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헤어짐

Sam1212 2022. 6. 5. 16:59

전우회 카톡방에  전우의 모친상 부고가  떴다. 청주에 거주하는 정현모 회원이다. 오미크론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  문상 가는 일은 어려워 보였다. 청주에 사는 한 대원이 문상을 다녀와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문상을 하면서 喪主인 정현모 대원이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일주일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전한다.

 

장례식을 잘 마쳤다며 정현모 대원의 아들이 감사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상주 없이 장례를 치른  슬픈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했다. 이틀 후에 더 참담한 소식이 들어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정현모 대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갈이다.

 

정현모 대원은 77년 전방 GOP 근무할 때 함께 했던 대원이다. 전역 후 30년이 훨씬 넘어 소대 전우회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사람의 얼굴 모습은 수 십년이 지나 도 크게 변하지 않아  옛 모습을 쉽게 찾아내며 그때의 모습과 비교하며 반가워한다.

 

정현모 대원은 내가 만난 소대원 중에서 유달리 외모의  변화가  커서 놀랐다. 머리를 장발로 기르고 턱수염도 가슴팍 까지 내려오게 기르고 있었다. 한번은 모임을 마치고 대원들 함께 산행을 나설 때였다.    등산객들이 정현모를  산속에서 사는  도인인줄 알고  힐끔힐끔 쳐다보며 도사님 내려오셨다고 수근댔다.

 

정현모 대원에게 더욱 놀랜일은 따로 있다.  전우회 모임은 일년에 두 번 봄 가을에  유명한 산이나 계곡을 찾아  1박2일로 진행된다.  마지막 일정은 항상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등반을 통해 땀을 흘리며 전우애를 다지는 시간이다.  한 대원이 나에게 다가와  정현모 대원이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고 의족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함께한 4번의 산행에서 그가 한번도 낙오하거나 대열에서 쳐지지 않고 정상에 함께했다.

 

정현모 대원은 부드럽고 소박한 인상의 말수가 적은 병사였다. 그와  GOP에서  1년 정도 함께 생활 했으나 특별한 기억을 남기지 않은 걸 보면 모범적인 병사였음이 틀림없다.   전우회 30여명 회원의 군 입대 서열상으로는 중간에 위치한다.  당시 군 복무기간은 3년으로  상하위 5명 정도는  복무 기간이 겹치지 않는 회원도 있다. 전우회 모임에 참석해 분위기를 살펴보면 전우애의 강도는 함께 부딛치며 생활한 기간과 어떤 경험을 공유했는가에 비례한다. 정현모는 서열이  중간이서 위아래로 모든 경험을 함께 했기에 대원들간에 링커 역활을 잘 해주었다.  

 

2019년에 있었던 전우회 모임에서 정현모 대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해안초소 근무 시절 어로한계선을 넘어  북으로  향하는 선박이 있었다.  화기분대 신참병으로 소대의 기관총과 무반동총을 장전해 놓고 소대장의 사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을 때 긴장했었다며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당시 신참병으로 당연히 긴장했을 것이고 4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한 편의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정현모 대원과 각별히  가까웠던 몇몇 대원들이 코로나 방역망을 뚫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다고 전해왔다. 40여년 전 청춘 시절 GOP부대에서 몸으로 부딛치며 맺은 인연의 끈을 쉽게 놓아주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상주인 아들이 문상온 부친의 전우들에게  아버지께서 생전에 군시절 경험담과 전우회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전했다.  

 

정현모 대원이 먼저 떠났다. 소박하게 웃는 앳된 얼굴의 청년에서 긴 수염의 도사님으로 변할 때 까지 열심히 살다 떠났다.  전우회 링커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었는데 아쉽다. 정현모 대원을 떠내보내며 바라본  석양빛이 오늘 따라 더 붉어 보인다. 먼저 천국에 들어가 그곳에서 전우회 모임을 만들어 뒤에 오는 전우들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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