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 28(지휘 통솔)

Sam1212 2021. 4. 30. 23:49

GOP부대의 초소장 근무는 힘든 일과의 연속이다. 힘들다는 표현은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보다는 정신적 중압감을 말한다. GOP 부대는 6개월 단위로 철책선 경계근무에 투입된다. 나머지 6개월은 예비대 생활이라 하여 중대 단위 막사에서 생활하며 훈련과 교육으로 일과가 편성되어있다. 육체적인 고생은 예비대에서 생활이고 정신적 중압감은 철책선 경계근무 생활이다.

 

철책선 소대장은 초소의 모든 책임을 맡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이 긴장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힘들다. 긴장감이 풀리고 느슨해지면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대장의 임무는 소대원들의 인간 관리를 통해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일이며 이와 같은 행동을 지휘 통솔이라 말한다. GOP 소대장의 경험은 대원 30여명을 지휘해 보았다는 경력을 말하며 이런 경험은 사회에 나와 직장 경력 10년차 정도에 해당된다.

 

좁은 지하 벙커에서 30 여명이 생활하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소대장의 역할은 모든 대원의 성격 대원들 간 교류 관계 지방색을 내밀하게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30 여명의 대원들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개인별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고민 사항이나 애로사항을 알아내 도와주고 풀어주는 일이다.

 

지휘 통솔이라는 용어는 지휘자가 부대의 병력을 책임지며 이끌어나가는 리더쉽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두 용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지휘는 합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을 규정에 따라 지시 또는 명령을 행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 반면에 통솔이란 리더의 인품이나 덕성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 부하들의 자발적인 업무수행이나 순종을 이끌어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처음 철책선 경계부대에 부임하면 원칙대로 잘해보겠다는 책임감과 의욕이 앞선다. 야간 순찰도 열심히 나간다. 순찰 도중 초병이 근무 규정에 어긋난 행동이나 자세를 적발하면 그 자리에서 화를 내거나 체벌을 가한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소대장도 힘들고 대원들도 힘들어한다. 열심히 규정대로 철저히 관리 감독하고 규정을 위반한 병사에게 질책과 벌을 가하는 방식은 지휘라는 계급에 무게를 실은 리더쉽이다.

 

규정대로 열심히 한다고 부대 관리가 생각대로 잘 이끌어지지 않는다. 처음 얼마동안은 긴장하고 질책과 처벌이 두려워 기강이 유지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긴장감은 떨어지고 도망가는 자와 쫒는 자로 변해간다. 점점 도망가는 자의 기법은 발전하고 쫒는 자의 처벌 수위는 올라간다.

 

소대장 생활도 6개월에서 1년쯤 되면 경험이 쌓이고 관록이 붙는다. 이때쯤 되서 규정과 엄벌만으로 소대원대 관리가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통솔이라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대원들과 개인적 면담이나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을수록 좋다. 나는 소대장실로 한명씩 불러 개인 면담 시간을 통해 신상파악과 애로 사항을 들었다. 소대원별 면담 노트를 만들어 놓고 애로 사항이나 고민 사항이 처리 되었는지 점검해보고 대화를 나누면 너무 좋아한다. 한번은 순찰 나가서 고향이 시골인 초병 근무자의 시골 생활 겪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철책선을 바라보니 희고 밝은 달이 철조망에 걸려있었다. 철조망에 걸린 달빛 정취에 취해 나누었던 소대원과의 대화를 생각하며 나도 시심이 동하여 초소에 들어와 시 한편을 책갈피에 적어 놓았다.

 

야간근무 나가서 졸거나 잠을 자다 순찰에 발각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주간에 힘든 작업을 했을 때이다. 소대장 생활이 노련해 지면 소대장실에 누워있어도 누가 지금 졸고 있고 잠을 자고 있을지 머리에 떠오른다.

 

전 대원이 주간에 힘든 작업을 수행한 후였다. 새벽 4시쯤 되어 화장실 가는 복장으로 초소를 나왔다. 화장실은 지하 벙커에서 20m정도 후방에 있다. 소대장실 앞에 상황실이 있고 야간근무 중인 상황병은 소대장이 순찰을 나가는지 화장실을 가는지 복장만 보고도 알 수 있다.

 

트레닝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와 철책선 후면 보급로를 따라 쏜살같이 달려가 초소의 근무자를 확인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벽에 기대놓은 소총에서 탄창을 제거해 가지고 돌아왔다. 상황병은 화장실 간 소대장이 볼일 보는데 오래 걸려 조금 늦게 돌아온 줄 알고 있었다.

 

후반야조는 아침에 철수하고 투입 시 지급받았던 실탄453개 탄창을 통상적으로 상황병이 개인별로 정확히 확인하고 회수해 소대 벙커 내 탄약함에 보관한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나가 식사를 하는 대원들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생각했던 대로 상황병과 근무 섰던 고참병사와 분대장이 식당에 보이지 않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보니 식당 뒤에 모여 대책을 논의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실탄 한 탄창 분실은 엄청난 사건이다. 즉각 초소장에게 보고해야할 사항이며 엄중한 책임이 따르는 사건이다.

 

소대장실에 들어가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리고 상황병과 근무 섰던 병사가 들어왔다. 두 대원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탄15발이 장탄된 탄창을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