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엽서화

수성동 계곡

Sam1212 2021. 6. 5. 12:29

수성동(水聲洞)

 

인왕산 계곡

물소리 들으러 찾아왔다

어제 내린 비

작은 물길 되어

바위 절벽을 때린다

들린다

물소리

저 맑은 소리에

더러워진 내 귀를 씻어낸다.

(2021.6.4 悳)

 

 

초소이야기 29 (지휘 통솔))

 

 

GOP부대의 초소장 근무는 힘든 일과의 연속이다. 힘들다는 표현은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보다는 정신적 중압감을 말한다. GOP 부대는 6개월 단위로 철책선 경계근무에 투입된다. 나머지 6개월은 예비대 생활이라 하여 중대 단위 막사에서 생활하며 훈련과 교육으로 일과가 편성되어있다. 육체적인 고생은 예비대에서 생활이고 정신적 중압감은 철책선 경계근무 생활이다.

 

철책선 소대장은 초소의 모든 책임을 맡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이 긴장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힘들다. 긴장감이 풀리고 느슨해지면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대장의 임무는 소대원들의 인간 관리를 통해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일이며 이와 같은 행동을 지휘 통솔이라 말한다. GOP 소대장의 경험은 대원 30여명을 지휘해 보았다는 경력을 말하며 이런 경험은 사회에 나와 직장 경력 10년차 정도에 해당된다.

 

좁은 지하 벙커에서 30 여명이 생활하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소대장의 역할은 모든 대원의 성격 대원들 간 교류 관계 지방색을 내밀하게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30 여명의 대원들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개인별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고민 사항이나 애로사항을 알아내 도와주고 풀어주는 일이다.

 

지휘 통솔이라는 용어는 지휘자가 부대의 병력을 책임지며 이끌어나가는 리더쉽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두 용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지휘는 합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을 규정에 따라 지시 또는 명령을 행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 반면에 통솔이란 리더의 인품이나 덕성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 부하들의 자발적인 업무수행이나 순종을 이끌어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처음 철책선 경계부대에 부임하면 원칙대로 잘해보겠다는 책임감과 의욕이 앞선다. 야간 순찰도 열심히 나간다. 순찰 도중 초병이 근무 규정에 어긋난 행동이나 자세를 적발하면 그 자리에서 화를 내거나 체벌을 가한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소대장도 힘들고 대원들도 힘들어한다. 열심히 규정대로 철저히 관리 감독하고 규정을 위반한 병사에게 질책과 벌을 가하는 방식은 지휘라는 계급에 무게를 실은 리더쉽이다.

 

규정대로 열심히 한다고 부대 관리가 생각대로 잘 이끌어지지 않는다. 처음 얼마동안은 긴장하고 질책과 처벌이 두려워 기강이 유지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긴장감은 떨어지고 도망가는 자와 쫒는 자로 변해간다. 점점 도망가는 자의 기법은 발전하고 쫒는 자의 처벌 수위는 올라간다.

 

소대장 생활도 6개월에서 1년쯤 되면 경험이 쌓이고 관록이 붙는다. 이때쯤 되서 규정과 엄벌만으로 소대원대 관리가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통솔이라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대원들과 개인적 면담이나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을수록 좋다. 소대장실로 한명씩 불러 개인 면담 시간을 통해 신상파악과 애로 사항을 들었다. 소대원별 면담 노트를 만들어 놓고 애로 사항이나 고민 사항이 처리 되었는지 점검해보고 대화를 나누면 너무 좋아한다. 한번은 순찰 나가서 고향이 시골인 초병 근무자의 시골 생활 겪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철책선을 바라보니 희고 밝은 달이 철조망에 걸려있었다. 철조망에 걸린 달빛 정취에 취해 나누었던 소대원과의 대화를 생각하며 나도 시심이 동하여 초소에 들어와 시 한편을 책갈피에 적어 놓았다.

 

야간근무 나가서 졸거나 잠을 자다 순찰에 발각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주간에 힘든 작업을 했을 때이다. 소대장 생활이 노련해 지면 소대장실에 누워있어도 누가 지금 졸고 있고 잠을 자고 있을지 머리에 떠오른다.

 

전 대원이 주간에 힘든 작업을 수행한 후였다. 새벽 4시쯤 되어 화장실 가는 복장으로 초소를 나왔다. 화장실은 지하 벙커에서 20m정도 후방에 있다. 소대장실 앞에 상황실이 있고 야간근무 중인 상황병은 소대장이 순찰을 나가는지 화장실을 가는지 복장만 보고도 알 수 있다.

 

트레닝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와 철책선 후면 보급로를 따라 쏜살같이 달려가 초소의 근무자를 확인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벽에 기대놓은 소총에서 탄창을 제거해 가지고 돌아왔다. 상황병은 화장실 간 소대장이 볼일 보는데 오래 걸려 조금 늦게 돌아온 줄 알고 있었다.

 

후반야조는 아침에 철수하고 투입 시 지급받았던 실탄453개 탄창을 통상적으로 상황병이 개인별로 정확히 확인하고 회수해 소대 벙커 내 탄약함에 보관한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나가 식사를 하는 대원들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생각했던 대로 상황병과 근무 섰던 고참병사와 분대장이 식당에 보이지 않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보니 식당 뒤에 모여 대책을 논의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실탄 한 탄창 분실은 엄청난 사건이다. 즉각 초소장에게 보고해야할 사항이며 엄중한 책임이 따르는 사건이다.

 

소대장실에 들어가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리고 상황병과 근무 섰던 병사가 들어왔다. 두 대원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탄15발이 장탄된 탄창을 내주었다.

 

초소 이야기 30 (전령)

 

GOP 부대의 힘든 초소장 생활에  위안이 되는 제도가 있으니 전령이란 명칭의 인사 편제다. 보병소대의 전투 인원 편제는 병사 33명 과 1명의 장교다. 선임하사(중사)와 분대장을 직책의 하사관 4명과 전령 1명이 있다. 전령은 전투 시 소대장과 상급 부대 또는 소대원과 연락을 담당하는 병사다.

 

철책선 경계부대에서 전령은 실제적으로 소대장의  생활 도우미 역할을 한다. 전령은 경계근무 편성에서 제외되고 교육이나 작업에서도 열외 시킨다. 전령이 실제적으로 하는 일은 소대장의 식사를 책임지고 세탁물 잠자리를 챙겨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령은 소대장 세면 준비하고 나서 소대장실을 노크해 알린다. 겨울철이면 취사장에서 따뜻하게 데운 물을 준비해 세숫대야에 떠다 놓는다. 칫솔에 치약까지 짜주고 세수를 마치면 수건을 받쳐 들고 있다 전해준다. 소대장실 침구 정리 뿐 아니라 소대장의 속옷과 전투복을 세탁하고 다림질해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

 

전령이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일은 소대장의 식사와 식단을 챙기는 일이다. 취사장에서 정량 공급되는 기본 식단 외에 더덕이나 산나물을 채취해와 별식을 만들어가지고 오는 일이 종종 있다.

 

전령은 소대장이 직접 선정하는 경우는 없었고 상황병이나 고참 분대장의 추천하는 방식이다. 계급은 보통 일병이나 상병이 맡는다. 군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고 초소 주변의 지형에도 익숙해 있어야한다. 전령은 소대장과 항상 근접 거리에서 생활하기에 다른 대원들이 신경을 많이 쓴다. 소대장의 심기를 대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해서 다른 고참병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내가 소대장으로 부임해 첫 번 째로 만난 전령은 문준근(전남/장흥)이었다. 그는 듬직한 체격에 말 수가 적고 조금 무뚝뚝한 편이다. 특별했던 기억은 내가 주간 순찰이나 중대본부에 갔다 돌아올 때면 초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면 2~30m를 달려와 소총과 철모를 받아들고 갔다.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게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전남지역 출장 나와 장흥 지역을 지나갈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때 마다 혹시 문준근 대원을 만나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다. 한번은 혹시나 하고 장흥의 주막집에서 술 한잔을 하면서 주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가 장흥의 천관산에 대해 자랑하던 말이 생각난다.

 

두 번째로 함께한 전령은 이덕우(서울) 대원이. 키 크고 얼굴이 웃는 인상으로 잘생겼다. 말수가 작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으로 내가 좀 나무래도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입대하기 전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빌딩 유리창 닦는 일을 했는데 부모님이 위험한 직업이라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덕우의 도움으로 위기 탈출한 기억이 있다. 에비대 생활은 훈련이 많다. 전 중대원이 완전 군장에 산악 행군을 할 때였다. 건봉산을 오르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체력이 소진되었다. 대원들 모두가 힘들지만 소대장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낙오하면 소대는 무너진다. 10분간 휴식 시간에 모두들 배낭을 벗어 놓고 가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덕우가 사전에 준비 했었는지 어디서 구해왔는지 전투식량인 미숫가루 가지고와 물에 타서 마시고 기력을 회복했다. 그날 밤 야간 행군 도중에 바람이 불고 눈이 많이 내렸다. 더 이상 행군이 위험해 산 속에서 텐트치고 야영을 하게 되었다. 덕우와 한 텐트에 들어가 추워서 잠은 잘 수 없고 체온을 유지하며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덕우가 식판에 식사를 수령해왔다. 나는 춥고 떨려서 도저히 식사를 다 할 수 없어 반쯤 먹다 남겼다. 덕우는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내가 남긴 식사를 받아들고 허겁지겁 깨끗하게 비웠다. 덕우의 식사 모습을 좁은 텐트 속에서 마주했던 짠한 기억이 남아 있다.

덕우는 내가 직장생활 초년일 때 서울에서 반갑게 만나 식사를 함께하고 우리 집에까지 데리고 온 적이 있다. 그 후 연락이 끊겼으나 얼마 전 다른 대원들을 통해서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세 번째 전령을 맡았던 대원이 고O동(전남/해남)이다. 고대원은 조금 단신이고 통통한 편이다. 신체적 특징은 유난히 엉덩이가 크다. 일반적으로 이런 체형은 소총소대에서는 훈련 받을 때 고전한다. 걷고 달리는 일상이 많은 부대에서는 체형이 좀 말라서  약해보이는 병사는 의외로 훈련에 강하고 지구력도 강하다. 보병 소대장을 1년 쯤 하면 사람 보는 안목이 생긴다. 신병을 받을 때 서울 출신 배나온 병사를 받으면 절대 안 된다. 무장구보나 장거리 행군 시 틀림없는 낙오병이 된다. 비쩍 마르고 허수아비처럼 생겼어도 그런 대원은 끈기 있고 절대 낙오 안한다. 집단 훈련하는데 낙오병 한 사람은 소대 전력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

 

고O동 대원을 볼 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떠오른다. 휴가 나왔다가 동대문시장에서 사제 국산 침낭 하나를 구입해 가지고 부대에 들어갔다. 당시 부대에는 군용 침낭 보급이 없었다. 미군용 오리털 침낭이 군용물품 시장에서 암거래 되었고 국방색 폴리에스터 천에 보온재를 넣은 국산 유사품이 시장에 나와 있었다. 침낭을 혹한기 훈련이나 야외 훈련 시 가지고 나가면 아주 유용했다.

 

고O동 대원은 야외 훈련 때마다 내 침낭을 챙겨서 접어 본인의 배낭 아래 달고 참가 했다. 큰 무게는 없으나 그의 배낭 하단에 침낭 하나를 더 매다니 침낭이 엉덩이 까지 내려왔다. 걸을 때마다 커다란 고대원의 엉덩이에 걸려 뒤뚱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고O동 전령 때문에 야외 훈련 시 포근한 침낭 속에서 잘 수 있었던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초소 이야기 31(야생 동물들)

 

철책선 경계를 서다 보면 많은 야생동물을 만난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민간인들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로 수 십 년이 지났기에 DMZ 내에는 물론 밖에도 많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짐승은 고라니다. 그밖에 멧돼지 산양 오소리 등을 볼 수 있다.

 

고라니는 주로 철책선 안 억새밭에서 많이 서식한다. DMZ는 철책으로 울타리를 친 거대한 야생공원이다. 억새밭에는 고라니들만이 지나다니는 고라니 길이 나 있다. 봄철에 순찰을 돌다 고라니 울음소리에 깜작 놀란 적이 있다. 순찰로 바로 앞 억새 숲 속에서 갑자기 캬악하는 거친 외마디 소리가 나서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고 전방을 바라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튀어 도망가고 있었다. 봄철 발정기가 되면 고라니들이 흥분해 철책을 들이 받거나 날뛰는 모습이 목격된다.

 

병사들이 고라니를 사냥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전방 부대에 고라니를 잡으면 재수 없다는 말이 구전 되어 내려온다. 천만다행이다. 이 말이 없었으면 많은 고라니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재수 없다라는 말은 사고 난다는 말이다. 사고는 곳 인명 사고를 말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고라니 한 마리가 초소 앞 까지 내려와서 대원들이 사로잡는다며 초소 앞에 있는 철교 위로 몰아갔으나 물속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와 도망가는 것을 바라본 적도 있다.

 

멧돼지가 먹이를 구하러 초소 까지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초소에서 버리는 잔반의 냄새를 맡고 내려온다. 한번은 야간근무 초병한테 상황실로 전화가 와서 돌려받았다. 근무서는 개인호 앞에 커다란 멧돼지가 접근해 있는데 사살해도 되는지 나에게 물어왔다.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 했다. 나중에 근무자에게 물어봤더니 너무 가까이 접근해와 겁이 났다고 말했다.

 

고지대 위치한 초소에서는 가끔 산양도 목격된다. 옆 초소 지역에서 산양 한 마리가 고압 전기 철조망에 감전 되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전기 철조망은 h자 형태의 시멘트 지주에 높낮이를 다르게 폭 3m 높이1m 철조망 5줄이 쳐져 있다. 아래로 통과하기도 힘들고 위로 뛰어 넘기도 불가능한 장애물이다. 전기 철조망은 야간 취약 시간에 2~3시간 고압전류가 흐른다. 한번은 철책 안에 들어가 점검을 하면서 누가 설치했는지 전기 철조망에 2m정도의 철조망을 연결해 야생 동물이 지나다니는 길 방향으로 걸쳐 놓은 것을 발견하고 제거한 적이 있다.

 

해안초소 근무 시 오소리 한 마리를 대원들이 생포해왔다. 길이가 50cm 정도 작은 개만하다. 먹을 것을 찾으러 초소 부근까지 내려왔다 붙잡힌 것이다. 개 목줄을 매서 초소 옆 나무에 매어 놓았다. 식사 때마다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며 키워보려고 노력했으나 야성이 너무 강해 사람이 접근하면 성을 내거나 도망갔다. 몇일 동안 매어놓았다 풀어 줬는데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다시 초소 주변에서 발견 되어 대원들에게 또 붙잡혔다. 다시 한 번 목줄을 매어 나무에 매어 놓고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교육받으러 본부에 외출 했다 돌아오니 매어있던 오소리가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에게 물어보니 중대장이 초소에 들렀다가 약에 쓴다고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따금 독사도 대원들이 잡아온다. 독사는 남성의 양기를 북돋운다는 속설이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잡는 병사들이 있다. 해안초소 근무 시 선임하사(엄기순/춘천)가 독사를 잡아 탕을 만들어 먹으며 내게도 한 그릇 먹어보라고 가져온 적이 있다. 누런 뱀 기름이 떠 있는 국물이었다. 도저히 마실 수 없어 돌려보냈다.

 

중대원 전원이 새로 생긴 건봉산 유격장에서 야영생활을 하며 유격훈련을 받을 때였다. 대원 한 명이 커다란 독사 한 마리를 잡았다며 내 텐트로 들고 왔다. 독사를 건네받아 빈 음료수병 속에 넣고 병 입구를 막아 텐트 안에 보관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텐트 속으로 들어왔으나 그날따라 비바람이 텐트가 바람에 날아갈 정도로 거세게 불어댔다. 머리맡에 세워놓은 살아있는 독사가 들어있는 술병이 넘어져 깨지고 독사가 목을 물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병을 다시 발 뻗은 텐트 입구 쪽으로 옮겨 놓아도 휘몰아치는 바람에 깨질까 걱정이되 마음 조아리며 잠을 잤다.

 

다음날 마침 교동에 있는 중대 주둔지로 들어가는 수송차가 유격장에 들어왔다. 중대 행정병에게 독사가 들어가 있는 병을 건네주며 우리 소대 잔류병에게 전하고 잘 보관하라고 말해주었다. 독사가든 병을 소대에 보내 놓고도 마음이 불편했다. 잔류병들이 독사를 병에서 꺼내보다가 물릴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유격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맨 먼저 독사를 확인했다. 천만다행 살아있었다. 살펴보니 병 속에 오래 머무는 동안 분비물이 나와 조금 지저분해져 있다. 당시 독사를 잡으면 사주를 담아 집에 가지고 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사주를 담았다. 당시 PX에서 판매하는 인삼주병 모양이 표주박 모양으로 보기 좋았다. 인삼주 빈병에 뱀을 넣고 고량주를 채워 넣어 사주를 만들었다. 사주는 휴가 시 들고나가 고향의 할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초소 이야기 33 (파견 근무)

 

군에서도 파견 근무라는 직무가 있다. 파견이란 개인이나 조직이 본대에서 떨어진 특정 지역에 나가 독립적인 생활이나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GOP 부대의 중 소대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예비대 생활을 하면서 소대가 파견 근무를 명받았다. 소대의 2개 분대를 차출해 간성 비행장과 오호리 탄약고 경비 임무를 맡았다. 대대가 많은 소대 중에서 우리 소대를 차출한 것은 우리 소대가 전투력과 기강이 서있다고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소대장 입장에서 보면 대원의 주둔지가 3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지휘 통솔에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본대에서 떨어진 파견근무는 상급자의 눈에서 벗어나기에 파견대원들 입장에선 간섭이나 규제를 덜 받고 생활이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고 지휘자자 입장으로는 시야에서 벗어나 기강해이에 따른 문제 발생의 위험성이 따른다.

 

간성 들판에 전시 비상 활주로가 있다. 한 번도 비행기가 뜨거나 비상 착륙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마을 앞 들판 가운데에 만들어져 있고 활주로 외는 다른 건축물도 없다. 이곳은 대대 주둔지인 교동과도 가깝다. 인근 대대리 검문소에 헌병대가 파견 나와 있고 대대 주둔지인 교동과도 가까워 파견 근무자들의 군기 이탈 행위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호리 탄약고는 중대 주둔지 교동에서 10km 정도 후방에 독립된 부대로 민간인 마을과 인접해 있다. 초소 옆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1km정도 걸어 들어가면 태백산 줄기에 인정리라는 제법 큰 산골 마을이 나온다.

솔밭 속 작은 동산 아래 지하 탄약고가 있다. 전시 전투용 물자인 탄약과 포탄 상자들이 비축된 시설이다. 지상에는 탄약고를 경비하는 분대 규모의 인원이 생활 할 수 있는 막사와 취사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처음 방문해 파견 대원 8명을 배치하고 주변 지역을 둘러보니 해수욕장과 송지호가 근접해 있어 군 휴양소처럼 보였다.

 

7번 국도와 근접한 오호리 파견 분대는 대대 본부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소대장이 순찰 나가 근무 상태를 점검하기 전에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격고지 파견대였다. 소대장인 나도 처음에 한두 번 방문해 격려 겸 근무 자세를 교육하고 돌아 왔지만 너무 멀어서 자주 순찰 나가기 힘들었다. 순찰 점검 한 번 가려면 간성 읍내 까지 나가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분대를 파견을 내보내고 2개월쯤 지나서 여름에 불시에 순찰을 나갔다.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분대장을 맡고 있는 신한기(하사/부산)의 유한 성격이 문제였다. 분대의 제일 고참병 정삼채(병장/경북 청도)의 얼마 남지 않은 전역을 축하 한다며 술과 음식을 반입하여 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안초소에 암구호를 수령한다는 구실로 해수욕장 까지 나가 동네에 있는 식당에도 수시로 방문해서 술과 음식을 반입한 내역도 확인하였다. 초소 아래 송지호에 내려가 백조와 오리도 사냥 했음을 알아냈다.

 

군의 사고의 발단은 언제나 술에서 시작해 여자 문제로 얽히면서 터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대로 방치해선 큰 사고가 터질게 뻔 해보였다. 분대장과 고참 몇 명에게 단단히 기합을 주었다. 그대로 올라가면 다시 기강이 흐트러질 것 같아 당분간 숙식을 함께하며 군기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원들과 함께 자고 일어나 아침 구보부터 실시했다. 우리 초소 위 동네 인정리 까지 구보로 돌아오는 코스다. 매일 아침 내가 인솔하면서 군가 까지 부르며 마을 앞을 통과하니 마을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초소 정문 근무자는 야간에 규정대로 근무를 선다고 야간에 늦게 마을로 귀가하는 사람들이 초소 앞을 통과 할 때 마다 수하(손들어, 뒤로돌아)를 해 마을 사람들이 무척 당황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주민들에게는 수하를 하지 못하게 지시했다.

 

몇일 동안 함께 생활하니 파견 분대의 기강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초소 아래 있는 송지호에는 많은 새들이 날아온다. 백조라 불리는 커다란 고니는 보호 철새로 사냥이 금지되어 있다. 대원 한명을 데리고 꿩 사냥을 나갔다. 꿩의 습성은 마을이 근접한 야산에서 서식한다. 인정리 앞 야산에서 꿩을 찾아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앞 논둑에 앉은 장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조금 먼 거리에서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첫발에 못 맞추고 2번 째 탄을 조준할 때 날아갔다. 두 번째 탄을 못 쏜 이유는 M16 총소리가 산 계곡에 크게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조용한 산골 마을의 적막이 총소리에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지난 일이지만 인정리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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