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31(누렁이)

Sam1212 2021. 6. 10. 21:11

초소장으로  첫 부임하니 초소에 큰 누렁이 한 마리가 있있다. 물론 경계용 자산이다. 초소 인수인계 품목에 들어간다.

남자들만 생활하는 삭막한 세상에서 초소의 누렁이 한 마리는 대원들에게 이따금 분위기를 전환하는 큰 역할을 한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개를 키워 본 추억이 있어 누렁이에게 정이 많이 갔다.

첫 휴가를 다녀와서 보니 누렁이가 작은 바둑이로 바뀌어 있었다. 물어보니 키우던 누렁이가 도망가서 얼마 남지 않은 부대 교체 인수인계에 대비하기 위해 선임하사(엄기순/춘천)가  강아지를 한 마리 구입해 왔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런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대장 생활 6개월 쯤 지나서야 이것이 거짓인 줄 알았다. 내가 휴가 중에 선임하사와 분대장들이 잡아먹고 작은 새끼 한마리를 구입해 인계한 것이다. 초임 소대장으로 대원들 돌아가는 속 사정을 내밀하게 파악하지 못한 순진함을 내보인 것이다.

 

당시에도 급식용 쌀이나 부식 공급은 충분해 배고파서 개를 잡아먹지는 않았다. 그저 한국 남성들의 잘못된 보양식 문화이고 군대 특유의 일탈 행위를 즐기는 영웅심의 발로였다. 대원들은 개를 몰래 잡아먹는 행위를 '된장 바른다'고 말했다. 나는 군에 오기 전 일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표현으로 경상도나 전라도식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두 번째 철책 경계로 산에 올라갔을 때에도 누렁이가 한 마리 있었다. 야간 순찰 나갈 때 동반할 때도 있고  순찰 나가 철책선 지주에 매어 놓기도했다.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짖기도 해  효과 만점의 경계용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군견 부대가 있어 독일산 세퍼트의 훈련된 행동을  시범 보이는 행사를 다녀온 적도 있다. 군견병의 명령에만 따르고 특별 식단만을 제공하는 군견은 GOP부대에선 초소의 누렁이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여름에 초소에 풀어논 누렁이가 다시 한 번 없어졌다.  화도 나고 약이 올라서 이번에는 꼭 범인을 잡아 본때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원들에게 물어보니 인접한 화기소대원들의 소행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누렁이를 붙잡아 갔으면 초소에서 작업을 하지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초소에는 보는 눈들이 많고 외부인들이 예고없이 방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작업을 한다면 눈에 안 띄는 산 아래 계곡에 내려가  작업할 것으로 판단 되었다.  누렁이를 훔쳐간 놈들을 찾기위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산 언덕에서 몇 일을 감시했다. 야간에도 순찰로 보다는 봉우리에 올라 계곡에서 수상한 불빛이  보이는지 감시의 눈길을 번득였으나 끝내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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