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북한산 둘레길

평창동 높은 담장 아랫길을 걷다

Sam1212 2010. 10. 3. 10:52

높은 담장 아랫길을 걸어보다.(북한산둘레길:평창마을길)

 아침에 끄물끄물하던 날씨가 오후 되니 구름이 많이 걷히고 푸른 가을 하늘도 간간히 내보인다.

오늘은 어제 '사색의길'에 이어서 아내와 함께 '평창길구간'을 걷기로 하였다. 점심을 집에서 하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평창동 롯데캐슬 아파트 앞에서 내려 어제 걸어 내려왔던 가파른 언덕길을 다시 올랐다.

 

 

 오늘의 출발점인 '형제봉입구'의 커다란 안내판 앞에 섰다. 북한산 둘레길 을 그린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백운대836m 인수봉810m 도봉산 자운봉739m, 행정구역 서울의 도봉 강북 성북 종로 서대문 은평구, 경기도의 양주 고양 의정부시. 북한산은 큰 산이다. 서울시민으로 이런 명산을 지척에 두고 보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오늘의 걷기 구간은 평창동 주택단지를 가로지르는 코스다. 잘 포장된 차도를 따라 언덕길을 돌아서니 평창동 산속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평창동은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고급 주택 단지이다. 북한산 자락의 푸른 숲속에 각양각색의 고급 주택들이 산허리 까지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평창마을길은 산 중턱으로 난 산복도로를 따라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걸어가는 길이다.

 

 

 

 80년대 이곳의 푸른 산자락이 야금야금 주택단지로 허물어져 내리며 하나둘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는 것을 바라보고 분노를 느낀 적이 있었다. 오늘 평창동의 동네 전경을 내려다보니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도 살만해졌는데 천만이 넘는 국제도시 서울에 성냥갑 아파트촌으로 산허리를 두를게 아니라 이런 고급주택 단지도 자랑스럽게 내 보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서울의 자랑 평창동 주택단지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록마을이나 프랑스 지중해연안의 휴양도시에 비교하면 품격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 양편으로 잘 지은 단독 주택들이 이어지고 있다. 집들도 모두 개성이 넘친다. 지붕도 담장도 대문들도 모두 다르다. 지금까지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낸 대량생산 제품 같은 아파트와 연립주택에 익숙해져있던 눈이 갑자기 나타난 개성 미에 놀란다. 기웃거리고 두리번거리며 높은 담장을 덮고 올라간 담장이 넝쿨을 쳐다보기도 하고, 축대 밑으로 보이는 정원에 서있는 노송의 운치에 감탄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기웃거리고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갑자기 촌놈이 되어 걸어가는 모습이다. 카메라를 메고 따라나선 아내도 색다른 정취나 문 앞을 장식한 예쁜 장식물들을 만날 때 마다 카메라에 담느라고 정신이 없다. 오늘도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눈에 띈다. 그들도 모두 낯선 환경에 놀라서 기웃기웃 하는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이곳 부자동네 가운데로 둘레길을 내면서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도 꽤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소란스런 행동이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눈에 띤다.

낮은 담장에 흰색 대문이 정원이 아름다운 집이 있어 들여다보는데 7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친구로 보이는 할머니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대문을 나선다. 집 앞에 세워둔 빨간색 외제 승용차에 함께 타더니 미끄러지듯 언덕길을 내려갔다. 노년을 복 있게 살고 있어 보인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들 끼리 유유상종하게 돼있다. 그들은 성을 쌓고 타인의 간섭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부자 동네의 큰 집들은 유달리 담이 높다. 이는 단지 방범의 대책이 아니라 그들이 쌓아올린 마음의 벽일지도 모른다. 이곳 평창동의 길가 고급 주택들도 유달리 담장이 높다.

 

 

 사람에게 인격과 인품이 있듯이 살고 있는 집에도 품격이 내보인다.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생활의 편리상 대량생산 제품인 아파트나 연립주택에서 생활한다. 이런 주거 형태에선 외관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거실에 들어가면 그 집 주인의 취향과 품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평창동을 한 시간 걸어오면서 많은 고급주택들을 가까이서 보았다. 모두가 유명 설계사들이 고급 건축자재들을 사용해 지은 집들이다. 걸어오면서 집주인들을 한분도 만나지 못했지만 집 주인들을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았다.

 

 

 평창동 마을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둘레길은 산으로 올라간다. 꽤나 가파른 길이다. 어떤 영문인지 이곳엔 안전계단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일반 등산도로이다. 둘레길은 나처럼 다리가 조금 불편해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해놓은 길이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크게 불편함이 없었지만 이구간은 좀 보완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무리의 등산에 익숙한 사람들이 내 앞을 치고 나간다. 나는 게걸음으로 간신히 능선을 올라 길옆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에서 아내와 함께 준비해간 간식을 즐겼다.

우리가 간식을 하는 동안에 젊은이 몇 명이 우리가 앉아있는 바위로 올라왔다. 나는 그들에게 북한산 둘레길을 참 잘 만들어놓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들도 오늘 하루 종일 둘레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나는 오늘 4일째로 6번째 구간을 걷고 있다고 말했더니, 한사람이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 우이동에서 출발해서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4일 동안 걸은 길을 단 하루에 주파한 대단한 체력의 사나이이다.

 

 

 서쪽 하늘 검은 구름사이로 햇살이 몇 가닥이 뚫고나와 산위를 비추는 풍경이 신비롭게 보인다. 아내는 그 모습이 신기한지 카메라에 연신 담아낸다. 나도 펜으로 그림엽서에 장엄하고 신비스런 석양의 모습을 한 장 스케치하였다.

 

 

 구기동 자락으로 내려오는 산길도 걷기에 만만치 않았다. 다음주말에 다시 이어 걷기를 약속하며 어두워지는 가을 숲을 뒤로하고 구기동의 현란한 저녁 불빛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