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3 (경계 근무)

Sam1212 2021. 5. 1. 11:57

초소의 임무는 완벽한 경계근무다. 경계 근무라 함은 초소 전방에 설치된 철책선 지역을 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적의 침투 기도를 알아내고 방어하는 일이다.

 

휴전선 155마일에는 6,70년대에 공사한 경계용 철책 공사가 완공되었다. 철책 전방 20m 정도는 시계 확보를 위해 나무나 잡풀이 모두 잘려진 볼모지대다. 매년 봄여름이면 이곳에 새로 자라나는 잡목을 제거하는 시계 청소 작업을 한다. 이때 전방으로 조금 더 나가 작업을 수행하다 지뢰 폭발 사고를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전방 풀숲은 대부분 미확인 지뢰지대다.

 

경계 취약 지역에는 철책 바로 앞에는 폭 3m 높이 70cm 정도의 2단으로 된 고압 전기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이따금 고라니나 산양이 고압전기에 감전 죽는 사건도 목격한다. 철책은 높이가 3m정도 높이로 Y자형 철주 위에 윤형 철조망이 걸려있다. 침투하는 적 요원 뿐 아니라 우리 병사도 뛰어 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철책을 뚫기 위해선 절단기를 사용해야한다. 그러나 하단 1.5m 정도에는 지름 4~5cm의 나무로 촘촘하게 울타리처럼 엮여있어 철책을 절단하고서도 쉽게 통과하기는 힘들다.

 

적의 예상 침투가 우려되는 지역에는 철주 위에 크레모아가 설치되어 있다. 크레모아는 월남전에서 침투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미군이 개발한 폭약탄이다. 70년대 한국산을 생산해 전방에 설치되었다. 두꺼운 책 모양의 플라스틱 통 안에 600여개의 작은 쇠구슬이 폭약과 함께 들어있고 후방에서 전선으로 연결된 격발기를 누르면 쇠구슬 탄 600여발이 전방으로 비산 발사된다. 이 크레모아가 소대마다 10여발이 철책 위에 설치되어 있다.

 

철책선 경계는 크게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로 나눠진다. 주간 근무는 철책선 앞 시야가 트인 높은 봉우리나 언덕위에 독립 초소에서 2명 일개조로 근무한다. 주간 근무는 통상 외곽 초소 1개를 운용 한다 DMZ 통문을 관리하는 소대는 SRP라 칭하는 통문 관리초소가 주간 초소를 함께 맡기도 한다. 주간 근무는 시계 확보가 잘 되고 철책선 주변에서 이동하거나 활동하는 병사들도 있어 철책의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데 큰 위험성이나 긴장감은 없다.

 

야간 근무는 저녁 식사 후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근무조가 투입된다. 사전 편성된 근무자 편성표에 따라 투입된다. 근무자들은 초소 앞에 일열 횡대로 집합하여 초소장으로 부터 실탄을 지급받고 암구호를 수령하고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달받는다. 조당 1발씩 수류탄을 지급받아 휴대할 때도 있고 월남전에서 사용하던 테니스채 가방만한 스타라이트스코프라는 적외선 야간 투시경 장비를 휴대하고 투입되기도 한다.

 

2명이 한조가 되어 3~4개조가 취약지점 에 고정 배치된다. 조는 고참병과 하급병으로 편성한다. 주간에는 시계확보를 위해 높은 곳에 위치하나 야간에는 반대로 낮은 지형 참호에서 잠복근무 형태를 취한다. 전반야조는 저녁에 투입하여 자정까지 근무를 서고 후반야조는 자정에 교대조로 투입되어 날이 완전히 밝으면 철수한다.

 

근무 상태를 확인 점검하기 위해 선임하사와 소대장이 1회 정도 순찰을 나간다.

순찰은 통상 소대원 1명을 동반한다. 신임 소대장 때에는 지형 파악도 미숙하고 대원들의 성향 파악도 미흡해 긴장된 상태로 순찰 활동에 임한다.

 

GOP 부대에서는 야간 수하 단계가 1단계 생략되어 있다. 초병 근무자가 전방의 미확인 인력이 접근 시에 총을 겨누고 손들어’ ‘뒤로돌아’ ‘암구호’ ‘누구냐’ 4단계 중에서 뒤로돌아를 생략한 3단계를 적용한다. 암구호를 정확하게 대지 못하면 누구냐 단계를 생략하고 총알을 발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암구호는 상급 부대에서 매일 매일 음어로 전송 받는다. 암구호는 통상 쉬운 한글 낱말과 한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영어 단어로 조합을 이룬다.

 

순찰자의 임무는 초병이 규정대로 경계를 잘 서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모든 병사들이 항상 근무를 잘 서는 것은 아니다. 낮에 힘든 작업을 했거나 운동 시합이 있어 피곤한 경우 신참 병사만 근무를 서고 고참병은 쪼그리고 앉아 졸거나 잠을 자는 경우가 있다. 가끔 전방에서 야간에 적 간첩 침투나 또는 귀순 병사가 초병에 발견되어 사살되거나 생포되는 뉴스가 나올 때 최초 발견한 병사가 초임병인 경우가 많은 이유다.

 

소대장 생활 6개월쯤 지나 지형과 환경이 익숙해지고 대원들도 소대장의 성향과 목소리 파악이 다 끝나면 모두 노련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이때면 수하 규칙도 많이 생략된다. 순찰 길에서 근무자에게 수하를 받으면 소대장이다라는 목소리 한마디에 충성, 근무 중 이상무라고 답신이 온다.

 

근무서는 초병들도 대원들 끼리 그들만의 비밀 신호체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소대장이 순찰 나가면 소대 상황실에서 고정초소 근무자에게 유선전화로 알려준다. 잠복호에 근무하는 초병들은 철책선의 지주 파이프를 두드려 순찰자가 접근중 이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대대 나 연대 단위 상급 부대에서도 순찰봉을 만들어 담당 경계 구간을 이어달리기식 전달을 통해 철책선 경계에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한번은 대대장한테 전화를 받았다. 오늘 후반야조 순찰에 나가 0255분에 소총 3발을 쏘라는 지시였다. 사격 전 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다. 철책을 순찰 하면서 지정된 시간에 DMZ 계곡에 사격을 했다. 날카로운 총성이 밤의 깊은 정막을 찢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당연히 대대 관할 각 초소에서 상황보고가 올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어둠속에 펼쳐진 철책을 바라보며 졸음을 참던 고참병도 고향생각에 잠겼던 초임병도 정신이 번쩍 드는 긴장 상태로 돌아갔음이 분명하다. 대대장이 생각해낸 멋진 아이디어였다.

 

2018년 봄에 우리가 근무했던 건봉산 부대를 찾아 요즘 후배들의 철책선 경계근무 모습을 살펴보았다. 모든 게 현대화된 첨단 장비로 바뀌어 있었다. 중대 본부 상황실에 모니터 화면으로 철책선 이상 유무를 들여다보고 있다. 개인용 적외선 탐지 야간 장비도 보급되어 우리가 근무 시 들고 나갔던 테니스 가방만한 스타라이트스코푸는 구시대 유물 되어 사라져 현지 대대장은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