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43

초소 이야기 19 (단체 수술)

단체 수술 초소에는 2명의 상황 근무자가 있다. 주야간 경계근무 대신 소초내 상황실에서 교대로 무전기와 전화기를 담당하며 외부와의 연락이나 지시를 수령하여 소초장에게 전달하고 소초장의 지시사항을 대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대원이 담당한다. 상황병은 소대장과의 접촉이 잦아 소대장의 심기 파악에도 노련하다. 하루는 상황병(고영대/ 당진)이 소대장실을 노크하며 들어와 멈칫거리며 이상한 제안을 했다. 소대에 포경인 대원들이 여러명 있는데 대대 위생병을 통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전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당시 대대에 1명의 위생병이 배치되어 전방의 각 초소를 돌아다니며 간단한 치료를 담당하고 필요한 약도 지급해주었다. GOP에 올라오기 전 예비대에서 내무생활을 하며 대원들 중에..

초소이야기 14 (속초손님)

속초 손님 사령부에 배치받고 선배들과의 만남에서 대위 계급장을 붙인 한 선배가 우리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속초에서 눈빛이 안좋거나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은 친구들과 시비를 붙지마라. 장교라고 힘주다가 봉변을 당할 수 도 있다" 이미 많이 공개되 알고있는 이야기다. 설악산 부근에 특수 임무(북파 공작)를 수행하는 부대가 있었다. 이따금 이곳 부대원들의 일탈 행동으로 보도되지 않는 사건들이 벌어지곤 하니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초소장으로 근무시 '속초 손님'이 온다는 전화를 받는다. DMZ 통문 키를 관리하는 초소장이 통문에 미리 나가 대기한다. 차가 도착하면 통상적인 출입 절차를 생략하고 육중한 2중 철문을 열어준다. GP에 들어가는 부식차 편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기 번뜩이는 눈빛의 요원이 금단의..

초소 이야기 22 (사라진 기회)

사라진 기회 미군 헬기 월경 사건이 몇 달 지나고, 여름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는 오후였다. 대공 초소의 초병한테 보고가 왔다. 배 한 척이 풍랑을 헤치고 북진하고 있다는 보고다. 밖으로 나와 초소 후편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높은 파도에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것 같기도하고 배가 표류하고 있는 듯 보였다. 민간인 어로 한계선은 우리 초소 후방에 위치한 대대본부에서 2Km나 더 후방의 3분초 앞 바다에 그어져 있다. 만약 남쪽에서 북진 항해했다면 3Km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지난 봄 미군 헬기 월경시 구겨진 자존심을 살릴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소 화력을 총 집결 시켰다. 새로 들어온 화기분대장(김학수/충북)도 믿을만했고 기관총 사수들도 모두들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57미리 무반동총도 들고..

초소 이야기21(헬기 월경사건)

미군 치누크헬기 월경 사건 한국군의 공사 지원을 나온 미군 헬기가 휴전선 지형을 오인하여 북으로 넘어갔고 북의 집중포화에 추락했다. 1명 사망하고 1명(미군 준위)은 판문점으로 송환되었다. 당해 년도 전군의 가장 큰 사건이다. 헬기 굉음을 듣고 대공초소의 중기관총을 발사했으나 연발 불량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평상시 잘 나가던 총이 전날 밤 비가 조금 내려서인지 자동사격이 안되었다. 그래도 대대 최초로 헬기에 대공화기를 발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있다. 얼마후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미군은 한국군의 경고사격을 받았다는 증언을 했다. 당시 카터대통령과 한국은 정치 관련 냉각기로 한미관계 안 좋았다. 해안 쪽으로 뚫린 벙커의 작은 총안구를 통해 요란한 굉음이 들려 초소 밖으로 튀어나왔다. 동해바다 쪽으로 ..

초소 이야기 23(송도 전복작전)

송도 전복 작전 초소앞 DMZ 안에 송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좌측은 백사장과 연하고 우측 바다 쪽은 갯바위가 많다. 섬 전체는 작은 관목과 대나무로 덮여 있다. 7월이되어 날씨가 더워지면 대대장은 이따금 송도를 담당하는 초소장에게 특별한 명을 내린다. 송도에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이다. 동해안에는 많은 해산물이 풍부하나 손바닥 만한 큰 자연산 전복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진품이었다. 나는 수영과 물질을 할 수 있는 대원7-8명을 선발해 송도 작전에 들어간다. 섬 앞 북쪽에 경계병 2명을 배치하고 준비해간 마대자루 1개씩 나누어주고 해삼 전복을 채취한다. 나는 잠수에 자신이 없어 갯바위에 붙은 홍합을 주로 따 담았다. 작은 손바닥만한 홍합이 빽빽히 들러붙어있어 물속에 들어가 대검으로 하나 씩 떼어내는게..

초소 이야기 20 (괴목 사건)

괴목 사건 대대장이 소대장인 나에게 특별한 작업을 명했다. 대대장이 계곡에서 채취 구해온 괴목을 소대 조각병인 최병도에게 잘 손질하고 다듬어 멋진 작품으로 만들라는 지시다. 대대장(김용희 중령/갑간)은 특전사에 근무하다 보병부대에 부임했다. 단단한 체격에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다. 예하 중대장들과 소대장들이 조금 어려워한다. 당시 우리 소대는 전투력평가에서 항상 우수했다. 대대장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몇번 호감을 보인적이 있어 좋은 상하관계를 유지했다.. 대대장이 보내온 괴목은 높이 50센치 폭 40센치 정도 되는 부채살 처럼 뻗은 나무 뿌리다. 단단한 뿌리가 땅속 자갈 밭을 헤집고 땅속으로 뻗어나가다 단단한 돌에 걸려 우측에 주먹 만한 흰돌과 좌측에 검은돌을 감싸안고 있다. 나무 뿌리를 채취하면서 생긴 흠..

초소이야기17 (조각병 최병도)

조각병 최병도 군생활이 원숙기에 이르러 일상에 좀 여유가 생기면 전역을 앞둔 고참병들은 군 생활을 추억 할 기념품을 하나쯤 만들어가지고 나가길 원한다. 당시에 전방 군인들은 탄피를 쇠톱으로 잘라 목걸이나 반지를 만들었다. 고지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은 작은 목조각 기념물을 만들기도한다. 까치봉으로 첫 부임하여 신참 소대장 때다. 선배인 1소대장 한중위를 따라 인접 대대 건봉산의 한중위 동기가 소대장을 하는 초소를 야간에 방문한 적이있다. 나는 그곳에서 피나무 바둑판과 선임하사가 만들어 가지고있는 멋진 조각품들을 보았다. 그 조각품들은 홍익대 미대를 다니다 입대한 사병이 만들었다는 자랑을 들었다. 함께 간 한중위도 그 조각물들이 욕심이났던지 선임하사와 내기 바둑을 두면서 한 개를 얻으려고 무진 애를썻으나 결국..

초소이야기16 (기념물 건립)

기념물을 세우다. 초소 근무 기념으로 무었인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들었다. 해안 초소장을 마치고 전역하면 다시는 이 초소에 들어와보기 어렵다. 우리 초소는 서양 영화에나오는 별장 같은 분위기다. 초소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을 찻길로 S커브를 돌면서 올라온다. 초소 언덕위에 멋진 기념물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기념물은 결국 나무를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 철책 안에들어가 기념물을 세울 나무를 베어오기로했다. 다행이 우리초소는 DMZ안으로 들어가는 통문을 관리한다. 통문 키를 소대장이 관리하고 있으니 본부에 들어간다고 보고하고 작전을 수행하면 되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개 분대를 인솔해 통문을 열고 들어갔다. 깊숙히 들어가니 과연 나무들이 울창했다. 휴전 전에 마을이 있던 자리여서 꽤 모양이 좋은 나무..

초소 이야기 15 (송편 만들기)

추석 송편 만들기(1977년) 철책선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기분은 항상 썰렁하다. 우선 남자들의 세계라 명절 기분을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추석이나 설날은 특식이 나오지만 그 것 만으로 명절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 초소장이 조금만 준비하면 명절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을 맞아 송편을 초소 자체로 빚어보기로 했다. 소대에 급식용 쌀은 충분했다. 소대장 전령을 보았던 대원(문준근/ 장흥) 이 입대 전 떡집에 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송편을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했다. 쌀 30kg 정도를 커다란 군용 플라스틱 용기에 넣고 물을 부었다. 떡을 빚을려면 물에 불린 쌀을 가루로 만들어 내야한다. 통상 가정에서는 떡방아간에 가면 잘 빻아준다. 송편을 만드는 임무는 쌀 가루를 어떻게 만들..

초소 이야기 24 (팔각정 건축)

팔각정 건축 초소 벙커 지붕 위 취사장 앞에 10평 정도의 빈 터가 있다. 이곳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면 후방에 대대본부(현재 통일전망대)와 전방에는 낙타봉(북 GP와 동굴진지가 들어있는 구선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때 나의 군 생활도 원숙기에 접어들어 눈 감고 있어도 대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전 대원들의 훈련도 잘 되어있어 누구와 겨뤄도 자신있다는 자부심과 만약 전쟁이 터지면 앞에 보이는 금강산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나는 그해 여름 이곳 벙커 지붕 위에 멋있는 정자를 하나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정자를 세우기위해선 큰 나무들이 필요했다. 철책 이남 지역은 수 십년간 필요한 나무를 모두 베어 큰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DMZ 내로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