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43

초소 이야기 27 (파견 근무)

초소 이야기 27 (파견 근무) 군에서도 파견 근무라는 직무가 있다. 파견이란 개인이나 조직이 본대에서 떨어진 특정 지역에 나가 독립적인 생활이나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GOP 부대의 중 소대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예비대 생활을 하면서 소대가 파견 근무를 명받았다. 소대의 2개 분대를 차출해 간성 비행장과 오호리 탄약고 경비 임무를 맡았다. 대대의 많은 소대 중에서 우리 소대를 차출한 것은 우리 소대가 전투력과 기강이 서있다고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소대장 입장에서 보면 대원의 주둔지가 3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지휘 통솔에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본대에서 떨어진 파견근무는 상급자의 눈에서 벗어나기에 파견대원들 입장에선 간섭이나 규제를 덜 받고 생활이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

초소 이야기 25(야생 동물들)

초소 이야기 25(야생 동물들) 철책선 경계를 서다 보면 많은 야생동물을 만난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민간인들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로 수 십 년이 지났기에 DMZ 내에는 물론 밖에도 많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짐승은 고라니다. 그밖에 멧돼지 산양 오소리 등을 볼 수 있다. 고라니는 주로 철책선 안 억새밭에서 많이 눈에 띈다. DMZ는 철책으로 울타리를 친 거대한 야생공원이다. 억새밭에는 고라니들만이 지나다니는 고라니길이 나 있다. 봄철에 순찰을 돌다 고라니 울음소리에 깜작 놀란 적이 있다. 순찰로 바로 앞 억새 숲 속에서 갑자기 ‘캬악’하는 거친 외마디 소리가 나서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고 전방을 바라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튀어 도망가고 있었다. 봄철 발정기가 되면 고라니들이 흥분..

초소 이야기29(전령)

초소 이야기 29 (전령) GOP 부대 초소장의 힘든 생활 중에 위안이 되는 제도가 있으니 ‘전령’이란 명칭의 인사 편제다. 보병소대의 전투 인원 편제는 병사 33명 과 1명의 장교다. 병사 중엔 분대장을 직책의 하사관 4명 과 선임하사(중사)가 있고 1명의 전령이 있다. 전령은 전투 시 소대장과 상급 부대 또는 소대원과 연락을 담당하는 병사다. 철책선 경계 부대에서 전령은 실제적으로 소대장 초소 생활 도우미 역할을 한다. 전령은 경계근무 편성에서 제외되고 교육이나 작업에서도 열외 하는 경우 가 많다. 전령이 실제적으로 하는 일은 소대장의 식사를 책임지고 세탁물과 잠자리를 챙겨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령이 소대장 세면을 준비를 끝내고 나서 소대장실을 노크해 알린다. 겨울철이면 취사장에서 따뜻하게 데운 물..

초소 이야기28(지휘 통솔)

초소이야기 28 (지휘 통솔)) GOP부대의 초소장 근무는 힘든 일과의 연속이다. 힘들다는 표현은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보다는 정신적 중압감을 말한다. GOP 부대는 6개월 단위로 철책선 경계근무에 투입된다. 나머지 6개월은 예비대 생활이라 하여 중대 단위 막사에서 생활하며 훈련과 교육으로 일과가 편성되어있다. 육체적인 고생은 예비대에서 생활이고 정신적 중압감은 철책선 경계근무 생활이다. 철책선 소대장은 초소의 모든 책임을 맡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이 긴장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힘들다. 긴장감이 풀리고 느슨해지면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대장의 임무는 소대원들의 인간 관리를 통해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일이며 이와 같은 행동을 지휘 통솔..

초소 이야기 36 (이름 없는 병사들)

40년 전 전방 철책선에서 함께 근무한 변은섭 대원이 옛 전우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그는 고향 아산에서 연 밭을 가꾸면서 연잎을 재료로한 농촌형 식품 가공업을 경영하고 있다. 변사장은 군 시절에 만능 선수였다. 키는 좀 작지만 단단한 체구다. 사격 행군 총검술은 같은 기본 과목도 잘하고 소대원들과 아래위로 인화도 좋으니 모범 병사였다. 그의 진가는 당시 전방 생활에 필요한 만능 기술자 역할에 있다. 야전 곡괭이를 갈아서 자귀를 만들고 자귀를 활용해 통나무를 쪼개고 판자를 만들어냈다. 철조망을 잘라 못을 만들고 크레모아 박스나 벙커 공사장에서 필요한 질통을 만들어냈다. 당시 험난한 군 생활에서 소대에 이런 대원 한 명 있으면 큰 힘이 되었다. 우리 대원들은 요즘 만나면 변사장을 맥가이버 변병장이었다고 말한..

초소 이야기 35 (기념품을 선물하다)

기념물이나 기념품이란 어떤 물건이나 상징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무형의 가치를 창출한다. 우리시대 군대 생활을 한 이들은 기념물을 만들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다. 전방의 병사들은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탄피를 잘라 반지를 만들어 끼고 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조금 여유 있는 병사들은 나무 조각품으로 제대 기념물을 만들기도 한다. 내가 근무하던 철책선 동부 산악지대 장교들 사이에선 피나무 바둑판을 만들어 기념물로 가지고 가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이런 마음은 2~3년간 첩첩산중에서 문명 세계와 완전 단절된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들게된다. 군인 아니면 감히 와볼 수 없는곳, 전역 후에도 다시와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추억 공간과 힘들었던 시간에..

초소 이야기 33 (전우회 야외 훈련기)

'88여단 1대대 2중대 2소대' 출신 대원들에게 강필중 총장의 소집 명령이 단톡방에 떳다. -훈련 일정: 10월 27~ 28일 -집합 시간: 오후 5시 -장소: 경남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 수목원. 매년 봄가을 두 차례 갖는 전우회 모임이다. 40년 전 빽도 없고 끗발도 없는 젊은이들 대한민국 최 동북단 철책선을 지키며 3년의 험했던 군 생활을 훌륭하게 마쳤다. 야간에 전반야조 후반야조 나뉘어 밤새워 철책 경계를 했고 주간에는 취침조와 교육 또는 작업조로 나눠 하루 일과를 수행했다. 당시엔 무슨 작업이 그리 많았던지 화목작업 가로목 작업 순찰로 작업 통신선 매설작업 철조망 설치작업 방카작업 제설작업 등등 헤아리기 벅차다. 어떤 때는 총잡는 시간보다 톱이나 낫 삽과 곡괭이 잡았던 시간들이 더 많았다. 이런..

초소 이야기32(건봉산 방문기)

젊은 시절 군 생활을 함께 했던 소대원들과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 후배 병사들을 위문하기로 했다. 전역한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우리가 근무했던 동경사 88여단은 부대 개편으로 22사단으로 바뀌었다. 옛 부대 족보를 추적해보니 55연대 1대대 소속이다. 현재 건봉산에서 경계 근무 중이라한다. 출발하는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전국 각지에 터전 잡고 생활하는 대원 14명이 이 번 행사에 동참했다. 멀리 경남 통영 진주 의령 봉화 그리고 군산 안동 청주 에서 각자 승용차 편으로 출발했다, 집결 장소는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 12시 집합이다. 나는 서울 사는 고광동 대원과 9시 30분에 사가정역에서 합류해 고광동 대원이 운전하고 길을 나섰다. 고속도로에서 횡성에서 인터첸지를 모르고 지나쳐 속초를 경유 미..

초소 이야기 13 (철모고지)

소대 쎅타 좌측 끝부분에 '철모고지'라 부르는 작은 언덕이 있다. 아래 쪽 개활지에서 바라보면 철모를 바닥에 내려놓은 모양이서 그렇게 불렸나보다. 정상에는 작은 벙커가 있다. 이 벙커는 사용하지 않고 벙커 지붕위에 대공 초소를 만들어 주간 경계 초소로 사용한다. 야간 경계 원칙은 낮은 계곡에 위치하기에 밤에는 철모고지 아래서 근무를 섰다. 소대장도 야간 순찰은 철모고지를 한번 다녀오는 것이 일과다. 신병은 통상 부대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까지 근무자 편성을 하지 않는다. 몇 일이 지나면 소대장이 순찰 나갈 때 동반하여 철책선의 근무 분위기를 익히게 한다. 소대에 신병(유병식/강릉)이 한 명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귀엽게 생겨서 큰 고생 안하고 자란 모습이다. 부대에 적응이 좀 되었다고 생각되기에 순찰에 동..

초소 이야기 12 (해안초소)

행운이 찾아왔다. 2번째 철책선 투입 시 대대의 유일한 해안 초소(통일 전망대 앞 1번 초소를 맡게 되었다. 이곳은 서해안에서 시작된 철책선이 한반도 허리를 가로질러 동해로 들어가는 꼭지점에 위치한 휴전선 최 동북방 1번 초소다. 지금은 휴전선 철책이 북쪽으로 1km정도 추진되어 송도 앞으로 되었지만 우리 때는 송도 남쪽 초소 바로 앞 개활지를 통과 했다. 우리 초소는 좌로 해안 일부와 서쪽으로 산악 지역을 담당한다. 적의 전차 접근로와 해안 경계를 담당하여 전술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소대에는 편제 화기가 아닌 중기관총과 로케트포가 배치되어 있다. 소대의 벙커도 첫 부임지 까치봉 보다는 훨씬 넓어서 남는 방이 2개나 되었다. 당시 대대장 (김O희 중령)이 대대 쎅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곳을 우리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