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회
미군 헬기 월경 사건이 몇 달 지나고, 여름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는 오후였다. 대공 초소의 초병한테 보고가 왔다. 배 한 척이 풍랑을 헤치고 북진하고 있다는 보고다. 밖으로 나와 초소 후편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높은 파도에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것 같기도하고 배가 표류하고 있는 듯 보였다. 민간인 어로 한계선은 우리 초소 후방에 위치한 대대본부에서 2Km나 더 후방의 3분초 앞 바다에 그어져 있다. 만약 남쪽에서 북진 항해했다면 3Km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지난 봄 미군 헬기 월경시 구겨진 자존심을 살릴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소 화력을 총 집결 시켰다. 새로 들어온 화기분대장(김학수/충북)도 믿을만했고 기관총 사수들도 모두들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57미리 무반동총도 들고나와 거치시켰다. 무반동총은 우리 초소에 만 배치된 중화기다. 초소가 적 전차 접근로이기에 소대 편제화기가 아닌 무반동총 1정과 중기관총 1정이 배치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무반동총을 실사격해볼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어로 한계선을 넘어와 월경을 시도하는 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 초소 앞 유효사거리까지 다가와야 사격 명령을 내릴텐데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고 높은 파도에 뒤뚱거리며 제자리를 맴돌았다. 대원들 모두 배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배 옆구리에서 섬광이 번쩍했다. 그리고 포성이 들렸다. 3분초에 배치된 탱크포가 작열한 것이다. 수분 후에 해경의 예인선이 다가와 끌고갔다. 이렇게 모처럼 다가왔던 또 한번의 기회가 사라져버렸다.
불운이 행운이되고, 행운이 불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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