁의 외줄타기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이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전쟁의 공포가 한반도 위를 한번도 떠난 적이 없다. 드디어 평화가 시작되었다고 큰 소리로 외친 적이 몇번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언제나 위장된 평화였고 더 크고 위험한 전쟁의 준비기간이었다. 위험 상황 아래 사는 사람들, 그들은 남보다 빠른 상황 판단력을 필요로한다. 신속한 상황 대처 능력과 위험 회피 방법을 찾아내는 창의성을 발휘해야한다. 이..

헤어짐

전우회 카톡방에 전우의 모친상 부고가 떴다. 청주에 거주하는 정현모 회원이다. 오미크론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 문상 가는 일은 어려워 보였다. 청주에 사는 한 대원이 문상을 다녀와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문상을 하면서 喪主인 정현모 대원이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일주일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전한다. 장례식을 잘 마쳤다며 정현모 대원의 아들이 감사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상주 없이 장례를 치른 슬픈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했다. 이틀 후에 더 참담한 소식이 들어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정현모 대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갈이다. 정현모 대원은 77년 전방 GOP 근무할 때 함께 했던 대원이다. 전역 후 30년이 훨씬 넘어 소대 전우회 모임에서 ..

만남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면모임 횟수는 줄어들고 SNS활동이 늘어났다. 나도 최근 단톡방을 활용하면서 부수익으로 얻은 소확행이 있었다. 옛 전우를 45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아침에 전우가 전해온 반가운 메세지를 받아볼 때면 하루의 일상에 활기가 생긴다. "소대장님 별고 없으시죠. 45년 만의 만남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소대장님과 소대원들의 머리를 깍았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소대장님께서 제 군대의 귀중한 추억을 하나 꺼내주셨습니다. 아마도 이발은 저의 주특기가 아니고 틈틈이 했던 일이라서 제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가 소대장님 두발을 여남번 손질해 드렸던 그 모습이 그려집니다. 소대장님 머리카락은 유난히 검고 숱이 많앗지요. 그리고 좀 억세고 ㅎ ㅎ . 바쁘게 살아오면서..

연잎밥 광고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망설임의 시간이 있었다. 광고성 글을 써서 동기들 단톡방에 올린는 일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동기들 수준이면 이해해주리란 믿음으로 올린다) 벌써 두달 전 쯤 일이다. 문앞에 택배 상자가 있어 가지고 들어와 확인해보니 소대원이 보낸 물건이다.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보니 '연잎밥'이다. 아산에서 연잎 가공 식품사업을하는 변은섭 대원이 보내왔다. 연잎밥은 찹쌀에 호두 대추 잣 은행을 넣어 커다란 연잎으로 포장해 지은 밥이다.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어보니 향긋한 연향에 속에 들은 먹거리들이 고소한 맛과 함께 어울어져 내 입맛에는 딱이다. 보내온 연잎밥을 몇일동안 먹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나도 영업 부문에서 직장생활을해서 잘알고 있다...

봄 소풍

봄 소풍 태백준령 골짜기에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고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 일요일 전역을 2개월 여 앞둔 마지막 예비대 생활 당직 사관을 맡아 보는 날이다. 일요일에는 병사들에게 훈련이나 교육이 없는 자유시간이다. 연병장에서 소대 단위 축구 시합도 하고 대원들은 이발이나 세탁 정비 시간을 갖는다. 몇일 전에 중대에 들어온 신병들을 점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전방 산골짝으로 부대 배치 받아 고참병들과 함께하며 긴장하고 있을텐데 긴장을 조금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보생 시절 군부대 입소하여 하계 훈련 받으며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부대 를 벗어나 세탁물을 가지고 야외에 나가 옷 세탁도하며 시원한 물에 몸을 적셔 보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짧은 시간이지만 답답하고 조금은 공포스런 영내를 벗어나 자..

초소 이야기 30(급수장과 권투선수)

근무했던 GOP초소 2곳은 식수로 사용하는 급수장이 초소에서 200미터 쯤 떨어저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수도 시설이 없었기에 급수장은 물이 나올 만한 계곡에 샘을 파서 물이 고이게 만들고 주변에 야생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둘러친 시설이다. 보통 취사병이나 초임병들이 물지개를 이용 물을 길어다 사용했다. 우리 초소는 그리 높지 않은 고지에 위치해 급수장 이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초소에서 물은 단지 식수만으로 사용하기에 물 길어오는 일이 큰 부담은 안된다. 대원들의 세탁이나 세면은 통상 개울이나 계곡물을 사용한다. 고지대에 위치한 초소나 DMZ안의 GP초소는 식수를 확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 곳도 많다. 식수의 안전성 확보도 중요하다. 저지대에서 안전한 식수를 확보해 도르레를 사..

초소 이야기31(누렁이)

초소장으로 첫 부임하니 초소에 큰 누렁이 한 마리가 있있다. 물론 경계용 자산이다. 초소 인수인계 품목에 들어간다. 남자들만 생활하는 삭막한 세상에서 초소의 누렁이 한 마리는 대원들에게 이따금 분위기를 전환하는 큰 역할을 한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개를 키워 본 추억이 있어 누렁이에게 정이 많이 갔다. 첫 휴가를 다녀와서 보니 누렁이가 작은 바둑이로 바뀌어 있었다. 물어보니 키우던 누렁이가 도망가서 얼마 남지 않은 부대 교체 인수인계에 대비하기 위해 선임하사(엄기순/춘천)가 강아지를 한 마리 구입해 왔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런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대장 생활 6개월 쯤 지나서야 이것이 거짓인 줄 알았다. 내가 휴가 중에 선임하사와 분대장들이 잡아먹고 작은 새끼 한마리를 구입해 인계한 것이다. ..

초소이야기3 (경계 근무)

초소의 임무는 완벽한 경계 근무다. 경계 근무라 함은 초소 전방에 설치된 철책선 지역을 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적의 침투 기도를 알아내고 방어하는 일이다. 휴전선 155마일에는 6,70년대에 공사한 경계용 철책 공사가 완공되었다. 철책 전방 20m 정도는 시계 확보를 위해 나무나 잡풀이 모두 잘려진 불모지대다. 매년 봄여름이면 이곳에 새로 자라나는 잡목을 제거하는 시계 청소 작업을 한다. 이때 전방으로 조금 더 나가 작업을 수행하다 지뢰 폭발 사고를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전방 풀숲은 대부분 미확인 지뢰지대다. 경계 취약 지역에는 철책 바로 앞에는 폭 3m 높이 70cm 정도의 2단으로 된 고압 전기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이따금 고라니나 산양이 고압전기에 감전 죽는 사건도 목격한다. 철책..

초소 이야기26(텃밭 가꾸기)

초소 이야기 26(텃밭 가꾸기) 해안 초소는 철책선이 바닷가 철길에서 ㄱ자로 구부러져 개활지 7~800m를 통과해 철모고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평탄한 지형으로 순찰 활동하가도 편하다. 이 지역은 휴전 이전에 마을이 있던 지역으로 순찰로 옆에 텃밭으로 활용 가능한 땅들이 눈에 띄었다. 순찰로 옆에 대원들을 시켜 작은 텃밭을 일구었다. 대원들 70% 정도는 시골 출신으로 농사 경험이 풍부하다. 휴가자 편에 채소 씨앗을 구입해 들여와 봄에 씨를 뿌렸다. 농촌 출신 고참 대원 몇 명에게 텃밭을 가꾸는 임무를 주었다. 그들이 야간 근무 철수 하면서 책임지역 채소를 돌보았다. 큰 힘 안들이고 오고가며 텃밭의 채소를 돌보며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다. 고추와 상추를 심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성을 많이 기..

초소 이야기 목차

1. 길 끝나는 곳 2. 까치봉 초소 3. 경계 근무 4. 최고의 절경 화장실 5. 작업반장 6. 사고 안전관리 7. 마달리 작전 8. 소대 회식 9. 빳다 10. 카타콤 예배 11. 금강산을 화폭에 담다 12. 해안 초소 13. 철모고지 14. 속초 손님 15. 송편 만들기 16. 기념물 세우기 17. 조각병 최병도 18. 땅굴 탐지병 19. 단체 수술 20. 괴목 작전 21. 헬기 월경 사건 22. 사라진 기회 23. 송도 전복 작전 24. 팔각정 건축 25.야생동물들 26. 텃밭 가꾸기 27. 파견근무 28. 지휘 통솔 29. 전령 30. 권투선수와 급수장 31. 누렁이 32. 봄 소풍 33. 건봉산 방문기 34. 야외 훈련 참가기 35. 선물 36. 이름없는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