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중국 바로 바라보기

Sam1212 2017. 9. 11. 12:20

중국 바로 바라보기

 

 

 왕대인(王大人)의 회갑 잔치에 초대장을 받고 어머니가 다녀오셨다. 거실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볼 때 마다 흐뭇했다.

잔치 상 앞에 어머니와 왕 대인이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어머님이 그날 입으신 옥색 치마와 쪽빛 저고리의 날랜 모습과 거구의 왕대인이 걸친 황금색 차이나 복식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인자한 모습의 왕대인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어머니의 한복 치마 단을 살짝 잡아끌며 주빈 석으로 안내하는 다른 스냅 사진도 몇 장 앨범 속에 들어있다.

 

 

 어머니는 왕대인의 회갑 잔치에 다녀와서 우리들에게 자랑을 하셨다.역시 부잣집 이라 상차림도 푸짐했다고 말씀 하셨다. 대인께서 옆 자리에 초대해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었는데  아랫마을 어려운 사정에 대해서도 이해심이 많으시고,  역시 대갓집 어른이라 후덕하시며 행동거지가 남 다르다며 칭찬하셨다.

 

 

 왕대인의 회갑 잔치에 다녀오신 후 동생들이 위 동네 왕대인의 산에 들어가 봄이면 산나물도 캐오고 가을이면 도토리도 따와 시장에 내다 팔아 살림에 적잖은 보탬이 되었다.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 되었다. 집에 도둑이 들어 창고에 보관 중이던 곡물을 털어갔다.  벌써 3번째 도둑이 들었다. 잃어버린 물건은 문제가 아니지만 동생들이 밤에 혼자 잠자기를 무서워한다.

 

 

 3년 전 두 번째 도둑이 들었을 때 큰 돈 들여 창문에 방범창도 달고 담에 철조망을 새로 보강했다. 그러나 요즘 도둑들의 기술도 발전했다. 이번엔 후문의 전자키 번호를 어떻게 풀었는지 감쪽같이 열고 들어왔다.

동생들이 도저히 무서워 못살겠다며 이사 가자고 난리를 쳤다.

 

 

 마침 미국에 사는 아버지 친구 분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걱정할 필요 없다며 미국에서 새로 개발된 CCTV를 소개해 새로 달았다. 역시 첨단 문명의 이기가  좋았다. 집안에 앉아서도 대문 밖 골목길과 집 담장에 접근 하는 사람들을 모니터 화면으로 훤히 내다볼 수 있다. 동생들도 마음이 놓였는지 혼자서 각자 방에서 안심하고 잠을 잔다.

 

 

엉뚱한데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위 마을 왕대인의 댁에서 우리 집에 설치된 CCTV가 위 마을로 올라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왕대인 저택 담장까지 내다보인다며 당장 철거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요구였다. 그러나 모두들 왕대인 댁과 불화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해결책으로 면장을 하다 정년 퇴임한 큰 삼촌을 보내어 집안 사정을 말씀드리기로 했다. 큰 삼촌은 우리 집안에서 공직에 나가시어 가장 출세도 했고 언변도 좋으시고 맘에 안 들때면 불같이 화를 내시는 분이시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 똑 부러진다는 삼촌이 왕대인 앞에서 제대로 말 한마디도 못하고 훈시만 듣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전하는 말씀이 왕대인이 앞에 세워놓고 얼마나 격노하시던지 서있는 동안 오금이 떨렸다고 하셨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여 가족회의를 열었다. 모두들 CCTV 설치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설치에 불만을 내보였던 막내가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돈 들여 설치했지만 도둑 방지에 실효성이 없고 위 동네 왕대인 집과 분란만 깊어진다고 주장했다. 다른 가족들이 설득했지만 막무가내다.

 

 

 막내가 철거를 주장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여동생이 귀 뜸 해주었다. 중학교시절 공원에서 숨어서 담배를 피우다 미국에 나가있는 아버지 친구에게 걸려 면박을 당했던 기억 때문이라 전했다.

 

 

 오랜 회의 끝에 CCTV를 낮추어 달기로 결정 했다. 설치 기사를 불러 왕대인 저택 방향으로 비추던 것을 우리 집 담장만 비추도록 조정해 달았다.

 

 

 지난달에는 왕대인 산으로 산나물을 캐러 들어갔던 여동생이 울면서 돌아왔다. 산에서 나물을 채취하는데 왕대인 댁 머슴이 다가와 캔 나물을 몽땅 빼앗아갔다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산에 들어오면 몸 성해서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겁박 까지 당했다고 한다. 동생들이 흥분해 당장 달려가 항의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지만 어른들 모두 참아야 한다고 자제 시켰다.

 

 아버지도 지난 봄 왕대인 손자 돌잔치에 축하 해준다고 선물 들고 찾아갔으나 잔칫상은 구경도 못하셨다.  함께 갔던 삼촌과 마을 입구 저잣거리에서 국수 한 그릇 사드시고 돌아왔다고 전해들었다. 동행해 왕대인 댁 구경갔던  조카 녀석은 왕대인 댁 머슴한테 발길에 차여 다리를 절둑이며 다닌다.

 

 왕대인 댁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CCTV를 철거하라는 요구다. 전달하는 머슴의 행동이 가관이다. 우리 아버지한테 반말로 지껄이며 빨리 철거하지 않으면 위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철조망을 치겠다는 엄포도 놓고 돌아갔다.

 

 

 내가 옆에서 듣다 열불이나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참아냈다. 참기를 잘했다. 왕대인에게 잘 못 보이면 또 어떤 횡포가 닥칠지 모른다.

 

 

나는 지금 거실 벽에 걸린 왕대인과 어머니가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인자해 보이시던 왕대인이 이렇게 야속하게 변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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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중국과 국교 수교 이후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감상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다.

 

1950년 한국 전쟁 시 참전한 중국 군대는 우리 초등학교 시절에 무찌르자 중공 오랑캐였다. 수교 이후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의 준비 시간 없이 중국 열풍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경제적으로 광대한 중국 시장은 사업가들에겐 단숨에 노다지를 캘 수 있는 서부 시대의 엘도라도였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30년 뒤진 자본주의 초년생이었다.

 

 

 우리의 대륙 진출 꿈이 실현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황금기도 있었다.

90년대 중반에는 5~6년 동안은 우리 민족이 대륙의 지배자들 앞에서 그들을 깔보고 무시하고 조롱했었다.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 승리 이후 1천년을 훨씬 넘겨 맞이하는 민족 자존심 회복의 시기였다.

 

 

 해외여행 자유화 바람을 타고 많은 이들이 중국에 다녀왔다.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출근하는 중국의 근로자들을 바라보며 대도시에서도 쉽게 마주하는 재래식 화장실을 처다보며 한국인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문화적 자존심은 도를 넘어섰다.

 

 

 중국인들은 깔끔하고 잘생기고 돈 많은 한국인을 부러워했다. 한국 젊은이들이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흔들어대고 외쳐대는 춤과 노래가 신기해 보였고 화려한 한국TV 극에 열광했다.

 

 

 대륙의 심장부에서 문화적 쾌거를 가장 먼저 실현한 이들은 학자나 관리 연예인들이 아닌 서울에서 건너간 졸부들 이었다. 그들은 북경이나 연변의 술집에서 마호타이를 마시며 지갑에서 100 달러 지폐를  꺼내 종업원 면전에 흔들어대며 그들을 한껏 조롱했다.

 

 

 중국인들은 표정을 감추고 한국인들의 모욕을 잘 참아 냈다. 1941년 아편전쟁 이후 영국과 서구 열강들에 당한 모욕을 잘 견디어낸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2000년대 들어와 중국의 노동자들도 아침에 샴푸로 머리를 감고 넥타이를 매고 나오기 시작했고, 한국의 졸부들도  자신의 부는 중국의 부자들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임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인들이 그동안 당한 모욕을 되갚기위해 한국을 향해 몰려오고 있다. 우리의 큰 병폐 중 하나는 너무 빨리 뜨거워지고 너무 빨리 식는 데 있다. 이는 우리가 역사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반복되는 치욕을 당하는 원인이다.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는  벌써부터 기획되었고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간 너무 흥분해 있어서 늦게 알게 되었을 뿐이다. 중국이 한국 정부에 싸드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반발을 예상하며 가볍게 던져보았던 한마디에 너무나 쉽게 먹혀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놀랐을지도 모른다.

 

 

 나라에 힘이 빠지고 정치인들이 파당을 지어 혼란에 들어가면 언제나 내부자들이 나온다. 외부의 세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 하는 배반자들도 등장한다.

 

 

 몽고군 침략의 앞잡이가 되었던 홍복원이나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한 기씨 일가 패거리가 있었다. 지금 어디선가 제2의 홍복원이나 기씨 일당을 꿈꾸며 숨어있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평화 또는 반전이라는 가면으로 위장하고 숨어서 중국어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사아의 패권 국가를 향해 무섭게 질주해가는 중국이다. 우리가 학생 시절 자랑스러워 했던 양만춘이나 두려워 했던 오랑캐 장수 용골대 마부대는 벌써 중국인 호적에 올라가 있다. 그들이 꿈을 실현 하기위해 벌써 우리를 향한 공작에 들어갔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제2의 홍씨나 기씨 만들기 대상 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벌써 몇 명을 선정해 면접을 마치고 실행에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모습이 수면 밖으로 나오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웃한 중국과 손을 잡아야한다며 비장한 모습으로 마이크 앞에 서서 선언할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은 왕대인의 집에 사절로 다녀와 자신이 왕대인을 설득해 산에 들어가 산나물을 캐는 것을 허락 받았다며 자랑하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 국민의 힘을 좀 더 모아주면 가을에 도토리와 밤도 주워올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산삼도 채취도 가능하다고 큰 소리로 외칠 것이다.

 

 

 고구려 멸망 이후 한민족은 대륙의 패권에서 밀려났다. 동쪽 끝 반도에 활동 영역이 한정되면서 북방 민족의 압박과 압제를 견디며 살아왔다. 우리 민족이 북방 대륙 세력의 침략과 섬나라 왜의 침략을 온 몸으로 혹독하게 받아 냈으면서도 대륙 세력의 침략엔 왠지 좀 너그러운 자세를 보이고 있다.

 

 

 섬나라 일본에서 받는 모욕에는 사돈의 팔촌이 받은 모욕 까지 기록을 찾아내고 끄집어내 피해와 보상을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 그러나 중국이 주는 더 큰 모욕에는 고등학생이 등판에 용 문신을 한 조폭 앞에 불려간 모습을 보인이다.

 

 

 이런 현상은 근래의 직접적인 기억과 오래 전 선조의 간접 경험의 시간차 때문에 오는 영향일 수 도 있다.

또 하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 세력과 작은 반도 세력의 정량적 비교 판단에 따라 당연시 하는 패배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이 환구시보에 한국인을 조롱하고 위협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수 많은 사찰과 교회에서 기도나 드려라"

 

한국인들에게 역사책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주제 파악을 하라는 모욕을 넘어선 위협적인 표현이다.

아마 고려의 수난사와 삼전도의 굴욕을 기억해 보라는 말로 들린다.

 

 

 몽고군 내침 시 고려의 국력으로 도저히 감당을 못했다. 강화도에 들어가 부처님의 은덕으로 오랑캐들을 내쫓아주기를 바라며 정성을 모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국가가 당하는 최고 수준의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음에도 서울의 광화문 광장은 왠지 조용하다. 강대국의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숨겨진 이유가있는지 궁금하다. 이보다 덜한 모욕과 더 강한 강대국에도 민중의 분노와 함성이 광장을 터져 나가도록 메웠었다.

 

 

 요즘 우리의 모습은 나무꾼이 숲속 동굴에 들어가  호랑이 다리를 베고 자다 깨어나 호랑이에 놀라는 모습이다. 가진 것은 나무 몽둥이 하나 뿐. 노려보는 호랑이를 몽둥이 하나 들고 대항한다면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우선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한다. 그리고 묘책을 찾아 내야한다. 백수의 제왕 호랑이라도 찾아보면 급소가 있고 약점이 있다. 또 호랑이가 즐겨 먹는 먹이와 기피하는 먹이를 찾아낼 수도 있다. 호랑이가 두려워하는 천적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위하여 기도를 올린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시대를 책임지고 있는 위정자들과 그리고 미래 이 땅의 주역이 될 우리 젊은이들에게 호랑이 등에 올라탈 수 있는 용기를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날뛰는 호랑이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급소와 약점을 찾아내는 지혜도 함께 내려주시길 간절히 기원 합니다.

 

 

 

 

 

        (2017년 9월 10일 '환구시보의' 조롱을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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