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북한산 둘레길

소나무의 운치를 마음껏 감상하는 길(북한산둘레길:솔밭 길)

Sam1212 2010. 11. 7. 13:45

 

소나무의 운치를 마음껏 감상하는 길(북한산둘레길:솔밭 길)

 지난번 순례길을 걸으며 길을 잘못 들어 빼먹은 구간과 솔밭 길을 묶어서 다시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아카데미하우스 입구에서 출발하여 솔밭공원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주택가를 통과하게 되고, 이지점에서 다시 산위로 올라가야하는데 코스를 잘못 들어 4.19국립묘지 앞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순례길 코스에 없는 4.19묘역 안에 들어가 참배하는 기회를 가졌었다.

 

 

 순례길은 4.19묘역 뒷산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른다. 오늘 날씨는 구름에 옅은 연무현상까지 있어 북한산의 가을 단풍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지금 북한산의 온 계곡이 단풍으로 불타오르는 모습일 텐데 하늘을 덮고 있는 연무에 제 빛을 못 내고 있어 아쉽다. 작년 이맘때 진달래능선을 혼자 내려온 적이 있다. 석양에 빛나는 인수봉과 계곡을 물들인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산에 취해 뒤돌아 보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우이동에 도착한 경험이 있다.

 

 

 4.19묘역 뒷산으로 오른 둘레길 주변엔 노랗고 갈색으로 물든 떡갈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팥배나무가 서로 어울리며 만들어준 수목 터널을 지나간다. 이번 주말이 북한산 단풍이 정점으로 다음 주면 화려한 단풍터널도 잎을 떨구고 쓸쓸함을 더할 것이다. 작은 언덕을 몇 개 넘으니 4.19묘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가을 햇살에 내려다보이는 묘역은 적막감에 갇혀 있고 묘역을 둘러싼 멀리 북한산의 준령은 연무 속에 아름다운 자태를 숨기고 있는 모습이 마치 속이 비치는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인 같아 보인다.

 

 

 

발걸음을 재촉해 언덕길을 내려가는 길에 보광사가 나온다. 이쯤에서 고찰古刹이 하나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적중한 셈이다. 길에서 벋어나 절 마당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꽤 큰 절이다. 그러나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단청이 벗겨진 맛배지붕 절집 돌담을 덮고 있는 담장이, 마당에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오래된 석탑 절 집 뒤 숲속으로 들어가면 이끼 낀 부도들과는 거리가 있다.

 보광사는 내가 그리던 그런 고즈넉한 절이 아니었다. 대웅전 앞에 우뚝 버티고서있는 큰 일자형 건물은 절 마당에 들어오는 중생들에게 중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붕을 뚫고 나온 다락방 창문은 우리 전통 건축양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즘말로 퓨전 스타일이다. 내가 너무 옛것을 좋아하다보니 도심 속의 사찰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을 떨어내고 나는 아내의 카메라를 건네받아 언덕위의 불타는 단풍나무를 어깨집고 서있는 노송 2그루 그리고 대웅전의 부드러운 처마곡선 아래의 화려한 단청과 잘 어울리는 뒷산의 가을 색을 렌즈에 담았다.

 

 

 

 내려오는 산길엔 벌써 낙엽이 많이 떨어져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이동 솔밭공원은 볼 때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전란과 무분별한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평지에 이만한 솔밭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것도 아닌데 붉은 줄기의 소나무를 대할 때마다 조상이나 선열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이는 소나무가 오랜 동안 우리 민족의 주거생활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고 굴곡 많은 우리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거란 생각이 잠재돼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 땅에서 이곳처럼 산이 아닌 평지에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은 경남의 밀양과 함양 하동 그리고 강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도 솔밭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운동을 하면서 즐기고 있다. 솔밭 넘어 연립주택이 몇 동 있다. 북한산 자락과 솔밭을 가르는 흉물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창문을 열면 싱그러운 솔향기를 방안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둘레길은 솔밭 북단 골목으로 들어간다. 길옆으로 커다란 울창한 천연림을 가진 저택들이 과 자수박물관이 있다. 북한산의 울창한 자연숲을 정원으로 가진 집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 두리번거려 보았으나 문패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딜 가나 대저택에는 문패가 없다. 문패는 그저 보통 사람들의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잊은 것이다. 이용문 장군 묘소 앞에 이르니 둘레꾼들이 불이 났다며 사진을 찍느라 난리법석이다. 언덕길 좌측 저택의 철제 펜스 안의 단풍나무들이 어찌나 붉게 물들었는지 마치 불타는 숲을 보는 기분이다. 우리도 이곳에서 불붙은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이용문 장군의 묘소 입구에 장군의 일대기를 소개한 글이 조그맣게 소개되어 있다. 국군 창설이후 참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인물임을 잘 설명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손병희 선생의 묘역도 좌측에 보인다. 북한산 자락은 순례길 구간을 넘어서도 많은 의인과 지사들이 영면의 장소로 택한 것을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풍수지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당시 국립묘지가 준비되지 않아서 이곳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갔다.

산길에는 듬성듬성 큰 소나무들도 보여 솔밭길이란 이름을 간신히 유지해준다. 커다란 소나무가 두 그루나 부러져나간 곳을 지나가다보니 지난여름 태풍의 위력을 실감한다. 한 그루는 태풍에 꺾인 몸통을 그대로 대지에 기대고 푸르룸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처절하기보다는 의연해 보인다.

 

 

 길가에 샘이 하나 있고 언덕위에 쉼터가 나오기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간식을 풀었다. 옆 벤치에도 중년의 남녀 7-8명이 막걸리를 마시며 한담을 즐기고 있다. 그들은 쉼터 옆에 커다란 판에 써진 오탁번 시인의 시를 읽어가며 서로들 재미있는 해석을 농담과 함께 쏟아내고 있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재미도 있고 한 분이 나에게도 해석을 요구하기에 나름대로 설명을 해드렸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쉼터마다 유명 시인의 시 한편씩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한 아이디어는 참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 새해 첫날 북한산을 오를 때 산행로 입구 관리실에서 받던 입장료가 없어지고 시집을 비치하고 나누어주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 관리공단의 새로운 변화에 놀란 적이 있었다. 아내와 나도 쉼터 옆에 세워진 시를 읽어가며 서로의 감상을 나누었다. 시 구절 중에 '청개구리'와 '메뚜기'를 짝지은 것은 '매미'와'꾀꼬리'를 짝지은 것처럼 무언가 잘 안 어울리고 어색하다는 내 주장에 집에 돌아가 확인해보자는 것으로 논쟁을 마무리하였다.

 

 

 

 산자락이 끝나는 곳에 동네가 나온다. 다시 작은 산언덕을 넘으니 우이동 유원지 계곡 길과 마주친다. 우이동 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많은 등산객들을 비껴서 계곡 길 우측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계곡 양단은 석축과 시멘트로 벽을 만들었고 석벽 위엔 요식업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아름다운 계곡들이 볼품없이 훼손된 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슬픔과 안타까움이 앞선다. 우리의 수려한 자연은 가까운 일본이나 먼 유럽의 스위스와 비교해도 절대로 그 아름다움에서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계곡에 연한 요식업소들을 보면 그렇게 천하고 하나같이 볼품없을 수가 없다.

 

 

 계곡 길을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걸어내려 오는데 개울 건너편에 커다란 철제 가림막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가림 막의 높이가 5미터는 넘어 보이고 물길 따라 설치된 길이도 꽤 길다. 대형 크레인이 설치된 걸로 보아 엄청난 공사가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곳에 건축물을 세우면 뒤 배경만큼은 서울 최고임에 분명하다. 다리를 건너가자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장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장대한 모습이 내 작은 시야로 담아내기가 벅차다. 저녁 햇살에 비낀 산 모습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무어라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물길은 큰 길 앞 다리에서 끝이 났고 오늘 둘레길 걷기 일정도 여기서 끝내야했다. 이제 남은 구간은 '우이령' 한 구간뿐이다.

(2010,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