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 25(야생 동물들)
철책선 경계를 서다 보면 많은 야생동물을 만난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민간인들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로 수 십 년이 지났기에 DMZ 내에는 물론 밖에도 많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짐승은 고라니다. 그밖에 멧돼지 산양 오소리 등을 볼 수 있다.
고라니는 주로 철책선 안 억새밭에서 많이 눈에 띈다. DMZ는 철책으로 울타리를 친 거대한 야생공원이다. 억새밭에는 고라니들만이 지나다니는 고라니길이 나 있다. 봄철에 순찰을 돌다 고라니 울음소리에 깜작 놀란 적이 있다. 순찰로 바로 앞 억새 숲 속에서 갑자기 ‘캬악’하는 거친 외마디 소리가 나서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고 전방을 바라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튀어 도망가고 있었다. 봄철 발정기가 되면 고라니들이 흥분해 철책을 들이 받거나 날뛰는 모습이 목격된다.
병사들이 고라니를 사냥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전방 부대에 ‘고라니를 잡으면 재수 없다’는 말이 구전 되어 내려온다. 천만다행이다. 이 말이 없었으면 많은 고라니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재수 없다’라는 말은 사고 난다는 말이다. 사고는 곳 인명 사고를 말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고라니 한 마리가 초소 앞 까지 내려와서 소대원들이 사로잡는다며 초소 앞에 있는 철교 위로 몰아갔으나 물속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와 도망가는 것을 바라본 적도 있다.
멧돼지가 먹이를 구하러 초소 까지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초소에서 버리는 잔반의 냄새를 맡고 내려온다. 한번은 야간근무 초병한테 상황실로 전화가 와서 돌려받았다. 근무서는 개인호 앞에 커다란 멧돼지가 접근해 있는데 사살해도 되는지 나에게 물어왔다.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 했다. 나중에 근무자에게 물어봤더니 너무 가까이 접근해와 겁이 났다고 말했다.
고지대 위치한 초소에서는 가끔 산양도 목격된다. 옆 초소지역에서 산양 한 마리가 고압 전기철조망에 감전 되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전기 철조망은 h자 형태의 시멘트 지주에 높낮이를 다르게 폭 3m 높이1m 철조망 5줄이 쳐져 있다. 아래로 통과하기도 힘들고 위로 뛰어 넘기도 불가능한 장애물이다. 전기 철조망은 야간 취약 시간에 2~3시간 고압전류가 흐른다. 한번은 철책 안에 들어가 점검을 하면서 누가 설치했는지 전기 철조망에 2m정도의 철조망을 연결해 야생 동물이 지나다니는 길 방향으로 걸쳐 놓은 것을 발견하고 제거한 적이 있다.
해안초소 근무 시 오소리 한 마리를 대원들이 생포해왔다. 길이가 50cm 정도 작은 개만하다. 먹을 것을 찾으러 초소 부근까지 내려왔다 붙잡힌 것이다. 개 목줄을 매서 초소 옆 나무에 매어 놓았다. 식사 때마다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며 키워보려고 노력했으나 야성이 너무 강해 사람이 접근하면 성을 내거나 도망갔다. 몇일 동안 매어놓았다 풀어 줬는데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다시 초소 주변에서 발견 되어 대원들에게 또 붙잡혔다. 다시 한 번 목줄을 매어 나무에 매어 놓고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교육받으러 본부에 외출 했다 돌아오니 매어있던 오소리가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에게 물어보니 중대장이 초소에 들렀다가 약에 쓴다고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따금 독사도 대원들이 잡아온다. 독사는 남성의 양기를 북돋운다는 속설이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잡는 병사들이 있다. 해안초소 근무 시 선임하사(엄기순/춘천)가 독사를 잡아 탕을 만들어 먹으며 내게도 한 그릇 먹어보라고 가져온 적이 있다. 누런 뱀 기름이 떠 있는 국물이었다. 도저히 마실 수 없어 돌려보냈다.
중대원 전원이 새로 생긴 건봉산 유격장에서 야영생활을 하며 유격훈련을 받을 때였다. 대원 한 명이 커다란 독사 한 마리를 잡았다며 내 텐트로 들고 왔다. 독사를 건네받아 빈 음료수병 속에 넣고 병 입구를 막아 텐트 안에 보관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텐트 속으로 들어왔으나 그날따라 비바람이 텐트가 바람에 날아갈 정도로 거세게 불어댔다. 머리맡에 세워놓은 살아있는 독사가 들어있는 술병이 넘어져 깨지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병을 다시 발 뻗은 텐트 입구 쪽으로 옮겨 놓아도 휘몰아치는 바람에 깨질까 걱정이되 마음 조아리며 잠을 잤다.
다음날 마침 교동에 있는 중대 주둔지로 들어가는 수송차가 유격장에 들어왔다. 중대 행정병에게 독사가 들어가 있는 병을 건네주며 우리 소대 잔류병에게 전하고 잘 보관하라고 말해주었다. 독사가든 병을 소대에 보내 놓고도 마음이 불편했다. 잔류병들이 독사를 병에서 꺼내보다가 물릴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유격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맨 먼저 독사를 확인했다. 천만다행 살아있었다. 살펴보니 병 속에 오래 머무는 동안 분비물이 나와 조금 지저분해져 있다. 당시 독사를 잡으면 사주를 담아 집에 가지고 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사주를 담았다. 당시 PX에서 판매하는 인삼주병 모양이 표주박 모양으로 보기 좋았다. 인삼주 빈병에 뱀을 넣고 고량주를 채워 넣어 사주를 만들었다. 사주는 휴가 시 들고나가 고향의 할아버지께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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