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自由人

Sam1212 2015. 10. 14. 11:28

 

                                  

 

자유인되기

 

 태국이나  미안마에 가면 코끼리 트래킹이란 여행 상품을 볼 수 있다. 5톤이 넘는 거구의 코끼리가 100/1 밖에 안 되는 작은 인간의 조종에 순응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신기하다.

 

 

 얼마 전 야생 코끼리를 길들이는 끔직한 현장이 방송에 공개되었다.  코끼리를 쇠줄로 묶고 좁은 공간에 가두어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훈련이다.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코끼리의 귀 이마 무릎을 찍어서 명령어를 인식시킨다. 동물의 순응 과정은 명령 불응 시 가해지는 고통과 순응 시 제공되는 보상으로 만들어진다. 사육사의 작은 몸짓이나 명령어에 조건반사적으로 행동하도록 뇌에 입력된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길들여진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 번 길들여진 동물은 묶였던 쇠사슬을 풀어주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도 본성을 잃어 버렸기에 스스로 생존하기 힘들다. 스스로 본성을 찾아 생존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육사가 제공한 달콤한 바나나의 기억이 코끼리의 의식을 영원히 지배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속박의 그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특별히 굵은 사슬에 묶여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들이 길들여지는 가장 큰 훈련장은 직장이다. 직장 중에서도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과 민간부분을 관리 감독하는 정부 기관이다.

 

 

 재벌이란 한국의 독특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집단이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일반적으로 오너라 불리는 최 정점 의사 결정권자의 존재다. 이 기업 지배자의 개인적 캐릭터가 집단의 문화와 조직원의 사고 체계까지 영향을 준다. 한 직장에서 오직 정상만 바라보며 2,30년간 장기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고위층에 올라갈수록 오너와의 접촉 단면이 많아진다. 결국 오너의 심기를 잘 읽어내는 기술과 실행에 옮기는 요령을 자신도 모르게 습득하게된다. 개인의 창의성이나 합리주의 윤리 의식까지도 주어진 틀에 넣도록 변형시켜야만 조직에서 유능한 경영자로 평가되고 생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아직도 관존민비 의식의 존재다. 근대화 산업화 이후에 경제 영역에서 민간 부분이 많이 성장했으나 수 백 년 동안 내려온 관의 우월의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월의식이란 결국 민간 영역을 감시 통제 징벌하는 합법적 권력에서 나온다. 이런 기관 공직에 오랫동안 일을 하면 우월감이 의식화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특히 고시라는 국가시험을 통해서 공직에  입문한 사람들은 그 선민의식이 더하다. 국민의 공복이라는 인식 보다는 봉건사회 과거제도 하의 관리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나이가 60이 넘어서면서 부터 주변에서 직장에서 퇴직하고 은퇴 생활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게 된다. 60세 중후반에도 괜찮은 직장에 몸담고 활기찬 활동을 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다. 모두들 젊은 시절 격렬함과 활기로, 중년에는 전문 지식과 노련함으로 화려했던 직장생활을 했던분들이다. 이제는 흐르는 세월에 밀려 아쉬움과 미련을 떨어버리고 은퇴생활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요즘 이런 분들의 만남이 많아지면서 나름대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첫 번 쨰 그룹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속박의 사슬을 자신의 손으로 걷어낸다. 그들은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본성이 원래 위치에서 많이 굽어져 있고, 맑았던 심성의 거울에도 때가 많이 끼었음을 스스로 인식한다. 바르게 펴고 닦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쉽게 본성을 찾아간다. 자연이 주는 느림과 평안함을 즐길줄 알고 숲과 자연을 찾아 쉽게 동화되며 본성을 찾아낸다.

 

 

 두 번째 그룹으로 과거 자신을 옭아맸던 사슬을 스스로 벗어버리지 못한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재벌 대기업이나 권위적인 정부기관에서 퇴직한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평소 그 분들에게 가졌던 기대감이 많이 무너져 버리는 아픔을 경험한다. 대기업의 경영 일선에서 정부의 주요직에서 사회적 촉망을 받았던 분들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객관적이고 보편적 시각에서 벋어나 있는 경우를 본다. 아직도 전 직장에서 가졌던 자의적이며 주입된 일방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음을 보고 놀란다.

 

 이런 사고와 행동은 전 직장에서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자기방어기제가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끼리가 사슬이 풀렸음에도 조련사의 명령에 복종하듯 퇴직 후에도 사슬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 활동했던 이들이 이성과 객관성과는 배치되는 인지부조화적  행동이다. 그들은 사슬을 풀어버리면 불안해한다. 스스로 사슬과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야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자유인이 되기를 원한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기는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주어진 자유는 당연히 최대한 향유하고 찾으려 노력해야한다. 모두가 큰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보여지 길 원한다. 큰사람이란 자유인이다. 자유인이란 자신을 둘러싸고 얽매인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스스로 사슬을 끊고 이성이 지시하는 대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2015,10.14)

 

* 오늘 재벌 기업에서 함께 직장 생활을하다 퇴직한 6명과  식사 자리를 함께했다.

식사중 함께 나눈 대화 내용에 실망하고 이글을 썻다.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노는 거는 돈버는 노동의 세계와 연결되어있어 노는게 아니다.

노는거는 그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거다."

(밥벌이의 지겨움/김훈)

 

"현대의 노에는 스스로 노예의 옷을 입고 목에 굴욕의 끈을 휘감는다. 

그리고 무었보다 놀랍게도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가 노예라는 자각이없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노에인 것을 스스로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기까지 한다.

......................................................................

노예가 노예로사는 삶에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1968년 NY 할렘에서 리로이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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