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 13 (철모고지)

Sam1212 2021. 5. 1. 12:01

소대 쎅타 좌측 끝부분에 '철모고지'라 부르는 작은 언덕이 있다. 아래 쪽 개활지에서 바라보면 철모를 바닥에 내려놓은 모양이서 그렇게 불렸나보다.

정상에는 작은 벙커가 있다. 이 벙커는 사용하지 않고 벙커 지붕위에 대공 초소를 만들어 주간 경계 초소로 사용한다.

야간 경계 원칙은 낮은 계곡에 위치하기에 밤에는 철모고지 아래서 근무를 섰다. 소대장도 야간 순찰은 철모고지를 한번 다녀오는 것이 일과다.

 

신병은 통상 부대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까지 근무자 편성을 하지 않는다. 몇 일이 지나면 소대장이 순찰 나갈 때 동반하여 철책선의 근무 분위기를 익히게 한다.

소대에 신병(유병식/강릉)이 한 명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귀엽게 생겨서 큰 고생 안하고 자란 모습이다. 부대에 적응이 좀 되었다고 생각되기에 순찰에 동반했다. 철모고지 에 도착하여 근무 중인 분대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철모고지의 전설을 들려주었다. 철책선이 만들어지기 전 60년대 북한군이 야간 침투하여 철모고지 벙커에서 자고 있던 아군을 화염방사기로 몰사시키고 돌아갔다. 당시 불탄 흔적으로 벽이 새까맣게 그을렸고 벙커는 폐쇄 되었으나, 이곳이 위치가 너무 좋아 여전히 주간초소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철책선이 세워지기 전에는 이런 유형의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 GOP부대의 교육 자료에 많이 소개되고 있었다.

 

초병들이 이곳 철모고지 초소에서 근무서다가 깜박하고 잠이 들면 누군가 목을 조르는 답답한 느낌이 들어 잠이 깨곤 한다. 당시 북한군에게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나타나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대략 이런 좀 으스스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과장해서 신병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군장을 완전 해제 시키고 신병을 철모고지 계단을 혼자 올라가서 그을린 벽에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내려오라고 했다. 신병은 약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혼자서 캄캄한 철모고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 모습을 분대장과 함께 웃음을 참으며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철모고지 야간 순찰을 돌고 초소에 돌아와 감상을 책갈피에 적어놓았기에 소개 한다.

 

 

철책선에서

 

풀벌레소리 그치고

밤이슬 헤치고 철책선에 서면

갈대밭 노루 울음소리

잡은 총에 힘이 간다

 

철조망에 걸린 달

어머님의 얼굴이고

소나무 밑 바람소리

아버님의 당부이어라

 

철모고지 허연 달빛

군번 잃은 병사들 춤을 추고

구선봉 위 박힌 북극성

천년 두고 말이 없다

 

철교 밑 개울물에

졸음 떨쳐버리고

머리 들어 동해 바라보면

어느새 태양은

수평선을 넘었는가.

 

* 군번 잃은 병사들; 철모고지 벙커에서 북한군의 화염방사기 공격에 희생된 병사들.

* 구선봉: 북측 해안에 위치한 큰 봉우리, 낙타 등처럼 생겼다해 낙타봉이라 불렀다.

* 철교: 초소 우측 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가는 폐선 된 철길이 있고 초소 바로 앞에 개울물이 흘러 동해 바다로 들어간다. 이 개울 위에 철교가 있고, 후반야 대원들이 아침에 철수하면서 이 개울물에 세수를 하고 초소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