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내 친구 문원순

Sam1212 2017. 7. 27. 12:51

내 친구 문원순

 나는 교회 목사님 설교 시간에 잘 존다. 정신 차리고 집중하려 해도 가끔 깜박 할 때가 있다. 그 때 마다 집사람에게 옆구리를 찔리고 핀잔을 듣는다.


 내 친구 문원순은 목사님이다. 목사님이 나보다 더 존다.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새벽에 동기생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모임이 있다. 조는 모습을 몇 번 목격했다. 본인도 잘 조는걸 알고 있다. 설교 시간이 다가 왔는데도 모르고 졸다가 나간 경우도 있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문 목사의 설교를 몇 번 들었다. 아직 초 신자인 내 주제에 감히 목사님의 설교를 평 한다는 일이 주제넘게 보일지 모른다. 내 나가는 교회의 목사님 설교가 특급호텔의 양식당 이라면 문 목사의 설교는 재래시장의 순대국집 이라고 평하고 싶다.


 넓은 홀 안에 들어서면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바닥엔 카펫이 식탁엔 흠 한 점 찾을 수 없는 깨끗한 식탁보가 깔려있다. 주방 안에서 최고의 쉐프가 만들어낸 요리를 세련된 매너의 종업원이 정확한 위치에 음식과 식기들을 세팅해준다. 나처럼 소시민이 모처럼 고급 양식당에서 어설픈 칼질을 하면서 옆 테이블 눈치 보며 임무완수 하고 나온다. 계산대에서 평소보다 영이 하나 더 붙은 빌을 받아들고 얼굴 표정 변화 없이 계산을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면 뭔가 좀 허한 마음이 감싸온다.


 내가 가끔 모임을 갖는 공덕 시장의 순대국집. 들어서면 작은 식탁 마다 손님이 들어차 왁자지껄 조금 소란스럽다. 식탁 위엔 자리를 뜬 사람들이 먹고 간 빈 그릇들이 막 치워지고 있다. 투박한 아줌마의 손에 든 물걸레로 식탁을 닦아냈으나 아직도 마르지 않은 물기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 나는 휴지통에서 화장지 몇 잎을 꺼내 식탁위의 물기를 닦아낸다. 먼저 시킨 족발과 순대가 막걸리 병이 식탁 가운데 놓아진다. 막걸리 한잔을 가득 따라 건배를 외치고 모두들 목을 축인다. 김이 나는 족발을 새우젓에 찍어 입에 넣으며 세상살이 불만을 털어낸다. 드디어 펄펄 끓는 순대국이 투박한 뚝배기에 담겨 나온다. 족발 순대로 뱃속이 포화 생태이나 식탁의 분위기가 순대국까지 다 비운 뒤에야 자리를 일어서게 만든다. 4명이 먹었는데도 강남에서 혼자 먹는 값이다. 집에 가서도 누워도 신체 정신 모두 포만감에 느긋하고 기분이 좋다.


 문 목사는 육군 헌병 대위로 전역 후 좀 늦은 나이로 상계동지역에서 개척 교회를 기반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요즘은 상계지역이 깔끔한아파트촌으로 바뀌었지만 당시는 서울 외곽의 서민 거주 지역이었다. 고도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발전된 문명사회가 제공하는 도시의 화려함과 안락함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발전의 그늘에 묻혀 사는 계층들이 어느 나라나 존재한다. 


 문 목사의 복음 전파 대상은 바로 이들이다. 문 목사의 목회 활동은 바로 이들과 함께한 30년이었다. 그가 말했다 당신도 남들처럼 멋진 교회당을 짓고 넓은 홀 안에 꽉 차게 신도 수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가지 않았고 부러워하지 도 않는다.


 문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 마다 자꾸 공덕 시장 순대국집이 생각난다. 그의 설교엔 분장이나 가식이 없다. 정형화된 형식이나 정제된 교회 언어를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대형 교회의 설교에 익숙한 사람들이 접하면 투박하고 촌티가 묻어난다.


 문 목사는 분장하지 않은 자신의 맨 얼굴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목사라는 직함에서 오는 권위를 내세우려 하거나 체면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거침없는 솔직함과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주는 친밀감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작은 감동과 끌림은 이런 진실성에서부터 시작된다. 몇 번의 만남으로 내가 마음이 동했으니 그의 목회 지역 신도들도 같은 마음이라 생각된다.


 기록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복음을 전하려는 초기 제자들과 믿는 이들은 정치권력에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혹독한 박해 속에서 믿는 이들이 보여준 사랑의 실천은 감동적이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종으로부터 시작되어진 성당의 위용은 점점 장엄해지고 첨탑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고 성직자의 의관은 화려해졌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유형물이 커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빛은 점점 작아지고 변질되었다. 요즘 한국 교회를 걱정하는 이들의 우려도 바로 이런 중세 시대 우리의 경험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세계 몇 번 째 규모의 성전과 교육관 교외 숲속 넓은 대지의 수양 시설 그리고 수 만 명의 신도 수를 자랑한다. 지도자들은 새로 대통령이 취임하면 조찬 기도회에 참석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대표기도 드리는 영광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이런 교회당 속에는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신도들이 많다. 그들은 일상의 탐욕과 쾌락의 끈을 잘라버리지 못한 본인의 못남을 자신이 지닌 금력으로 페널티를 지불하고 위안을 찾으려고도 한다. 과도한 경쟁에 지친 많은 도시인들이 사색과 명상의 종교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 목사에게도 내가 이해 못하는 행동이 있었다. 그가 속한 교단의 회장에 출마를 했었다. 당연히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나는 문 목사 아닌 다른 친구의 부탁으로 수 일 동안 그의 선거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초 신자이며 교단의 흐름에 전혀 무지한 내가 지방의 목사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문 목사의 인품과 지도력에 대해 설명해드렸다. 마치 초등학생이 장학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다니는 교장 선생님이 훌륭하다고 설명 드렸다고 보면 된다. 이 일을 수행하기 전 다른 동기 목사에게 문 목사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넌지시 물어봤다. 문 목사의 교단 내 위상이나 현실로 보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말을 들었다.


 내가 주일에 교회를 나가면서부터 종교 서적이나 매스컴을 통해 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되었다. 많은 훌륭하신 목회자들이 간증을 기록한 책이나 신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성경 말씀 해설서를 접한다. 소개된 유명 인사들의 프로필이 정형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서울의 명문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유명 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선교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화려한 학력이다. 문 목사의 초라한 이력으론 그런 분들과 경쟁하기엔 벅찬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목회자는 학문적으로 튼튼한 토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들어내 가슴에 달아준 훈장은 사람이 달아준 훈장일 뿐이다. 목회자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고 실현 시키는 일이다.  그 우선 대상은 예수님이 편견 없이 돌보시고 사랑을 나누셨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박대 받는 이들이다.


 교회사에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던 분들이 계시다. 어두웠던 교회사의 일부를 이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성 프란체스코 신부는 생을 오직 수도복 2벌 만 으로 절대 청빈을 유지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파했다. 학대받는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 원주민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똑 같이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외치셨던 16세기의 라스카사스. 서구 자본주의의 거대한 바퀴아래 깔려 신음하는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실천할 것을 주장한 구티에레즈 같은  분들이 있었다.


 나는 문 목사가 상계동에서 펼치고 있는 복음 활동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길이라 믿고 그에게 찬사와 존경을 표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걸어가려면 많은 난관이 따르고 때론 비난과 조소도 따라온다. 문 목사가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이런 힘든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일부 빈민 활동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고상한 신학 용어나 민중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 했다.


 남들이 못가는 거친 길을 가려면 자신 만의 신념이 필요하다. 이런 신념은 때로는 고집이나 돌출 행동이 되어 주변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동기생에게 전해들은 문 목사가 보여준 돌출 행동을 글로 옮겨본다.


 문 목사가 헌병 소대장 시절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의 사이가 정치적으로 부드럽지 못했던 시절이다. 카터 대통령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행사에 문 중위가 연도 경비 임무를 맡게 되었다. 헌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미국 대통령 일행을 태운 차량이 교통 통제된 흑석동 대로에 들어섰다. 이때 갑자기 한국군 헌병 장교가 정차 신호를 보내며 가로 막았다.


 최고 수준의 신변 경호를 요하는 VVIP 미국 대통령이다. 사전 예고도 없이 미 대통령 차량을 막아선 한국군 경비 장교의 신호에 놀라 정차했다. 한국의 키 작은 헌병 장교가 카터 차량에 다가가 무슨 말인가를 전했다.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헌병 대장이 고함치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서 퍼졌다. "야 ! 문중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통과 시켜 이 새끼야"

당시 무슨 이야기를 카터 대통령에게 전했는지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 안 물어봐도 뻔하다. 하나님 믿으라는 말이거나, 우리도 하나님 잘 믿고 있으니 함께 하나님 세상 만들어가자는 말 이었을 것이다.


내 친구 문원순 목회 시간 에 잘 졸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실천해가는 목사님이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2017년 7월 22일 신우회 조찬기도회 문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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