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나무와 산동네들.(북한산 둘레길:구름정원길/ 마실길)
불광역에서 내려 어제 걷기를 끝냈던 장미공원 앞 떡집에서 간식용으로 떡을 조금 사가지고 왔다. 등산이나 걷기에 간식으론 우리 떡이 간편하고 요기를 해결하는데도 좋다. 오늘의 코스는 장미공원 앞 큰길을 건너편 언덕의 '북한산 생태공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요즘은 동네 아파트단지 주변에 생태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친숙한 자연환경 조성과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눈에 많이 띈다. 도시 생활에 메말라진 어린이들의 심성을 가꾸는데 도 좋고, 인접 주민들에게 휴식 공간도 제공해주고 있다. 공원엔 유모차를 끌고 나와 한가롭게 산보하는 젊은 엄마들이 보이고 초등학생인 어린 딸에게 꽃을 설명해주며 사진을 찍고 있는 아빠의 모습도 보인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의 행복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언덕길을 오르자니 기분도 상쾌하고 발걸음이 가볍다.
산길을 조금 오르니 불광사가 나온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막혀있고 절을 좌측에 끼고 산길을 오른다. 산길에서 바라본 절집은 크지 않고 고색창연하지도 않다. 북한산 골짜기마다 절이 하나씩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불광동이라는 동네이름도 이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레길은 산자락에 붙어 지은 고층아파트 단지와 마주하면서 이어져나간다. 이 동네 주민들은 언제라도 아파트 단지 뒷문을 통해 둘레길로 올라올 수 있으니 참 좋은 환경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아파트 시세는 주변 자연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회색 빛 도시에 살면서 가까이에 공원 또는 산이나 강이 있다면 녹색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능선위에 오르니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이 하늘 전망 데크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은 서북방향으로 산골짝 마다 펼쳐진 은평구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건너편 산 능선으로 작은 계곡을 넘어가는 목제 다리로 연결된 길이 보인다. 이곳이 구간을 대표하는 길 이름으로 '하늘길'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곳에서 땀을 식히며 가지고온 떡으로 요기를 하며 스케치 몇 장을 하였다.
건너편 언덕으로 넘어가는 길의 나무 데크 다리는 높은 곳은 5-6미터나 되는 곳도 있어 숲 위 하늘 길을 걸어가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곳은 바위가 많은 암산이나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다리를 건너가는데 코끝을 스치는 솔향기의 싱그러움이 걷는 이의 기분을 더욱 상쾌하게 만든다.
둘레길을 걸으며 지난여름 수도권을 강타한 태풍 '곤파스'가 남기고간 상처들이 많이 보인다. 등산로 주변의 거목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안타깝다. 모든 생명에 생의 마침이 있듯이 나무들도 수명이 있다. 한 나무의 생에도 축복된 마침이 있고 안타까운 마침도 있다. 백두대간 능선에서 태어나 200년 만에 대목장의 눈에 간택되어 남대문 중수의 대들보로 생을 마친다면 최고의 영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태풍에 뿌리가 뽑혀 쓰러진 나무들은 비명횡사라 말할 수 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쓰러진 나무들을 관찰해보면 이유 있는 죽음들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수명이 50년 정도다. 쓰러진 아름드리 아카시아나무들은 수명을 다하고 생을 마감한 이른바 호상이다. 그러나 아름드리 푸른 거목이면서 쓰러져 길게 누워 죽어가는 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줄기가 흰 반점이 있는 '은수원사시'라는 나무다. 60년 대 말 민둥산이 보기 싫어 산림녹화를 위해 식재된 속성수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은 멀쩡한데 유독 이 나무는 뿌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고 쓰러져있다. 나는 이 답을 얼마 전 올림픽공원을 걸으면서 수목관리인으로부터 들었다. 태풍 곤파스에 올림픽공원의 많은 나무들도 부러지고 뿌리가 뽑혔다. 관리인이 말하기를 "잣나무는 뿌리가 약해서 잘 쓰러집니다."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불휘 깊은 남간, 바람에 아니 뮐새...' 조상이 준 지혜를 후손들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탓이다.
산길을 내려오니 산 아래 주택가 길과 연결된다. 주택가 골목길 200미터 정도를 걸어가면 불광중학교 후문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이 길은 동네의 낮은 뒷산이다. 길을 걸으면서 도시가 개발되기 전에는 앞마을과 고개 너머 마을을 연결 하던 오솔길 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이고 길옆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이 서있다. 4-50년 전 우리네 시골 산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정겹다. 산길에서 바라본 족두리봉과 마을의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한 장 그리고 아내는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고개 마루를 넘어서니 새로 개발한 '은평뉴타운' 아파트촌이 눈앞에 펼쳐진다. 북한산을 오가며 구파발에서 버스를 갈아타며 수 년 동안 보아온 뉴타운의 산 자락 마을이다. 잘 가꾸어진 단지 내 도로를 북한산 둘레길이 500미터쯤 통과 하고 있다. 울창한 북한산의 숲을 배경으로 숲 속에 잘 배치된 아파트 건물들은 별장촌에 들어선 느낌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서울의 아파트 중에서 가장 쾌적한 환경의 고급 아파트촌이다. 우리 동네 아파트가 도심에 줄 세워 옮겨놓은 밀집 양봉 벌통들이라면 이곳은 지리산 산골마을을 지나가며 숲속 큰 나무 밑에 띄엄띄엄 세워놓았던 토종 벌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단지를 통과한 길은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는 물길은 북한산 계곡의 맑은 물이다 숲속 작은 징검다리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니 작은 버들치들이 노는 모습도 보인다.
산길을 걸어오면서 좀 특이한 모습은 길옆에 넘어진 비석이나 비석 받침돌과 홀로 나딩구는 옥개석이 눈에 띄는 점이다. 요즘에야 돈만주면 누구든지 큰 묘석이나 비석을 세울 수 있지만, 조선의 계급 사회에선 아무나 비석을 세울 수 없었고 신분에 따라 묘석이 달랐을 것이다.
둘레길 바로 옆에 문인석이 반쯤 흙에 덮여 뉘어져있다. 묘지 앞 양편에 문인석을 세울 정도였으면 꽤 높은 관직을 지낸 인물의 묘가 있었을 텐데 묘지는 보이지 않고 쓰러진 하나의 문인석만이 뭇 사람의 발길에 채이며 나딩굴고 있다.
둘레길은 산 구릉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이어져 나간다. 100년 전에는 호랑이가 나올만한 깊은 계곡이었고 20년 전에만 해도 등산로가 없는 곳에선 사람구경하기 힘들었던 골짜기들이 도시 문명 최고의 상징물인 고층아파트 단지로 바뀌어가고 있다.
숲길이 끝나고 목제 계단 길을 올라서니 다시 확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나무 데크 전망대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족두리봉 아래에 펼쳐진 숲이 푸른빛을 잃고 가을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전망대에서 길을 재촉하여 능선 길을 돌아서니 좌측으로 반전된 풍경이 나와 놀랐다. 옛 동네의 철거되고 그 잔해물들이 치워 지지 않은 채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재개발하면서 집들은 완전히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생활 집기들이 널려있고 건축자재들이 치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이곳은 '기자촌'이라 불리던 집단 주택 촌 이었다. 60년대 말 이곳에 '기자촌'이란 이름의 언론인 집단 촌락이 들어설 때만 해도 집집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문화주택 단지였다. 옛 영광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많은 이들에게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154,155번 버스 종점의 빈민촌 마을이라는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오늘 둘레길을 걸으며 바라보니 '힐스테이트'니 '롯데 캐슬'이니 하는 새로운 이름들이 신세대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내고 있다. 저 귀티 나고 서구풍의 럭셔리한 이름들도 언젠가는 기자촌과 같은 운명을 맞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북한산 자락에 연한 들판이 주택단지로 조성되어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기만 기다리고 있다. 건너편 산자락에 내가 친구들과 주말 등산을 하면서 가끔 들려서 차를 마시던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의 창밖으로 이곳을 바라보면 북한산의 웅장한 자태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서울시 지역에서 시야에 한 점의 인공물도 들어오지 않는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은 이 곳 뿐이었다.
둘레길은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의 도로를 따라 진관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진관사 입구에 새로 조성된 택지 안에 느티나무 거목 대여섯 그루가 서있다. 적어도 수령이 200년은 되 보이는 나무들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관할 구청에서 보호수라는 커다란 안내판도 옆에 서있다. 우리의 옛 마을 풍속은 마을을 빠져나가는 개울둑에 나무를 심어 수구막이라 불렀다. 이곳도 아마 동네 앞을 흐르는 개울가에 인공적으로 심은 수구막이의 흔적이란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것은 보호수 주변에 작은 쉼터를 만들면서 나무들 둘레로 보호 울타리는 설치하였으나 정작 나무뿌리를 덮고 있는 흙은 파헤쳐진 상태다. 이대로 방치하면 고사할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 확인을 소홀히 하고 건설업자의 무책임한 공사로 수 백 년 묶은 조상들의 유산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가을 색으로 짙어져가는 북한산 자락위로 저녁노을이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의 일정은 진관사 입구에서 마무리하였다.
( 201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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