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치누크헬기 월경 사건
한국군의 공사 지원을 나온 미군 헬기가 휴전선 지형을 오인하여 북으로 넘어갔고 북의 집중포화에 추락했다. 1명 사망하고 1명(미군 준위)은 판문점으로 송환되었다.
당해 년도 전군의 가장 큰 사건이다. 헬기 굉음을 듣고 대공초소의 중기관총을 발사했으나 연발 불량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평상시 잘 나가던 총이 전날 밤 비가 조금 내려서인지 자동사격이 안되었다. 그래도 대대 최초로 헬기에 대공화기를 발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있다. 얼마후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미군은 한국군의 경고사격을 받았다는 증언을 했다. 당시 카터대통령과 한국은 정치 관련 냉각기로 한미관계 안 좋았다.
해안 쪽으로 뚫린 벙커의 작은 총안구를 통해 요란한 굉음이 들려 초소 밖으로 튀어나왔다. 동해바다 쪽으로 헬기가 월경을 하고 있다. 대공초소 근무를 서던 초병은 당황하여 넘어가는 헬기를 바라만 보고 있어 고함을쳐서 즉각 사격 명령을 내렸다 .
미군 치누크 헬기를 향한 우리 대공초소의 케리버50 중기관총의 사격 몇발이 끝나자 220 GP에서 30-40발의 요란한 총성이 들렸다.
GP의 중기관총 사격 역시 헬기 조준 사격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헬기가 구선봉 넘어로 모습을 감추고 3-4분이 지났을 때 북에서 요란한 총성과 포성이 들려왔다. 북한군의 총성이었다. 그들이 어디를 향해 총을 쏘는지 우리 초소에서는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고 단지 요란한 총성만 들렸다.
북한군의 총성이 그치자 대대와 중대로부터 상황을 보고하라는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전방 GOP 부대의 모든 화기는 즉각 사격 태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중기관총이 자동 발사가 안되 제대로 사격을 못한 책임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왔다.
초소장으로서 이런 돌발 상황을 대비해 평상시 전 대원들을 케리버50 분해결합 교육을 시켰었다. 바다를 향해 연습 사격도 여러 번 했다. 이 모두 상급부대서 강제하지 않은 초소장의 자발적인 훈련이었다. 전임 초소장은 인수인계하면서 대공초소에 고정 근무자를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근무자가 늘어나면 소대의 가용 인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인은 결과를 가지고 말해야한다. 전날 밤에 비가 내려서 총이 제대로 작동을 못했다. 낡은 총이라 문제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단지 넘어가는 헬기를 표적으로 우리 초소에서 최초로 사격을 가했다는 사실에 좀 위안이 되었다. 대대 본부에는 승전포라는 중기관총 4개 총열을 붙인 고성능 대공무기가 있었다. 그러나 헬기가 월경할 때까지 단 한발도 사격을 하지못했다.
대공 초소에서 텅빈 하늘을 보며 정신차려 보니 또 다른 실수가 보였다. 헬기를 대공포로 격추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소총 사격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넘어가는 헬기는 바다쪽으로 멀리 떨어져 비행했지만 워낙 큰 몸통으로 M16 소총의 유효사거리 안에 있었다.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초소장의 책임 부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케리바50 을 5발 밖에 사격을 못하고, 소총 사격을 못한 대책을 준비하기로했다
대공초소의 초병 소총을 뺏어들고 벙커안으로 들어갔다. 벙커의 총안구에서 밖으로 보이는 DMZ를 향해 2탄창을 연달아 사격했다.탄피 30발을 만들었다. 케리버 50 탄통에서 탄알을 10발 쯤 분리했다. 탄알에서 탄두를 뽑아내 탄피를 만들었다. 탄두를 뽑아낸 탄피와 실제 사격 탄피를 비교해보니 차이가 있었다. 우선 공이치기가 작동하지않아 뇌관을 때린 자욱이없다. 탄피를 다시 총열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니 같아졌다. 다시 비교해보니 화약이 터지지않아서 탄피 속에 그으름이 없었다. 쏟아낸 화약을 다시 탄피안에 넣고 불을 붙여 연소한 그을음을 만들었다. 또 다시 정밀 비교하니 칼퀴 자욱이 없어 톱을 가져와 칼퀴 자욱을 만들었다. 치사한 짓거리였다. 초소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운이 없는 나 자신을 위해 이렇게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몇일 후 상급 부대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은 정 반대였다. 한미합동조사단이 나와서 물어 오면 미군 헬기에 직접 조준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답변하라한다. 탄통의 탄알은 6발에 1발씩 예광탄을 장탄해 놓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당시 한미 관계는 최악의 상태였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박대통령은 강공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한국군의 내심 은 미군 철수를 막아야할 입장이었다. 따라서 미군을 향해 직접 사격을 가하지 않았다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
우리 초소의 낡은 중기관총 케리버50이 정상 작동되어 운 좋게 미군 헬기를 격추했었다면, 나와 우리초소는 영웅이 되었을지 몰라도 국가 안보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란 생각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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