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관점( 누가 유공자인가?)

Sam1212 2017. 5. 22. 22:58

觀點


 정권이 바뀌었다. 새로 집권한 정권이 오늘 5.18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렀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간 문제가 되었던 '님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을 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역사적인 사건들의 평가가 뒤바뀐다. 치열한 권력 투쟁도 압축해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의 쟁투다.

정치나 역사 인식에 별 관심이 없거나 의식 없는 대중들에겐 가끔 혼란에 빠질 때가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에 '동학란'이라 실려 있었다. 요즘 동학란이라 부르면 눈총을 받는다. 동학란이 '동학혁명'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5.16혁명은 5.16 군사 정변으로 바뀌었다.


내 어릴적에 할머니께서 옛날 겪었거나 선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할머니는 1898년에 나셔 1990년에 돌아가셨다. 쇠망해가는 조선 왕조의 끝에 서있었던 한사람의 평민이다. 할머니는 학교 교육을 받아 보지 못한 분이다. 무슨 역사의식을 가지고 손자에게 들려준 것이 아니고 그저 당신이 겪고 들었던 이야기를  어린 손자에게 들려준 내용이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몇 건을 옮겨본다.


이야기#1

할머니의 부친이 들에서 일하다 집에 들어오니 산에서 총을 든 사람이 내려와 소를 끌고 갔다고 집 안 사람들이 겁에 질려 말했다. 총을 든 산 사나이는 대한 제국의 부활을 위해 일본제국 세력과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의병을 말한다. 이 말을 듣자 부친은 소를 끌고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산 사나이를 뒤쫓아 가서 두 팔을 벌려 산 사나이의 길을 막아섰다. “우리 소를 내놔라 절대 못 가지고 간다”며 소리쳤다. 산 사나이는 총을 겨눴다. “쏠 테면 쏴라, 날 죽이고 소를 끌고 갈 수 있어도 내 살아있는 한 소는 절대 못 준다”

결국 그 산 사나이는 소를 돌려주었다. 그 후 나라는 망했고 농부는 열심히 일해 지역에서 제일가는 부를 일구었다.


나라의 독립을 찾겠다고 의연히 일어나 목숨 걸고 싸우던 의병들 눈으로 바라보면 농부는 나라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기주의자였다.

열심히 농사일이나 하는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산 사나이는 남의 소를 강탈해가는 비적이었을 뿐이다.


이야기#2

할머니는 16살에 결혼을했다. 이때는 조선이 완전히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이다. 시집오기 전에 있었던 나의 증조부이며 할머니의 시아버지에 관련된 이야기다.

산 사나이들이 밤에 집에 들이닥쳤다.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 투쟁을 하는데 군자금이 필요하니 돈을 내 노라며 증조부의 부친(고조부)을 몰아세웠다.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고 하자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돈이 나오지 않자 당시 장성한 청년이었던 아들이라도 나라를 위해 바치라며 산으로 데리고 갔다. 산으로 끌려간 청년은 산 속에서 수 개 월 동안 지내며 그들과 함께 활동했다.


청년은 그 후 산에서 내려왔고 세월이 한 참 지나 막내아들이 상처를 해서 재취로 며느리를 다시 맞아들이는 혼사가 있었다. 좀 떨어져 살던 아들의 집에 들렀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깜작 놀라서 돌아왔다. 아들의 집에서 본 며느리의 부친이 수십 년 전 산 사나이들과 함께 활동할 때 보았던 구렛나루 검게 나있던 의병대장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산사나이들에게 뺐긴 아버지의 입장에선 그들은 폭력 집단이었다. 산 사이들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한 청년과 오랜 동안 신분을 숨기고 살았던 산 사나이들의 대장은 세월이 더 지나 해방을 맞았을 때 빛나는 훈장을 가슴에 달았어야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름 없는 평민으로 생을 마쳤다.


이야기#3

몇 년 전 장준하의 '돌베개'라는 책을 읽으며 감동과 함께 부끄러움과 충격을 받은 문장이 있어 옮겨본다. 장준하 선생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특히 독립 운동과 독재에 대한 저항 운동을 했다고 나서는 사람들 모두가 존경하는 분이다.

해방 후에 독립 운동 했다며 가슴에 훈장을 단 사람들의 참모습을 너무나 생생히 알고 있는 그가 죽기 전에 자서전에 기록한 글을 옮겨본다.


" 독립운동을 했다는 저명인사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오늘날 고개를 들고 다니는지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을 때가 허다할 정도다. 또 광복군만 해도 그렇다. 광복군 출신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일부 인사들이 광복군 모자 하나 얻어 쓰고 기실 과연 어떤 일을 했는가하는 것도 역사 앞에 밝히고자 함이다"


해방 후에 독립 운동했다고 훈장 받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글이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에 들어간다면 꼭 일군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충칭 폭격을 자원 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장준하는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다. 일군을 탈출 독립운동을 하고자 7개월 동안 6천리 길을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충칭의 임정에 도착했다. 충칭에서 임정의 지도자란 분들의 행동에 실망해 내뱉은 말이다.


이야기#4

"아시아 자동차 공장과 고속버스회사에서 대거 쏟아져 나온 차량을 타고 전남 도내 각 시와 군으로 내달았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넘어/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2017년 출간)


이글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이  도내로 확산 되는 과정을 설명한 글이다. 아시아 자동차 공장과 버스회사에서 군용 장갑차와 트럭 그리고 버스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표현하였다. 


쏟아져나왔다는 표현은 민주화 운동 주체들 시각으로 본 것이다. 시위에 동원된 차량들이 제발로 시내에 굴러나왔다는 표현 같이 들린다. 가지고 나온 주체가 표현되지 않았다. 주체 입장에서 보면 탈취 또는 획득이란 표현이 마땅하다. 

공장 측에서 보면 강탈 또는 도난 되었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만약 아시아 자동차 공장 소속의의 충실한 근로자가 차량 탈취를 막아서다 차를 뺏아가지고 나가려던 사람에게 맞아 사망했다면 그 개인의 행동은 의 인가 불의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 또한 의로운 죽음이다.  그가 전두환 군부의 정치적 활동을 지지 또는 반대 여부를 떠나서  자신의 일터인 공장을 지키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역사적 큰 사건들은 모두가 명암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건을 바라볼 때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려한다. 그 관점이란 자신에게 유리한 시각이다. 개인 뿐 아니라 단체나 집단 도 동일하다.

역사적인 사건 특히 정치적인 사건은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과 권력의 욕구가 명분과 대의의 틈 사이에 교묘히 끼어들어가 숨어있다.


우리가 이런 정치적 사건을 바라볼 때 대의와 명분이라는 옥석과 개인의 이기심과 권력욕이라는 잡석을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

산사나이들이 농민의 소를 강탈하고, 광복군의 모자하나 얻어 쓰고 얼쩡대다 해방 후 가슴에 훈장을 달고, 술 취해  데모대에 휩쓸리다 계엄군 체포 조에 끌려가 유치장서 몇 날 밤 고생하고 나와 민주화 유공자증 받아 든 사람 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잡석들이 옥석에 석여 들었다 해서 옥석의 가치가 퇴색되어선 안 된다. 어느  잔칫집이든 고생하는 사람 따로 있고 크게 한일 없이 얼쩡거리다 잘 챙겨먹고 생색내는 사람 따로 있게 마련이다.


동학혁명이나 대한제국의 멸망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역사서나 구전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있다.

그러나 현대사의 사건들 12.12 나  5.18은  내가 정치의식이 충분히 성숙한 상태에서 직접 겪고  보고 들었으며, 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건들이다.


관점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주체 세력이 내세운 대의와 명분이 옳았는지, 그들이 자기희생을 감수 했는지, 민중들의 호응은 어땠는지, 목적 달성과 상관없이 역사의 발전이나 민중의 복리가 향상되었는지를 자신이 스스로 짚어보고 판단하면 될 일이다.


정치적인 사건들이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식을 강요 당하는데 짜증이난다.

정권이나 학술 집단이 혁명을 란으로 바꾸고 란을 혁명으로 바꾼다 해서 맹종할 필요도 없으며 또한  분노하거나 기뻐할 필요 도 없다.


                                                                         2017년 5월 19일(아침 신문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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