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여단 1대대 2중대 2소대' 출신 대원들에게 강필중 총장의 소집 명령이 단톡방에 떳다.
-훈련 일정: 10월 27~ 28일
-집합 시간: 오후 5시
-장소: 경남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 수목원.
매년 봄가을 두 차례 갖는 전우회 모임이다.
40년 전 빽도 없고 끗발도 없는 젊은이들 대한민국 최 동북단 철책선을 지키며 3년의 험했던 군 생활을 훌륭하게 마쳤다.
야간에 전반야조 후반야조 나뉘어 밤새워 철책 경계를 했고 주간에는 취침조와 교육 또는 작업조로 나눠 하루 일과를 수행했다.
당시엔 무슨 작업이 그리 많았던지 화목작업 가로목 작업 순찰로 작업 통신선 매설작업 철조망 설치작업 방카작업 제설작업 등등 헤아리기 벅차다.
어떤 때는 총잡는 시간보다 톱이나 낫 삽과 곡괭이 잡았던 시간들이 더 많았다. 이런 힘든 군 생활이 우리의 전우애를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이번에도 고광동(전남/해남) 대원이 운전하는 승용차로 소집에 참가했다. 매번 이동시 마다 고광동 대원의 신세를 지고 있다. 고맙고 미안한 맘이다.
고대원은 군 시절 전령을 맡아 보았기에 나와는 각별한 친근감이 있다. 그는 전남 해남 출신으로 중랑구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 요즘 불경기로 고전한다고 전했다. 금천구에 사는 지필순(경기/이천) 대원도 동승해 내려가겠다고 해 예술의 전당에서 11시30분에 합류 함께 출발했다. 지필순 대원 또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안 초소 근무시 경기도 이천 출신 신병이 소대에 3명 들어왔다. 대원 몇 명을 데리고 벌목작업을 나갔을적에 신병인 지필순이 함께 했었다. 작업을 끝내고 집합해서 보니 지필순 대원이 낫으로 손가락을 조금 베어 피가 흐르는 데도 아픈 내색을 안하고 있었다. 내가 걱정스러워 물어도 괜찮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던 신병의 모습이 생생하다.
지대원은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전우회 모임에 몇 번 참석을 못했다. 다행이도 최근 많이 회복되어 이번 모임에 함께하게되었다.
중부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교통 체증이 심해 예상 시간 보다 1시간 이상 지체되었다. 오창 휴계소에 들러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탓다. 무주구천동을 지나며 창밖을 보니 가을 풍경이 황홀경을 자아낸다. 벌써 다른 대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우리차 뒤엔 경기도 이천에서 출발한 대원들이 30분 정도 늦고 있다. 이번 모임엔 우리 팀이 이동거리가 가장 멀다. 4시가 넘어 수목원에 도착하니 숙소로 예약된 방갈로 큰 방엔 기다리다 치친 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 파티를 벌이고 있다.
올 봄 근무 부대 방문 행사에서 만나고 6개월 만에 만나는 반가운 전우들이 보인다. 경남 의령 고향으로 낙향해 들깨 농사를 짓고 있는 노수경 대원, 머리가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젊은 시절 재치와 유모를 가지고 있다. 통영에서 가두리 양식장을 경영하는 신중석(경북/대구) 대원은 우리 소대의 왕고참이다. 아산에서 작은 식품 공장을 하는 변은섭 대원 이번에도 연잎 쌀국수 선물 쎄트 20개를 준비해 가지고 왔다. 봉화에 사는 허광회 대원 매번 맛있는 떡을 만들어 가지고와 상차림을 풍성하게 해준다. 청주 건설업계서 아직 현업에 뛰고 있고, 우리 모임을 결성해 회장을 맏고있는 이상래 대원 일찍 도착해 현장을 챙기고 있다. '진주술통'이라 자신의 닉네임을 지은 진주 사는 강필중 대원, 모임의 사무총장을 맡아보며 궂은일 어려운 일을 뒤에서 소리 없이 마무리하는 모임의 큰 일꾼이다.
예약된 식당에 모여 대원들이 가장 기다리던 여흥의 자리가 시작되었다. 시작 전 내가 간단한 인삿말과 함께 옛 추억담을 전했다. 40년 전 철책선 지하 벙커에 모여 가졌던 소대회식은 지금 생각해도 가장 신나고 스릴 넘친 회식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회식 자리를 가졌으나 결코 당시의 회식과는 비교될 수 없다. 금주령이 내린 살벌한 군 풍기 유지 상태였으나, 우리는 산 아래 민통선 마달리 마을에 특공대 작전을 통해 경월소주 댓병 박스를 올려왔다. 당시 회식에 4병을 풀면 전대원 분위기 최고에 올랐다. 기분 내켜 1병을 더 추가하면 사고 위험성이 100배 증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롱불을 밝힌 지하벙커 2층 침상에 전 소대원이 빼곡이 앉아 철제 양동이와 식판을 두드리며 벙커가 터져나가도록 목청껏 노래를 불러댔다. 당시 많이 불렀던 유행가로 ‘삼팔선의 봄’ ‘나는 못난이’등이 생각난다. 당시 난 회식 시작 전과 끝난 후 차렷 자세로 보고를 받고 밤새 순찰 활동을 함께 함으로 사고 위험성을 제로로 만들었다.
군대 모임의 술자리 주제는 10년 20년이 지나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 매번 나왔던 이야기나 무용담이 돌고 돈다. 반복 되는 이야기인 데도 참여자 누구도 지겨워하지 않는다. 우리 소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병장한테 빳다 맞았던 이야기 군기 위반으로 처벌 받았던 일 힘들게 작업했던 이야기들이 주로 나온다. 그러나 우리 소대원들에게만 특별한 경험담이나 자긍심이 담긴 이야기들이 몇 개 있다.
2분대원들은 대대 전술 훈련 평가에서 1등을 했다, 전 대원이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지금 모임의 회장을 맏고 있는 이상래 분대장의 역할이 컷다.
화기분대원들은 특별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기관총 사수 부사수가 4대를 이어져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대원들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70년대 말 전쟁을 막은 것은 미군의 전략자산이나 한국의 특전사 또는 해병대가 아니다. 우리 2소대 화기분대 위력을 북에서 알아보고 감히 도발을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번 모임에 부산에 산다는 막내 신입 대원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어느 모임이나 고참 선배들이 많은 모임엔 신참들이 참여가 부진한데 다행이다. 술기운 때문인지 일어서 선배들에게 한 마디 했다. 이런 모임에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시중을 들고 대접을 해야 한다고. 역시 젊은 피라서 그런지 말에 거침이 없다. 사실 말은 바른 말이다.
저녁 회식 자리를 마치고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전 대원이 한곡 씩 뽑으며 흥이 오르자 춤판으로 넘어갔다. 대한민국에 노래방 문화가 들어와서 모두가 가수가 되었다. 나도 회식 때 마다 힘들어 했던 자리를 노래방 덕분에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래방 파티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또 끼리끼리 모여 술과 함께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경상도 출신 대원들의 사투리가 어찌나 큰지 한 쪽 귀가 약한 나는 견디기 힘들 정도다. 특히 봉화 출신 허광회 대원의 투박한 고음은 마치 싸움판 벌어진 것 같다. 슬며시 자리를 이탈해 2층에 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지난 번 모임엔 자정이 넘도록 고함소리가 들려 잠을 설쳤는데 이번엔 많이 좋아졌다.
생각보다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숲속의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간단하게 요기를 마친 후 모두들 금원산 등반을 출발했다. 금원산은 해발 1,500m가 넘는 꽤 높은 산이다. 정상 아래 전망대를 탈환 목표로 삼았다. 대원 모두 육순이 넘은 나이라 쉽지 않은 등반이다. 정현모(충북/청주) 대원은 한쪽 발이 의족으로 불편한데도 함께했다. 모두들 목표 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정상에서서 내려다보이는 가을 단풍에 물든 산들이 장관이다.
산을 내려와 아침 겸 점심 식사로 거창읍내로 이동해 추어탕을 함께했다. 거창은 직장 생활 하는 동안 몇 번 출장 와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고장이다. 내륙 깊숙이 위치한 읍이지만 크고 깨끝한 모습이다. 특히 읍내 남쪽을 관통해 흐르는 냇물은 지금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대원들과 내년 봄 모임을 약속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헤어졌다.
서울로 출발하려고 차에 오르는데 거창 출신 송홍규 대원이 우리 차에 달려왔다. 어렵게 거창에 왔는데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 한 번 가봐야 한다며 우리 차에 동승한다. 송홍규 대원은 이번 모임에서 첫 대면 했다. 소대 전입 일자를 알아보니 내가 전역하고 들어온 대원이다. 함께 동승한 고광동 대원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말하고 지필순 대원만이 함께 근무 했다 전한다. 고향은 거창이나 지금은 부산에 거주한다.
함께 차를 타고 그가 태어난 마을을 찾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풍광이 수려하다. 마을에 살며 사과 과수원을 하는 고향 친구에게 연락해 우리에게 선물할 사과를 준비시켰다. 사실 처음 송홍규 대원이 우리 차에 달려와 이야기 할 때 그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해보니 친구가 아직 사과를 준비하지 못했다. 모두 함께 과수원에 가 사과를 직접 따기로 했다. 작은 트럭 짐칸에 올라 과수원을 올라가는 산길 풍광이 너무나 멋지다. 얼마 전 고속도로변에 빨갛게 익은 사과밭을 보고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오늘 그 소망을 풀었다. 우리는 사과나무에서 직접 사과를 따 상자에 담았다. 지필순 대원이 사과 값을 지불하려하자 송홍규 대원 과수원 주인 모두 손사래를 친다. 사과 값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대원들은 마지막 까지 뜨거운 전우애를 나누었다.
나이 들어가며 점점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위축되지만, 가끔 오늘 같이 삶의 기쁨을 맛볼 때도 있다. 이게 바로 사나이들의 우정이자 전우애다. 우리 2소대원들의 전우애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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