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풍
태백준령 골짜기에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고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 일요일 전역을 2개월 여 앞둔 마지막 예비대 생활 당직 사관을 맡아 보는 날이다. 일요일에는 병사들에게 훈련이나 교육이 없는 자유시간이다. 연병장에서 소대 단위 축구 시합도 하고 대원들은 이발이나 세탁 정비 시간을 갖는다.
몇일 전에 중대에 들어온 신병들을 점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전방 산골짝으로 부대 배치 받아 고참병들과 함께하며 긴장하고 있을텐데 긴장을 조금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보생 시절 군부대 입소하여 하계 훈련 받으며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부대 를 벗어나 세탁물을 가지고 야외에 나가 옷 세탁도하며 시원한 물에 몸을 적셔 보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짧은 시간이지만 답답하고 조금은 공포스런 영내를 벗어나 자유를 맛보는 시간이었다.
새로 들어온 신병들 세탁물 들고 집합하라고 전달 명을 내렸다. 10명 정도의 신병들이 세탁물들을 옆구리에 끼고 총알 같이 연병장에 집합했다. 신병들을 인솔해 부대 후문을 나와 북천강으로 향했다. 진부령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북천강이라 이름 붙였으나 들판을 가로 질러 흐르는 조금 큰 시냇물이다.
신병 10명 정도를 데리고 500미터 남짓한 밭둑 길을 가로질러 단체로 세탁하기 좋은 볕이 잘드는 둑방에 자리를 잡았다.
개울가 에 자연스럽게 둘러 앉았다. 모두들 아직 긴장이 덜풀린 모습으로 장교인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신병들을 한명 한명 얼굴을 둘러보았다. 모두 다 앳된 얼굴들 막내 동생 처럼 보였다. 충분한 세탁 시간을 주고 개울 에 내려가 세탁물을 깨 끗하게 세탁 한 다음 이곳에 다시 집합하라고 했다.
신병들은 개울가에 자리잡고 세탁물을 강물에 빨면서 시원한 물에 얼굴과 손발도 씻고 물 장난도하며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둑방 위에서 신병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후보생 시절 병영훈련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다음달에 다시 산에 올라가고 나는 2개월 후면 전역하게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부터 3년을 견디고 이겨내야한다.
신병들이 세탁을 다 끝내고 다시 개울가에 집합했다. 이제 막 군생활을 시작하는 신병들에게 장교로서 군 선배로서 말해주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나 현역병으로 3년 군생활은 어디서도 해볼 수 없는 인생의 큰 경험이고 자산이다. 이제 한 달 후에는 휴전선 철책 경계를 하러 산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총들고 철책선 경계를 서보았다는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으나 젊은이로서 모두 견딜만한 일이다. 여기 모인 입대 동기들은 지금도 만나면 반가운 친구지만 평생 잊지못할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단지 조심해야 할 것은 불필요한 행동이나 지시받지 않은 행동으로 생기는 안전 사고에 주의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다. 대략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둘러앉아 간단한 오락시간을 가졌다. 다음 달 산에 올라가 철책을 지키는 진짜 군인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져보는 고향 생각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노래는 내가 선곡했다. 초등학교 음악책에 실린 노래들이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나의 살던 고향은' '뻐국뻑국 뻑국새' 같은 동요 몇 곡을 불렀다. 둑방 넘어로 신병들의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신병들과 함께한 봄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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