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언덕에 가면
(한중섭)
제주언덕에 가면
세상사 접어놓고
흠뻑 취하고 싶은
그런 곳이 있다네
겨울 수선화
들꽃으로 피어나고
한라봉 해풍에 익어
금빛으로 탐스러운 곳
지척의 바다는 할일없이
온종일 뒤척이고
귀향온 삼방산
가족 그리며 누만년은
족히 보냈을 테지
쌈지돈 불리는 재미에
늙은 해녀는
바다밑을 뒤지고
마른기침하며 고깃배들 이른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제주 언덕에 가면 고달픈
일상을 뉘어도
좋은 마누라 품같은
그런 곳이 있다네.
"바다는 할일없이 온종일 뒤척이고"
군 복무 시절 해안 소초장으로 6개월 동안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생활한 적이 있었다.
파도 소리가 시원하고 싱그럽게 들리지만
끊어지지않고 온종일 철석거리는 소리는 때로는 무료하고 답답하며 짜증나게 들릴 때도있었다.
듣는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들리는 파도소리다.
시인은 언덕에 올라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푸근하고 아늑한 마누라 품을 연상했다.
난 섬에서 살고 싶다
(한중섭)
난 섬에서 살고 싶다
갈매기 울음 아침을 깨우고
철석이는 바다 일어나라 채근하면
햇살 비쳐드는창 열고
둘이는 커피를 마시리라
아침나절 뒷산 고사리 꺽고
늦게는 바닷가 미역 줍자네
나는 섬에서 살고 싶다
낮익은 바닷가로 동백숲 언덕으로
언제나 처럼 봄이 올라 오리니
제세상 만난 봄꽃 들 덮어 하늘대고
나뭇잎들 생기 더해 빛나리니
파도소리 만큼 친숙한 외로움도
이때만은 모두 잊혀지리
나는 섬에서 살고 싶다
봄비에 눅진 언덕배기 황토밭에는
고구마를 놓고
마당밭엘랑 고추 상추 심어 두면
기름진 것 싫은 천성
풍성한 밥상이 되리
흙털어 곤한 하루를 접고
손자놈들 떠올리다
단잠에 빠지리
나는 섬에서 살고 싶다
뒷산 밤 깨금 여물고
이어 머루 다래 무르리니
가을을 주어 주거니 받거니
좋아라 맛보고
닥엽옆 뒹구는 뜰로
그림자 길게 드리워 지면
애절한 울음 풀벌레와
세상사를 함께 하리라
달빛 시린 하늘
성근 별처럼 떠오르는 얼굴들
아내는 익은 술 내며 그리움 달래라네
나는 섬에서 살고 싶다
외로움도 그리움도
다독여 사랑하면서.
마라도
(한중섭)
등대 하나
공중화장실 한 곳
관세음보살님 한 분
짬뽕집 대여섯이
이스타섬의 모아이 처럼
바다를 향해 우두커니 서 있는 섬
뽕잎 먹는 누에처럼
시퍼런 바다는
사시절 쉼없이 갉아먹어
작은 언덕 하나가 전부인 섬
나들이 객들은
휑한 언덕배기를
한바퀴 서둘러 돌아
바람처럼 빠져 나가면
언제나 홀로 남겨져
외로움에 이골이난 섬
그리 무심하지는 마라도
누구든 올때마다
내 등짝에 한 그루 씩
동백이나 심어다오
빽빽한 숲으로 새떼 부르고
언젠가는 파도에 묻힐지라도
한 철 붉은 꽃이나 피우게
오지를 마라도
짬뽕국물이나 흘리고
바람처럼 버리고 갈거면.
제주는 제주다
(한중섭)
제주는 제주다
돌맹이가 돌맹이고
바람이 바람 이듯이
물에 빠져 돌아오잖는
애 아방은
바닷가 널린 돌맹이가 되었더냐
한 밤중에 문 흔드는 바람이 되었더냐
그 옛날 삼별초
쫓기고 쫓기다
마지막 시퍼런 결기
검은 바위 위에
선혈로 뿌려지고
무슨 죄가 있다더냐
무슨 허물 이더냐
배고프고 허덕이는 삶이 서러워
세월에 찌든 한
깃발 위에 붙여 놓고
졸졸 따라 다니다
역도로 몰리니
죄없어 죄많은 민초여
4.3의 한이여
슬픈 역사는 모두 잊혀졌는가
맺힌 한은 파도에 씻겨 갔는가
따뜻한 남쪽 바다는
귤밭으로 애들 키워
육지로 밀어내고
돈 많은 육지 놈들
돈 자랑하듯
보기 좋은 땅
모두 제 이름 붙이니
이제사 돈에 팔리는 고향
손님 접대에 바쁜 땅이여
아! 아!
무정한 세월 무정한 인심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돌맹이가 돌맹이고
바람이 바람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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