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북한산 둘레길

그림자와 함께 걸으며 李白이되어보다

Sam1212 2010. 11. 1. 14:13

 

 

그림자와 함께 걸으며 李白이되어보다.(북한산둘레길:내시묘역길/효자마을길/ 충의길)

 불광동에서 버스를 잘못타 삼천사 입구에서 내렸다. 군부대 앞 큰 도로를 5백 미터 쯤 걸어서 올라갔다. 도로에 차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소음이심하다. 부대 앞에서 둘레길 연결도로를 만났으나 지난번 진관사 앞에서 끝났기에 귀찮지만 좀 더 걸어가서 지난번 끝 지점과 연결하여 북한산 둘레길을 1미터도 빼지 않고 걷고 싶은 옥이가 발동한다.

 

 

 진관사앞 식당에서 칼국수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끝내고 걷기에 나섰다. 결국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걸어가 부대 앞에서 숲길로 들어섰다. 이곳 북한산 후 사면인 진관내동 지역은 조경수를 기르는 개인농원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측백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이 나온다. 평탄한 밭길이어서 걷는데 전혀 부담이 없는 길이다. 이곳은 등산로나 마을길이 있던 곳이 아니다. 개인 농원의 내의 도로를 둘레길로 개발한 듯 보인다. 좌우로 잘 길러진 편백나무 정원수 길을 따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마을이 나온다. 북한산 등산 때 구파발에서 버스를 타고 산성입구에 갈 때마다 버스 창 박으로 봐왔던 마을이다. 둘레길은 큰길에서 우측으로 꺾어져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은 밖에서 바라보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크다. 오래된 기와집도 있고 요즘 새로 단장한 고급 전원주택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런 산골짜기에 호화 별장 같은 집들이 들어서있는 줄 몰랐다. 행정 구역이 경기도인지 서울인지 몰라서 문패를 읽어보니 '은평구 진관내동'으로 적혀있다.

 

 

 

 서울특별시 내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해보 인다. 물레방아간이 있었음직한 자리엔 슈퍼마켓이 들어와 있고 70년대의 농촌 주택들 이웃에는 정원수와 잔디밭이 깔린 별장 형 주택들이 공존한다.

 

 마을길이 끝나는 지점에 백화사라는 절이 나온다. 절집은 잘 보이지 않으나 계곡위에 늘어선 붉은 노송들의 만들어내는 정취가 일품이다. 역시 우리 산엔 적송이 있어야 옛 정취가 살아난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곳도 계곡을 깔끔하게 정리한다며 돌 축대를 쌓고 있는 현장이 보였다. 비가 오면 언덕이 조금 무너지기도 하고 계곡 안으로 바위돌이 굴러들어오기도 한다. 90년대 큰물 이후에 계곡을 정비한다며 계룡산 동학사 계곡의 수 천 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계곡의 양단에 석축을 쌓은 현장을 보고 한숨과 분노를 보낸 적이 있었다. 아직도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가 보기 싫다고 자연스런 물길을 직선화하여 석축을 쌓는 무식하고 몰상식한 자연보호 행위가 수 십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곳의 구간 이름이 '내시묘역'이라 하여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작 내시묘역과 연관된 유적지나 지역자료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길가에 설치된 안내판을 살펴보았더니 내시묘역은 백화사 계곡 위에 위치해 접근이 어렵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구간내의 역사 유적이나 지역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나 기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재미와 기쁨을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바램이다.

 

 

 백화사 절 앞에서 길은 좌측으로 휘어 산길로 접어든다. 좌측의 수목원 농장과 우측 울창한 산자락 사이를 둘레길이 굽이굽이 이어져나간다. 우측 산자락의 숲을 바라보니 오랜 세월 사람의 통행이 없었던지라 산그늘에 가려진 숲속은 어두운 기운마저 감돈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니 벤치가 몇 개 놓여 있는 쉼터가 나온다. 중년의 여자 대여섯 명이 쉬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 일요일에 친구들 모임에서 둘레길 걷기에 나선 사람들로 보인다. 오늘 둘레길 북단으로 오면서 내심 걱정도 좀 있었다. 이곳은 도심과 떨어져있고 깊은 산중이라 혼자 걷기에는 조금 부담을 가지고 떠났으나 막상 와보니 첩첩산중 이곳에도 둘레꾼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띤다. 쉼터 앞에 작은 비석이 서있다. '경천군송금물침비' 慶川君松禁勿侵碑 이다. 안내판의 설명에 따르면 광해군이 이해룡이란 사람에게 하사한 토지경계구역에서 소나무 벌목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표석이다. 옛 부터 소나무는 값나가는 재산이었고 특별히 보호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길은 숲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농원農園 안으로 들어간다. 산자락 언덕 위의 꽤 넓은 개인 농원이다. 넓은 농원 안엔 여러 종류의 정원수들이 잘 다듬어진 채로 자라고 있다. 작은 마을이 산자락 밑에 포근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인다. 아마도 이 마을이 효자마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노고산의 긴 산줄기가 하늘에 닿아있다. 시야 180도 반경에 어떤 인공물人工物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도시 주변에 살면서 시야에 인공물이 보이지 않고 오직 자연 풍광만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어쩌다 이런 곳을 만날 때면 오랜 시간 바라보면서 그간 온갖 인공물들에게 오염된 눈을 청소하는 시간을 갖는다.

 

 

 

 스케치를 한 장하고 농원 속으로 난 길을 걷는데 길 옆 에 이 길을 내는데 협조해준 농장 주인에 대한 감사 표지판이 서있다. 걸어가다 작은 밭에서 파를 심고 계시는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할머니 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곳 모두 한사람 땅인가 보지요?"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대답하신다. "극유지야, 극우지" 나는 처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아! 국유지라고요" '국유지'란 말을 발음이 부정확하게 말하신 거였다. 할머니가 다음 말을 하셨다. "가끔 구청 사람들이 와서 농사를 짓는 건 괜찮으나 집을 지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해." 지금 까지 걸어오면서 만난 넓은 개인 농원이나 산림들의 개인의 소유인지 국유지인지가 더욱 궁금해진다. 국유지이던 개인 땅이던 둘레길이 생기면서 걷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 주민이나 땅 소유주에게도 경제적 도움이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 이다.

 

 

 농원 길은 언덕을 내려와 송추로 가는 큰 도로와 만난다. 길 건너편엔 노고산이 우뚝 버티고 서있다. 서울에서 살아온 남자들은 이곳을 잘 안다. 노고산 후사면을 따라 예비군 훈련장들이 있고 모두들 한두 번 은 이곳에서 훈련을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큰 길을 따라 송추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산속의 둘레길이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스러웠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왕복 4차선 도로엔 화물차와 승용차들의 질주하며 내는 소음이 귀청을 때린다. 조용한 숲속을 거닐다 나와서 제일 먼저 느끼는 공해는 소음이다. 도시에 산다는 것은 소음에 친숙해지며 조금은 무감각해진다는 사실이다. 소음 공해에 적응이 되고나면 시각 공해에 마주친다. 길가 큰 음식점들이 내건 현수막과 노랑 빨강 원색 위주의 대형 간판들이 보내는 스트레스를 적응하면서 500미터쯤 걸어가다 보면 길은 다시 산길로 올라간다. 지도엔 '박태성 정려비 산길'이라고 나와 있다.

 

 

 

 작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정말 호젓하다. 밤길이라면 무서워 혼자 다니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구간에 들어서니 걷기에 나선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숲속에서 산적이 튀어나와 "네 이놈,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가거라!"할 분위기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오솔길엔 가을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앞길에 그림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내와 함께 걷는 길이 그림자와 까지 합하여 넷이다. 그림자와 함께 걸어가니 그리 외롭지는 않아 보인다. 이백李白은 달밤에 홀로 술을 마시고 달과 그림자와 함께 셋이 되어 흥에 취해 놀다 헤어졌다. 나는 오늘 술 없이도 그림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산 고개 길을 오르며 60이 되어 보이는 한 남자 분을 만났다. 송추에서 혼자 출발하여 걸어오는 중이라 말한다. 그도 산중에서 우리를 만나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이다. 둘레길 지도를 펴 보이며 길을 묻기에 친절히 알려주었다.

산길은 장승 4개가 서있는 북한산 국사당 앞을 지나간다. '밤골공원 지킴터'라고 간판이 붙어있는 관리 초소는 문은 굳게 닫쳐있고 처마엔 거미줄이 늘어져있다. 이곳은 옛날 성황당 자리였는지 돌무더기도 보인다. 왠지 좀 으스스한 분위기다. 국사당 안에서 굿을 하는지 장구와 꽹과리 소리가 계곡 길을 올라가는 내내 들려왔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 마차에서 내려 하룻밤 묵기위해 드라큐라성을 찾아 들어가는 서양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은 고개를 넘는데 길 우측으로 철책이 길게 세워져있다. 이 깊은 산중에 무슨 이유로 철책을 둘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철책이나 울타리는 동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하는 방해물이다. 마침 앞서가던 둘레꾼을 만나 물어보니 군부대가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

고개를 넘어서니 계곡이 나온다. 이곳이 '사기막골'이다. 계곡을 우측에 두고 물길 따라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물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둘레길은 다시 송추로 넘어가는 도로와 다시 만난다. 다시 걷기에 재미없는 길이 시작된다. 이 길의 구간 이름은 '충의의 길'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된다. 도로에 연해서 군부대들이 들어서있다. 힘들게 고갯길을 오르며 한 부대 앞에 내 붙은 구호에서 분위기를 읽었다. '수도 방어 사수' 휴전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전시 적의 주 공격축선이다. 북한산 너머에 대한민국의 심장인 수도 서울이 있다. 이곳이 수도 방어의 전략 적 요충지임을 군사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이해가된다.

 

 

 

 운치 없는 구간이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 붉게 타들어가는 부드러운 단풍 능선위로 북한산의 주봉들이 머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걸어가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다. 북한산을 북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이다. 나는 다시 화첩을 꺼내고 아내는 카메라 렌즈에 석양에 푸른빛을 띠고 있는 북한산을 마지막으로 담았다.

 

 

 고개를 넘어서고도 둘레길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된다. 멀리서 사격장의 총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군인들의 사격측정이 있는 날인지도 모른다. 표적지를 뚫지 못하고 빗나간 한 발은 예나 지금이나 병사들에게 기쁨과 실망을 가르는 있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다. 저녁노을 깊어가는 숲속의 사격 소리를 뒤로하고 '우이령입구'라고 쓴 간판이 보이는 지점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쳤다.

20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