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카톡방의 건맨들

Sam1212 2016. 4. 29. 15:09

카톡방의 건맨들


내가 초중학교 시절 가장 인기 있던 만화나 영화는 서부극이었다.

서부의 개척마을 소박한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동네에 어느 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시가를 문 총잡이들이 말발굽 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난다. 그들은 마을의 청년들이 모이는 바에 나타나 고압적인 분위기를 잡는다. 주민들은 그들의 기세에 몸을 사리며 몸조심을 한다.


총잡이의 무뢰한 횡포에 의협심 있는 순진한 카우보이가 결투를 신청한다. 술집 앞 도로에 마주선 두 사람 잠시 불안한 정적이 흐른다. 카우보이가 먼저 권총집에 손을 뻗어 총을 뽑아든다. 시가에 불을 붙이려던 총잡이는 한 순간에 총을 꺼내 한 발에 카우보이를 길바닥에 거꾸러트린다. 총잡이는 검지로 총을 몇 바퀴 빙그르 돌린 다음 권총집에 던져 넣는다.


총잡이는 가끔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백보 앞에 놓인 동전이나 빈 깡통을 정확하게 맞추기도 하고 오십 보 앞에 마주선 카우보이의 모자를 맞추어 공중에서 회전 시킨 후 두 땅에 떨어지기 전에 두세 발을 더 맞추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평화로웠던 마을은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마을로 변한다. 이 건맨들이 마을 상가에 나타나면 마음 약한 카우보이들은 마굿간 뒤로 슬금슬금 피하거나 문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다. 총잡이들이 동네를 길들이는 동안에 몇몇 상점들은 가재도구를 챙겨 마차에 싣고 다른 도시로 떠나갔다. 새로운 금광을 찾아갔다며 야반도주하는 부끄러운 집들도 생겨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장악한 마을에도 새로운 질서와 룰이 형성된다. 건맨들과 바에서 위스키를 함께 마시는 용감한 카우보이도 보이기 시작한다. 친분을 쌓은 몇몇은 밤늦게 까지 그들과 포커를 즐기고 있는 광경도 가끔 눈에 띤다.


언제 부터인지 우리들 생활에 카톡방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첨단의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다. 보통의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 나이라면 서너 개 이상의 단체 카독방에 이름이 들어가 있다.


소속된 커뮤니티에서 회원 간에 좋은 정보를 전달 공유한다. 흩어진 의견을 손쉽게 한데 모을 수 도 있다. 회원 간 실시간으로 친목을 다지는데 이처럼 좋은 시스템을 마음껏 누리는 세대에 우리도 함께하고 있다.


아직 운영의 룰이나 에티켙이 확립되지 않은 단체 카톡방 세계에 새로운 강자들이 나타났다. 마치 서부의 건맨이 연상된다 .


소박하고 순진한 회원들은 이 건맨들이 만들어내는 낯설고 새로운 질서에 당황해하고 몸을 사린다. 이따금 용감한 카우보이가 불만을 표출하거나 결투 신청을 해보지만 애초부터 승부가 정해진 게임이다.


이 건맨들의 시골 카우보이들을 길들이는 데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자기과시다.

"이 시골 카우보이들아! 내가 오케이 목장에서 이 쌍권총으로 링고 형제 다섯 명을 저승으로 보낸 바로 그 전설의 인물이다"라고 외친다. 다른 총잡이는 " 내가 저술한 <속사의 비법>이란 책을 읽어 보아라 그러면 너희 촌놈들도 명사수가 될 수 있다"라고 자랑한다. 또 다른 총잡이는 " 나는 일찍이 애리조나의 그 유명한 센트럴 스쿨을 졸업하고 허드슨 목장에서 속사술을 익혔다. 내가 바로 0.4초 쌤이다"


속사술 자랑뿐 아니다. 달라스의 전설적 총잡이 와이어트 어프 연방순회 판사 앤드류 심지어 상원의원과도 친분이 있다고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고 나타난 순간 3류 총잡이라고 자인하고 나온 셈이다. 자고로 명성이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타인을 통해 전해 들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나는 왜 이들이 그 현란한 총잡이 기술을 가지고도 자기 입으로 자랑해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두 번째. 실패한 총잡이 생활이었다.

험한 서부에서 총잡이 기술로 출세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총잡이들은 그들의 실력을 인정받기위해 스미스목장 허드슨목장 오케이목장 같은 대 목장에 고용되어 그 실력을 보여준다. 광활한 서부에 말 다루는 기술 총잘 쏘는 기술로 무장된 카우보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대 목장에 들어간다 해서 속사 기술 하나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총잡이들을 보면 속사술은 조금 떨어져도 다양한 재주꾼들이 많다. 농장주의 심기를 잘 읽는 재주도 필요하다. 주인이 외출할 낌새면 재빨리 마차를 집 앞으로 대거나 가끔은 주인마님 부츠를 반짝거리게 닦아 놓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큰 농장에는 흑인 노예들을 잘 다뤄 생산력을 높이는 리더쉽도 요구된다. 그들은 이런 보이지 않는 기술은 약하며 오직 속사술 하나로 승부 내려다 주인의 눈 밖에 나 밀려나온 총잡이들이다.


세 번째. 아직도 총잡이 기술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모두들 머리 허연 정년을 훨씬 넘긴 나이다. 이젠 그 총잡이 기술은 빨리 머리서 떨어버리는 게 좋다. 농장에서 일할 때는 자랑스런 기술이었다. 스마트 총으로 무장한 젊은 총잡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로 무장해야한다. 은퇴한 총잡이들도 찾아보면 할 일이 많다.


어쨌든 우리 동기들 중에 전문 총잡이들이 많이 있다는 건 자산이다.

자신의 속사 기술을 함부로 드러내거나 남용하지 말고 힘없고 순둥이 같은 시골 카우보이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베푸는 자세로 활동해 주었으면 한다.


SHANE이란 총잡이 생각이 난다. 광야를 떠돌던 총잡이 셰인, 스타렛이란 농부의 집에 머물며 장작도 패어주고  주인집 아들 소년에게 속사의 묘기도 보여다. 읍내에 나갔다  마을 주민의 농토를 뺏으려는 라이커 일당들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함부로 총을 뽑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집 남자를 구하기 위해 악당들과 싸워 이기고 마을을 유유히 떠난다. 

정들은 주인집 소년이 뒤에서 돌아오라고 '셰~인'이라 소리쳐 부른다.  소년의 메아리와 겹치는 새벽 하늘 풍경이  서정성이 넘친다. 우리의 총잡이들이 모두 셰인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위 글은 내가 회원으로 가입되있는 몇개의 단체 카톡방(군동기모임, 신우회)이 최근 혼란스런 모습을 보여 풍자 형식의 글을 2016년4월 29일에 올린 내용이다.)



' >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점( 누가 유공자인가?)  (0) 2017.05.22
난중회의록  (0) 2016.07.14
自由人  (0) 2015.10.14
4류 집단(울컥)  (0) 2015.09.04
or let me die!(보물찾기)  (0) 201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