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아쉬움을 내다버리며

Sam1212 2017. 8. 19. 12:34

아쉬움을 떠내보내며


 지난 해 집을 줄여 이사를 했다. 필요없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많은 공간을 차지하던 책과 자료들을 묶어서 버렸다.  서가 구석에 쌓여있으면서 쳐다 볼 때 마다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던 물건들이다. 주로 군사학 관련 책이나 모아 온 자료들이다.그 중에 몇 권은 시중 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워  지인을 통해 어렵게 획득한 것도 있다.


 일생을 자신 있게 살아간 사람이더라 도 후회나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삶의 순간 마다 불쑥 불쑥 끼어드는 난제와 도전 앞에 최선의 선택을 하고 때로는 차선책을 따라가며 상황을 타파해 나간다. 시간이 지나서 앞의 결정들을 되 짚어보면 후회스럽고 아쉬운 일들이 남는다.


 그동안 내 젊음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했던 직장 생활과 관련되어 일어났던 일들과 그 속에서 찾아보고자 했던 일 그리고 아쉬움을 남긴 일을 기록해본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부모로부터 독립한 성인은 직업을 통하여 자기실현의 기회를 가지며 결과로 사회에 공헌 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서 직업은 전문 업종인 자영업과 공공부분 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이라는 직장에 속해 자기실현과 발전의 과정을 밟는다. 어느 기업 어느 부문에서 얼마 동안 어떻게 근무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가 한 개인의 삶을 평가하는 지표가 된다.


 1978년에 삼성그룹에 들어와 제일제당에 입사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기업은 종합상사였다. 수출 제일 주의 경제이었기에 무역업을 하는 종합상사가 최고의 인기 직종 이었다. 나도 삼성물산을 희망했으나 밀려났다. 당시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기라서 요즘처럼 극심한 취업난을 격지 않았다.


 기업에 들어와 부서 배치도 중요하다. 인사 부서에서 개인의 전공 과목이나 몇 가지 스펙을 참고하여 부서 배치를 한다. 우리 세대에는 입사 당시의 업종이나 부서업무를 평생의 직업으로 가지고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입사 후 첫 부서로 기획실 마케팅팀으로 발령 받았다. 기획실 마케팅팀은 회사의 미래 유망 사업을 발굴 사업화 하는 임무였다. 당시 식품 수입 자유화가 개방되어 우리 팀은 해외 유명 업체 식품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 업무는 잘못된 수요 예측과 통관 지연으로 그 해 회사에 많은 손실을 초래했다. 감사를 받고나서 팀이 해체 되었다. 신입 사원인 나는 옆 부서 개발팀으로 발령이났다. 회사의 미래 사업의 사업성 검토와 자료조사 업무를 수행했다. 내가 2개 부서를 거치면서 회사 생활에 조금 적응이 되갈 무렵 함께 입사한 동기생 3명은 회사의 업무가 자신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일과 적성이 맞지 않는다며 회사를 떠났다.


 얼마 후 또 한 번의 부서 이동이 있었다. 신규 사업부 판매부서로 인사 발령이었다.새로 옮긴 부서는 영업 부서다. 기획실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부서 인원도 많았다. 마치 병영 훈련에 다시 입소한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 되었다. 내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영업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영업 부서에서 보아온 사람들은 우선 언변이 좋다. 누구를 만나든지 쉽게 화제를 주도하며 상대방의 친밀감을 이끌어낸다. 술도 잘하고 다른 잡기에도 능해서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서있다. 나는 이런 재주가 정말 없었다. 집안 내력도 그랬다. 우리 집안 상하 좌우 아무리 둘러봐도 장사나 사업을 하는 이를 찾아보기기 어렵다.


 군에가면 우스갯소리로  피복을 나누어주면서 몸을 옷에 맞추라 한다. 어디 처음부터 타고난 체질이 있나,  회사의 업무도 하다보면 적응이 되겠지 생각해보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서 자신감이 없는 일에 좋은 성과를 내긴 쉽지 않다. 먼저 회사를 접고 떠난 동기생들이 이해가되고 부러워 보였다.


 회사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에 가득 했다. 상사가 눈치 못 채게 몇 번 시도했으나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일단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회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판매 업무 자체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3급 사원이기에 부서 내 서열은 꽤 높았다. 단지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퇴근 후 빈번하게 벌어지는 술자리서 좀 겉돌았다.


 당시 답답했던 마음을 풀기위해 접근했던 일은 사내 도서관에서 판매나 마케팅 관련 책을 빌려 읽는 일이었다. 그룹 비서실에 도서관이 있어 책을 대출해주었다. 책 뒤표지에 대출자 카드가 붙어 있었다. 별로 대출되지 않는 책들에 회사명과 내 이름이 기록되어지는데 재미를 붙였다. 당시 읽었던 책들 중 하나인  '랑카스터 판매전략'으로 군사학에 관심을 같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제일제당은 당시 국내서 최고의 영업 파워를 자랑하는 회사였다. 삼성 그룹 내에서도 국내 영업에 관해선 제일제당을 수위로 보았다. 삼성 전자가 늦게 전자 시장에 참여하여 매출액으론 제일제당을 앞섰다. 그러나 제일제당의 30여년의 국내 판매 경험과 10 여 년 간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조미료 판매전은 국내 마케팅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일제당 을 떠나고 나서 써치펌의 헤드헌터들과 여러번 접촉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제일제당 영업근무 경력이 국내 인력 시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걸 실감하였다.


 영업 조직에 들어가 어렵게 적응해 나가면서 몇 가지 조직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회사의 판매 조직이 군의 보병 편제와 유사하고 운영 시스템도 동일하다는 점이다. 짧은 군 생활이었지만 보병 장교로 근무한 경험이 회사 조직을 군 조직과 비교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영업 현장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구두 속에 물이 들어오고 바지까지 젖어버린걸 알고나서야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내 모습을 비추어보니 많이 변해있었다. 동료들과 한데 어울려 고스톱으로 밤을 새우고 술자리도 2차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영업 간부로 변화되어 있었다.


 이때쯤에서 영업 현장의 숨겨진 모습들이 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련한 매너와 언변으로 내가 부러워했던 이들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도 문제가 많아보였다. 그들은 말은 달변이지만 문제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 보고 본질에 접근하여 근원을 해결해보려는 의지는 없다. 그저 관행에 따라 활동하고 특유의 대인 교제술에 의존해 현상을 타개해나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영업에 대해 표준화된 전술 전략이 없어보였다. 단지 개인이 경험에 의해 습득된 관행을 따를 뿐이다. 표준화된 전술이나 매뉴얼이 있어야 생산성이 높고 기반이 구축된다. 더 중요한 것은 기준을 잡아 측정과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기준이 없으면 과정은 무시되고 단지 결과만이 평가 지표가 된다. 이때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은 눈속임과 술수 그리고 단기 업적주의로 나타난다.


 개인의 캐릭터에 따른 업무지시에 따르다보니 상하 인간관계의 호 불호에 따라 성과의 폭이 나타나게 된다. 유능하다고 인정받았던 간부가 한 순간에 융통성 없는 저 성과자로 몰려 조직을 떠나기도 했다. 꿈을 가지고 어려운 취업의 난관을 뚫고 들어온 신선하고 유망한 대졸 신입 사원들이다. 한번은 옆 부서를 관찰해보니 1년 만에 70%가 퇴직한  실태를 바라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인사도 문제가 있다. 군대로 비유한다면 보안대 중사를 소대장으로 명을 내고 수송대 장교 하던 이가 대대장으로 육군대학 교수부장 을 연대장으로 육군본부 경리감을 최일선 사단장으로 부임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인력 운용은 영업이 다른 부문과 비교하여 전문화 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당연히 전문성과 생산성이 떨어짐은 물론이고 영업 전략의 수립이나 영업 현장의 전술 운용 수준이 낙후되었다는 증거였다


 이런 이들이 영업 현장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이유가 있다. 대기업이라는 커다란 자본력의 바퀴가 굴러가기에 당장 눈앞의 실적이 가시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부족한 부분을 그들이 가진 인맥과 노련한 관리 기술로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해 간다. 그들이 다녀간 자리에 남는 건 부실이라는 잔재와 성실한 사람들의 무력감뿐이다. 물론 제일제당 영업 간부들도 엄청난 교육을 받았다, 당시 삼성의 관계사였기에 연수원에서 간부 계층별로 영업 뿐 만 아니라 관리자의 업무에 필요한 전문 과정을 교육받는다. 내가 경험한 영업에 관한 교육은 마케팅 이론으로 유통 부문의 현실과는 차이가 많았다.


 제일제당의 영업 조직은 국내 최고의 조직력과 인력 자금력 판매력을 가진 거대한 조직이다. 우리는 대 조직을 바라볼 때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지적인 토론 과정을 거쳐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결정이 이루어지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호화스런 포장 속에 허실의 내용이 외부에 들어날 때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집단의 의사 결정 과정인 회의 장면을 보면 대충 조직의 생산성과 건강 정도를 감 잡을 수 있다. 오래전 청와대 회의 장면이 TV뉴스에 여러 번 비추어진 적이 있다. 장관이하 참모진들이 허리를 의자에 고추 세우고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기 여념이 없었다. 당시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분이었다. 대한민국 각 분야 제일이라는 전문가들이 교장선생님 훈화 같은 이야기를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문제가 된 대통령 탄핵 사건도 가장 밑바탕 원인은 대통령 주변의 최고 전문가인 장관들과 참모들이 자신의 의사를 똑바로 전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사기업의 간부회의 자리에서도 이런 회의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주로 이런 회의를 주재하는 이는 권위형 간부다. 이런 회의에 참석하면 참신한 토론이나 자기 의사 발표는 거의 없다. 주재자의 일방적인 지시와 항상 맡아 놓고 질책을 당하는 단골 간부도 등장한다.


 청와대 회의와 다른 점은 그들은 등을 곧게 펴고 의자에 등을 붙이고 받아 적고 이곳은 머리를 책상위에 푹 수그리고 받아 적는 모습 이다. 이런 회의 자리에서 주재자와 다른 의견을 내거나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면 조직에서 떨어져나갈 위험성이 있다. 차라리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상의 안전을 위해 현명하다는 걸 모두들 잘 알고 있다.

모름지기 회의란 부서 의 현황을 파악하고 어려움을 타개해나갈 방책을 상호 토론하고 상급 부서장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인적 물적 가용 자원을 투입하여 난관을 돌파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영업 현장에 필요한 판매전술에 관한 책을 한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동기는 내가 영업에 처음 발령받아 읽은  '랜체스터 판매 전략'이라는 책의 영향이 있었다. 특히 군대 조직과 유사한 대기업의 영업 조직이 전술 전략 부문에선 군 보다 훨씬 뒤 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에서 개발한 전술학을 응용해 사기업의 영업 실무에 적용하면 훌륭한 지침서가 되리라 생각되었다. 또한 영업 현장에서 10년 이상 부딪치며 경험을 쌓았기에 자신감과 자부심도 충만해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의 기록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쟁에 관한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다. 피아로 양분되어 벌어지는 군인들의 전투는 생과 사를 가르는 가장 처절한 인간 활동이다. 전투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승패의 원인이 분석되어지고 새로운 전략과 전술이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전승된다. 전술은 당시대 무기체계와 전장의 환경 조건을 고려한 최고의 효율성 생산성의 집합체다. 따라서 한 시대 한 국가의 전술은 수많은 전투원의 생명과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기술 작품이다.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상대를 압도하는 군사력과 경제력뿐만 아니라 그들만의 독특한 전술이 전장에서 승리의 원인이다. 로마군의 칼과 창과 방패를 활용한 공격전술, 몽골군의 경무장과 말을 활용한 기동전술, 1차 대전의 기관총과 참호전술, 2차 대전의 전차와 보병 연합 전술, 중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게릴라전술은 당시대 무기와 전장의 자연 환경이 만들어낸 최고의 전투기술 결정체다.


 나는 짧은 군 생활 동안 전사와 전술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역사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전역 후에도 역사의 일부인 전쟁사 읽기로 즐거움을 더할 수 있었다. 사내들은 초등학교시절 동네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많이 한다.  군에서 전술학이란 이름으로 실제 전투 상황을 가상해 훈련해보니 몸은 힘들지만 가장 흥미 있고 재미있는 과목이라 생각되었다.

보병은 연중 각 제대(소대, 중대, 대대, 연대)는 수차에 걸쳐 전술 훈련 측정 평가를 받는다. 당시 나는 항상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군에서 훈련과 평가는 전술학 교범을 기초로 하고 있다. 우리 군에도 전술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부서가 별도로 있다. 그러나 당시 내가 느낀 바로는 우리의 전술학 교범이 미군의 전술학 교범을 그대로 답습 하고 있다. 현 한국의 자연 조건과는 많은 괴리가 있어 불만도 가지고 있었다.


 책 저술을 위한 자료를 모아나갔다. 시중 서점에 나와 있는 클라우제비츠 몰트케  리델하드 에체베리아 같은 이들이 쓴책들은 쉽게 구해 읽을 수 있으나 군 관련 서적은 대외비 군사 보안에 속해 쉽게 구하기 어려웠다. 당시 읽으며 참고하려 했던 군사전력가들의 책 몇 권에 대해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내용을 요약해본다.


 랜체스타 판매전략, 2차대전시 영국 공군이 수적 우세인 독일 공군과 공중전에서 승률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전술이다. 공중전에 사용된 개념을 일본에서 기업의 판매 전략에 응용하였다. 70년대 한국에 소개되어 꽤 많은 영업 간부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약자의 전략과 강자의 전략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국내 시장에서 절대 마켓셰어를 점하고 있는 기업에 대응해 시장 진입을 할 경우 상대방이 가장 약한 지역을 선정하여 집중 공략하여 교두보를 점령한다. 다시 인접 지역 한 곳을 추가하여 선을 이룬다. 다시 3번째 지역을 선정하여 집중 공략 점령한다. 점령지 3점을 연결하면  면이 만들어고 안정적 판매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전술 개념이 돋보였다. 국내 기업들의 신제품 런칭 전략에 적용하면 효과를 낼 수 있는 군 전술학의 기업 적용 성공 사례라 생각되었다.


 중대 전술학 교본, 한국 육군의 전술학 교본이다. 공격전술과 방어전술로 나누어져 있다. 내가 몸담았던 제일제당의 영업 부서에서 응용할 점이 많아보였다. 영업 부서장들은 1달에 한 번 분기 년도 별로 영업회의 나 전략회의를 한다. 그 때 마다 회의 자료 영업 전략 보고서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상사나 부서장들이 작성하는 전략보고서를 보면 각양각색 중구난방이다. 정해진 틀이 없다. 영업전략 보고서는 군의 작전명령과 유사하다. 군에서 훈련 시 육군대위 중대장 정도 되면 빈틈없는 작전 명령서를 작성하고 도상 계획까지 치밀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는 특별히 유능해서가 아니라 매뉴얼이 교범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명령서 작성 틀은 순서별로 상황(적군 상황, 아군상황, 기상정보)  임무(탈취 획득해야할 목표)  실시(제대별 진격 경로, 상황 대치 요령)  행정 및 군수(전투 간 발생하는 행정과 보급과 지원 방안)  지휘 및 통신( 전투 간 발생하는 상호 연락 체계)방법이 포함되있다.


 이 씨스템을 변형 없이 즉시 도입하더라도 하등의 불편 없이 체계적인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

상급 부서장은 가용한 자원(예산, 지원 인력)을 가지고 있다. 사전에(회의 시)예하 부서장들에게 사용 기준을 알려주어 시장 공략에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효율성이 있다. 유능한 상급 지휘관은 자신의 자원 뿐 아니라 차 상급 부서의 자원도 지원 받아 목표를 달성하는 자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영업 현장의 무능한 간부는 자신의 자원을 우는 아이에게 떡 나누워 주듯 사용한다.


 영업 부서는 매월 한 번 회의(영업 전략 회의)를 한다. 영업회의는 군의 공격 명령 하달과 유사하다. 군에서는 부대장이 예하 부대장을 소집하여 치밀하게 작성된 공격 명령서를 전달하면서 명령서의 내용들을 정확히 숙지했는지를 점검하고 함께 지형 정찰도 한다.


 기업의 영업 간부회의 형식도 내용은 동일하다. 기업에서 잘못 운영되고 있는 것이 있다. 내 경험한 바로는 월례 영업회의는 통상 월 초 2일 또는 3일에 소집된다. 군의 기준으로 보면 예하 부대가 공격을 개시하여 앞으로 전진한지 2~3일이 지났는데 공격 명령을 내리는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 이다. 군에서 공격 개시일을 디데이(D/ day) 개시 시간을 에치 아우어(H/hour)라 부르며 대단히 중시한다. 영업 전략회의에도 이 개념을 도입하여야 한다. 그래야 투입된 인력이나 자원이 효율적 생산적으로 사용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군에서 지휘관은 공격명령을 내릴 때 시간 사용 계획을 수립한다. 상급 지휘관은 예하 지휘관이 명령을 수령하고 차 하급 지휘관에게 명령을 재 하달할 수 있도록 시간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 결론적으로 디데이 에치 아우어에는 모든 전투원이 자신의 임무를 정확히 숙지하고 공격 라인을 돌파하게 된다.


 제일제당에서 벌어졌던 사례를 보면 판매부서의 가장 하위 단위인 과장은 매월 5일 또는 6일에 판매 사원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는 격이었다. 사실 25일 정도 되면 그달의 영업 실적은 달성여부가 결정이 난다. 이후 30일 까지 벌어지는 일들은 전세를 뒤집는데 쏟아 붓는 전력 투입이라기 보다 규정을 어긴 술수와 요령이 난무한다. 이는 곳 자원의 낭비를 가져오고 사후에 독이 되고 영업의 방해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현명한 영업 부서장이라면 이 시간에 다음 공격 목표를 선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미 육군 전술 교본, 미군 교범을 읽다보면 Mission(임무)라는 용어가 반복하여 나온다. 예를 들어 보병 중대의 임무는 사격과 기동으로 적에게 접근하여 (A mission of company is close to the enemy by means of fire and maneuver...) 라고 기술 하고 있다. 전술학에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가 임무(미션)다. 우리 영업 현장에서도 임무를 아무리 강조하여도 모자람이 없다. 가장 상위 직책인 영업 본부장부터 말단 사원까지 달성 하여야할 자신의 임무 만 구체적으로 알고 현장(전장)으로 달려가도 50%는 달성한 셈이다. 지휘관은 하급 지휘자와 목표를 명확히 부여하고 그가 달성할 수 있도록 독려와 용기를 주고 최대의 지원을 제공하는 자이다.


 통수강령(統帥鋼領), 일본은 작은 섬나라다. 2차 대전시 비록 패전했지만 강대국들과 일전을 벌였다. 강군을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자신들만의 혼을 심은 전술 전략 텍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전쟁 교범이 통수강령이다.

서양의 클라우제비츠부터 프랑스의 참모총장 데부데 동양의 손자 오자 육도삼략 논어를 통틀어 전쟁 과 전투 수행의 귀감이 되는 요체들을 한데 모았다. 전시 일본 대본영에서 극비 문서로 취급했고 고급 지휘관에 한해서 독서의 권한을 부여했다. 패전 시 예하부대에 이 책의 소각을 명하여 완전 멸실 되었으나 전후 책 내용을 숙지하고 있던 지휘관들이 기억을  되살려 복원해냈다고 들었다. 책을 읽으며 소문 보다 내용이  평이해 좀 놀랐다. 전체 컨셉은 전투 수행 시 지휘관의 정신전력 강화다.  전투의 승패는 지휘관의 자신감과 의지에 달렸다고 말한다.


 가장 깊이 있게 와 닿는 말이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는 지휘관이 승리를 확신하는데서 비롯되고, 패배는 지휘관이 패배를 자인하는데서 발생 한다" 평범한 말 같으면서도 사실은 가장 핵심적인 말이다. 전쟁 전투도 그렇고 영업 활동도 그렇다. 지휘관과 부서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무기와 유능한 부하들이 있어도 지휘관의 의지가 꺾이면 그는 이미 전투에서 패한 거나 다름없다.


 우리 역사 이순신 장군이 실례다. 그는 ' 사즉필생(死卽必生)'의 강한 의지로 열세한 전력으로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2차 대전시 일본군도 통수강령에서 전이된 지휘관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유황도 전투와 오끼나와 전투를 기록한 전사를 읽어보면서 실감을 했다. 


 영업 현장의 부서장들의 목표 달성 의지와 용기를 잃지 않도록 교육하고 신념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장에 나갈 때 패배 의식에 젖어 나가는 이도 있고 전투 중간에 상사로부터 용기를 얻기보다 의욕을 꺾이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록키3'라는 영화가 한국에 들어와 상영 중이었다. 복싱 선수 록키(실베스타 스탤론)가 링에 올라 대전에 들어가기 전 상대방과 치열한 눈싸움이 벌어진다. 이때 음악 Eye of the tiger가 깔린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상대방을 캔버스에 녹아웃 시키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업 현장에서 꼭 필요한 멋진 판매 전략 전술 지침서를 만들어 보리라 마음 먹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젊음을 떠내보내며 가장 아쉽고 후회스런 부문 이었다.


 남자로 태어나 젊음을 한 곳에 불살랐으면 작품 하나를 만들어 내야한다. 명작이나 걸작이 없으면 자신을 완전 연소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길에 들어가서 길을 바꾸어보려 노력했고  좌절  속에서도 다른 길을 찾아내 내 길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던 젊은 날. 젊은 날의 파편들이 이끼 끼고 녹슬어 구석에 쌓여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 마다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이 모든 파편들을 한데 묶어 내다 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아 남은 길을 향해 떠난다.


                     (파편들을 내다버리고 1년이 지나 2017년.8월19일)



' >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봉산 부대 방문기  (0) 2018.04.16
중국 바로 바라보기  (0) 2017.09.11
내 친구 문원순  (0) 2017.07.27
또라이 論  (0) 2017.05.23
관점( 누가 유공자인가?)  (0) 201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