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지역 둘레길이 개통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지난봄에 첫 구간인 수유리의 순국선열 묘역을 둘러보면서 깊은 감동과 함께 북한산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기에 전 구간이 개통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전구간이 41킬로나 되어 한 바퀴를 돌아보려하여도 여러 날이 걸리고 주말 걷기를 즐기는 나 같은 사람들은 적어도 몇 개월 계획을 세워야 전 구간을 답사하게 된다.
오늘은 수유리 안내소에서 우측에서 출발하기로 정했다. 북한산을 중심으로 수유리 둘레길 안내소를 출발점으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도는 셈이다. 이번 '흰구름 구간'은 좌측 산길을 따라 가면 될 줄 알고 산길을 따라 출발했으나 잘못된 판단이었다. 산길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제자리 이다. 결국 안내소에 들어가 둘레길 지도를 한 장 사고 전체 구간도 확인하고 '흰구름길' 출발점도 재확인하였다. '흰구름길'은 안내소에서 찻길을 따라 50미터쯤 내려와서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 내 생각엔 북한산 둘레길이라 하여 모든 구간이 숲속으로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다.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서자 길 양편으로 넓은 정원을 가진 개인 주택들이 이어진다. 요즘 처럼 아파트 주거 문화가 들어서기 전에는 서울에는 제법 괜찮은 주택단지의 동네가 많았었다. 이곳 북한산 자락의 우의동과 수유동이 그 중의 하나이다. 북한산 자락의 이곳은 언제 와보아도 명당이고 길지 같아 보인다. 뒤엔 그림 같은 북한산 준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있고 완만하게 뻗어 내린 산자락엔 붉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록 앞마을 벌판을 흘러가든 시냇물은 시야에서 모두 사라져버렸지만 서울에서 이곳과 비교될만한 주택지는 없다.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지금 버스가 다니는 큰길가의 집안에까지 아름드리 노송들이 수도 없이 많았었다.
우리는 통상 풍수지리에서 양택지를 논 할 때 '배산임수지'를 제일로 치고 있다. 배산 임수 이론을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부터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경험으로 얻어낸 가장 좋은 생존과 번식의 결과라 말한다. 넓은 들판 물가에는 항상 먹을거리가 풍성하고 언덕위의 집은 적의 침입자를 빨리 알아채고 위험을 느끼면 뒷문으로 산으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배산임수 이론이 아니라도 북한산의 푸른 숲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과 언제라도 집 앞 골목길을 따라서 산에 오를 수 있는 입산권을 보장받은 혜택 받은 주민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2,30년 동안 치솟는 땅값으로 꽤 살만했던 동네의 단독주택들은 허물어지고 국적 없는 다세대주택들로 모두 바뀌었고 요즘은 또다시 3,4층의 다세대 주택들이 모두 헐려나가고 2,30층의 고층 아파트로 바꾸는 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외국에 나가보면 2,3백년 된 주택들로 이루어진 도시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놀라곤 한다. 가까운 일본도 우리와 생활 습관이 비슷한데도 그들의 주거생활을 들여다보면 작은 정원에 이끼 낀 석물과 오랜 기간 잘 다듬어진 정원수가 보이는 검은 기와의 오래된 목조주택이 대도시에서도 제법 많이 눈에 띈다. 이들은 왜 모두 낡은 옛집을 헐어내고 현대 문명의 이기로 무장된 산뜻한 현대 주택에서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건축을 관리하는 법의 문제인지, 우리 한국인의 변화와 새로움을 즐기는 생활문화가 원인지 한번 생각해볼만한 주제이다.
주택가 골목길은 10분이 안되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 동네사람들의 산책길을 조금 보수하고 연결해 만든 둘레길이다.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인다. 좁은 산길을 올라가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어깨를 부딛칠 정도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둘레길이 완공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둘레길 사업은 대 성공이다. 숨어있는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작은 예산으로 커다란 성과를 만들어낸 둘레길 아이디어는 국립공원 관리공단 창설 이래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작은 구릉을 넘어서자 화계사 가 나왔다. 서울 도심에 근접한 꽤 잘 알려진 사찰이다. 수년전 이곳에서 수행했던 스님이 책을 출간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 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방문해 보기로 했다. 둘레길에서 벗어나 조금 산길을 올라서니 절집들이 나타난다. 외국인 선방이 입구에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많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머무르는 것으로 보인다. 커다란 대웅전과 절집들은 근래에 건축한 것으로 보여 이끼낀 기와나 퇴색한 화강암의 질감에서 오는 고색창연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절 마당에 마침 피어난 배롱나무의 붉은 꽃 한 송이가 대웅전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 속의 단청과 너무 잘 어울려 카메라를 메고 걷기에 따라온 아내에게 작품사진을 찍어보라 권했다.
지금 걷고 있는 구간의 이름이 '흰구름길'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몇 번 , 산 능선에 올랐는데도 울창한 활엽수림을 뚫고 햇살이 간간이 들어올 뿐 구름은커녕 하늘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구간의 이름을 잘못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13구간마다 구간의 특징이나 아름다움을 기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이름들을 공모하여 지었을 텐데,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하늘 한번 제대로 올려볼 수 없는 수림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쉼터가 나와서 간단히 준비해온 간식으로 요기를 했다. 숲 속 꽤 넓은 평지엔 작은 정자와 벤치들이 있다. 아랫마을 주민들이 아침에 올라와 운동 을 하는 광장 같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장사꾼이 몰린다. 이곳에도 전기구이 통닭 장사가 벌써 자리를 틀고 있다.
잠시 휴식을 즐기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북한산은 작은 능선마다 아름다운 계곡이 있고 계곡 마다 맑은 물이 흐른다. 작은 계곡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세족의 즐거움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안내 지도에 '빨래터골'이 나와 있었는데 이곳이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하던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빨래터는 옛 여인네들이 마을 밖 세상이나 마을 안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정보 의 광장이었고 혹독한 시집살이 한풀이의 장이되기도 하고 여름철엔 금남의 노천욕장이 되기도 했다. 김홍도의 그림 중에 빨래터의 여인들을 언덕위에 숨어서 훔쳐보는 그림은 해학적이고 조금은 선정적 으로 보이기 도 한다.
작은 계곡응 하나 더 넘어 능선에 올라서니 지금까지 하늘을 가리고 있던 수림에서 벋어나 시야가 트이고 전망대가 보인다. 나무로 만든 회전형 계단을 통해 오르는 3층 높이로 제법 높다. 전망대에 오르니 사방이 확 트이고 머리 도봉산 불암산 사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침 인수봉위에 흰 구름이 일어나 추상의 그림들을 창공에 그려내고 있다. 환상적이고 신비감마저 드는 풍경이다.
피어오르는 구름을 바라다보고 있으니 조선시대 많은 문인 화가들이 즐겨 인용했던 한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行到水窮處 坐看雲氣時" 걸어가다 물길 끝나는 곳에 이르러 주저앉아 하늘 구름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노라.
북한산에서 흘러내린 준령의 푸른 숲은 방금 전 걸었던 계곡과 산길모두를 푸른 초록으로 덮어버리고 화계사 누각들 검은 지붕들만 초록의 바다위에 떠있다. 우뚝 솟은 인수봉의 모습은 북한산 자락을 밟고 사는 모든 군상들의 염원을 한데모아 하늘을 향해 간절히 전하는 모습이다. 인수봉 위 푸른 하늘엔 끊임없이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바람은 구름들을 끊임없이 북으로 실려 보낸다. 이 장엄한 한편의 쇼는 산과 숲과 바위 그리고 구름 바람 어울려 대 자연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편의 비쥬얼이다. 나는 이 자연이 만들어내는 비쥬얼 쇼에 취해서 전망대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이런 자연의 모습은 서울 하늘에서 일 년에 몇 번 구경하기 힘들다.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흰구름길 '이름을 잘 못 붙였다고 투덜댔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졌다. 그가 누구인지 예지력을 가진 최고의 작명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길은 다시 오르락내리락 하며 정능 골짜기를 향해 이어져 나간다.
안내판을 보니 이제 '솔샘길'에 들어섰다. 이름이 너무 아름답다. 우리의 산골짜기에는 옛 부터 작은 옹달샘들이 숨어있었다. 산을 넘어 먼 길을 가는 나그네 나 나무꾼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감로수 역할을 하였다. 동요에 나오는 산속의 토끼가 물먹으러 오기도하고 한여름 새들이 깃털을 적시며 목욕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이런 샘들은 길가의 큰 나무나 바위아래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이곳에서 갈증을 푼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알고 뒤에 오는 이를 위해 항상 정갈하게 사용하였다. 과거의 옹달샘들이 요즘의 현대식 약수터로 바뀌어 많은 이들이 물통을 들고 찾아와 줄을 서는 곳이 가끔 보이기도 한다. 요즘의 등산하는 이들은 모두 용기에 담긴 생수병을 가지고 다니기에 옹달샘의 고마움이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어쩌다 산 속에서 옛날의 옹달샘이었던 곳을 만나서 반가워 들여다보면 이미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가 오래되었고 주변은 온통 더럽혀져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능동 쪽이 가까워지자 둘레길 아래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미아동 삼양동의 재개발 단지이다. 이곳은 재개발 전에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역이었다. 북한산 자락 꼭대기까지 다닥다닥 붙어있던 낡은 주택들이 어느 날 단번에 사라지고 하늘을 찌르는 고급 아파트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의 도시 건설 실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달동네 살았던 사람들의 한숨이 모두 사라지고 그들 모두가 저 아파트에 입주해 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요순시대를 부러워할 필요 없다. 새로 난 둘레길은 아파트단지를 개발하면서 만든 근린공원인지 길도 잘 만들어져있고 주변의 모습도 현대식 조경으로 가꾸어져있다.
아파트 단지가 끝나는 지점엔 성북구 생태공원이 들어서있다. 새로 만든 공원이라 조경과 시설물들이 새로우나 북한산의 계곡의 자연미를 찾아 나선 나에게는 낯설어 보일 뿐이다.
오늘의 걷기 일정은 정능의 '성북생태공원'에서 걷기를 끝내기로 했다. 전망대를 내려와서 여기 까지 걸어오면서 솔샘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옛 정취서린 옹달샘에 집착해서 길가의 작은 샘을 못보고 지나쳐버렸는지 못내 아쉽다.
201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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