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or let me die!(보물찾기)

Sam1212 2015. 7. 10. 14:58

 

 

             (응접용 재떨이세트/ 학 문양의 주물 장식이 붙어있다)

 

 

 '보물찾기'라는 놀이가 있다. 우리 나이라면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서 보물찾기 놀이를 한두 번 해본 추억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주관자가 종이에 보물의 이름이나 숫자를 적어 바위 틈 이나 나무 밑에 숨겨 놓고 찾은 사람에게 해당 상품을 주는 놀이다. 나는 소풍 때 보물찾기 게임에서 보물을 찾아내 환성을 터트려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소풍 때의 아쉬움 때문인지 사회에 나와 내가 주관하는 야외 모임에는 보물찾기 게임을 끼워 넣곤 한다. 소년 시절의 날려버린 발견의 쾌감을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통해 다시 찾아보는 대리만족 기회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직원들과 야유회 때 몇 번의 보물찾기 행사를 했더니 역시 모두들  즐거워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가 집안의 최고 어른이 되었다. 봄가을 두 번 고향의 선산에 모여 추도행사를 행사를 치른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조카들도 함께하기에 20명 가까이 모일 때 도 있다. 이 행사 뒤에도 보물찾기를 넣었더니 모두들 좋아한다.

 

 

 소년 시절 고향집에서 혼자만의 보물찾기 재미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이가 조금 들어 세상 물건들에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집안의 낯선 물건이나 지금까지 못 보았던 물건들이 나의 호기심을 부축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향의 집은 전통 한옥 구조로 아래채와 위채 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래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어서 문 입구엔 거미줄로 엉켜있고 방엔 쥐들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였다. 고향집에는 다락 벽장 갓집 등 어둠 컴컴한 수납 공간들이 유독 많았다.

 

 그 컴컴한 수납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다락이란  어깨 높이 위에 큰 문이 달려 있고 공간도 제법 넓다. 이곳은 평상시엔 잘 사용하지 않는 주방의 물건들이나 조금 귀한 살림도구들을 보관하는 장소다.

 

 커다란 광주리에 잔치할 때나 사용하는 놋그릇이 잔뜩 담겨 있다. 또 다른 광주리엔 깨지기 쉬운 사기그릇들과 예쁘게 꽃그림이 그려진 옹기들과 사기 주전자 도 담겨 있다. 평상시 못 보던 물건들 크고 작은 함지박 등 이 컴컴한 다락방에 뒤죽박죽 쌓여 있다. 나는 시간이 나면 다락에 올라가 이상한 그릇들을 꺼내어 표면에 그려진 그림을 들여다보고 들고 나와 밝은 햇빛에 비쳐보곤 하였다. 당시 다락에 올라가 혼자서 즐겼던 일들이 후에 나의 심미안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다락방에서 처음으로 내가 찾은 보물은 '응접용 재떨이세트'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3개의 작은 상자 위에 주물로 만든 학 문양의 장식이 붙어있다. 장식용 주물이 녹슬어있어 녹을 제거하는 광택제를 구해다 닦아냈던 잘못된 일도 있었다. 얼마후에 쎄트 받침대도  다락방에서 찾아냈다. 광주리 속 많은 유기 그릇 중에서 아주 작은 애기 밥그릇을 발견했다. 밥그릇 뚜껑에 희미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이 글자가 내 이름인줄 알게 되었고 내 첫돌 기념선물이라 전해들었다. 60년대 스텐레스 그릇이 쏟아져 나오면서 사용하기 불편한 유기그릇을 모두 처분해 버렸다. 이 때 내가 발견해 보관하던 몇 개만이 살아남았다.

 

 벽장은 방벽에 문이 달려있는 수납 공간이다. 다락 보다는 좀 좁은 공간으로 일반적으로 한옥 건축 구조상 부엌 부뚜막 위 방안의 천정 사이 공간에 위치한다. 안방의 벽장은 보통 이 층 구조로 되어 있다. 작은 방과 마루 끝에도 작은 문 하나가 달린 벽장이 있었다. 안방의 큰 벽장에는 방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여자 용품들이 들어가 있다. 이따금 떡 엿 한과 또는 과일 같은 먹을 것을 보관하기도 한다.

 

 

 작은 방의 벽장에는 쓰지 않는 물건들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 몰라 처 밖아 놓은 물건들이 뒤죽박죽 석여있다. 어느 날 벽장 속을 뒤지다 이상한 책을 몇 권 꺼냈다. 표지에 붓글씨로 '장화홍련뎐'이라고 적혀있었다. 책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전'을 '뎐'이라 잘못 쓴 줄 알았다. 할머니가 글을 배우고 이야기책을 필사한 것이라 들었다. 이 책은 초등학교 때 까지 있었으나 그 후엔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이 없다. 할머니가 남긴 유일한 필적인데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좀 아쉽다. 

 

 작은 방 벽장에서 찾아낸 성과물은 '신선로'다. 왜 신선로가 다락방의 유기그릇을 보관하는 광주리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벽장 속에서 발견되었는지 궁금하다. 신선로 아래 표면에 음각으로  남대문과 광화문이 새겨져 있다. 단단한 쇠(유기)표면을 부드러운 나무판에 조각하듯 아름다운 문양을 새겼다. 당시엔 무척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마루 끝 부엌 문 앞에 있는 벽장은 당시 내 키가 너무 작아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어느 날 디딤판을 놓고 손을 뻗어 깊숙한 곳에 이상한 물건이 잡히기에 꺼내보니 군용 방독면이 나왔다. 처음 보는 물건이고, 당시 아주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방독면 을 찾아낸 후 호기심이 더해졌다. 얼마 후 좀 더 깊숙한 곳에서 외피가 없는 타원형의 군용 수통 1개를 더 찾아내는 전과를 올렸다. 일제 때 물건인지 한국 전쟁 시 북한군의 물건인지 확인 할 수 없었다. 할머니한테 전해들은 기억으로 북한군 점령 시 우리 집 아래채가 인민위원회사무실로 쓰였고 북한군 1명이 파견 나와 상주했다고 한다. 북한군이 놓고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방독면은 밤에 뒤집어쓰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아주 훌륭한 장난감이 되었다.

 

 

 갓집은 다른 집에서는 본적이 없다. 방 천장의 구석 모서리에 가로 세로 40센티 정도의 정육면체의 공간이 붙어 있다. 갓집은 안방과 건너방에 만 있었다. 갓을 넣어 두는 공간이라 생각되지만 내 어릴 적에 갓을 쓰는 사람은 오래전에 사라진 뒤라서 갓 구경은 한 적은 없다. 얘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위치해 어른들의 중요한 물건이나 서류 뭉치들이 들어있다. 

 

 이곳에서 깜작 놀랄 수확이 있었다. 여러 번 뒤졌으나 서류 뭉치와 두꺼운 가죽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제도기세트 뿐이었다. 어느날  갓집 바닥에서 총알 하나를 새로 찾아냈다. 어린 마음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권총 탄알이었다(뒤에 알게 되었지만). 조금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나만의 비밀 장소에 감춰놓았다. 나이가 들어서 동생에게 보여주며 총알 뒤 뇌관을 치면 폭발하며 탄알이 앞으로 나간다고 설명하니 동생이 기겁을 하면서 달아났다. 권총 탄알이 왜 갓집에 들어있었는지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골방은 은 큰 방 옆에 붙어있는 작은방이다. 우리의 전통가옥은 별로 크지도 않은 방을 나누어 왜 작은 방을 하나 더 만들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골방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항상 어둠침침하다. 어떤 때는 쥐가 들어오기도 한다. 골방에는 사용하지 않는 할머니 물건들이 들어가 있었다. 농 반다지 함 그리고 부들로 엮어 만든 크기가 1미터가 넘는 고릿작이라 불렀던 괴가 2개나 쌓여 있었다.

 

 골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항상 궁금했던 나는 할머니가 집을 비운 시간에 골방에 들어가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할머니 농 위 칸엔 작은 서랍이 4개 달려있다. 서랍 속에는 할머니의 복주머니와 두꺼운 종이판에 인화된 할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옆 칸엔 딱딱하게 말린 인삼도 몇 뿌리 들어있었다. 쥐들이 인삼 냄새를 맡았던지 인삼이 들어있는 서랍은 이 빨로 쏠아 서랍 귀퉁이가 조금 떨어져나갔다. 다른 칸에는 탯줄과 같은 좀 이상한 물건도 들어있었다. 칼집이 없어진 은장도와 농 열쇠가 함께 들어 있었다. 작은 열쇠는 좀 특이하게 생겼다. 자물통의 홈에 넣어 위로 당겨야 열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몇 번의 조작으로 농문을 쉽게 열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의외로 안에는 별게 없고 솜뭉치와 색 바랜 옷감 한 뭉텅이가 잘 개어져 들어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한테 이상한 물건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 필요한 물건들이라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롱 속의 색 바랜 옷감은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온 명주로 사용하고 남은 것이라 했다. 내 장가갈 때 줄려고 보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나왔다. 솜 같이 생긴 것은 풀솜으로 사람이 죽으면 사용한다고 말해주었다. 당시 어린나이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직장에 들어간 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서울에서 전갈을 받고 고향집에 들어가 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방에 누워계셨다. 할머니께서 보관하고 계시던 그 풀솜으로 코를 막아놓으신 것을 보았다. 칼날이 많이 닳아 쓸모없이 보였던 은장도는 엿 장수에게 건네고 아무도 모르게 푸짐하게 엿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래채 빈집은 모두들 들어가기 싫어하는 공간이다.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거미줄이 쳐져있고 쥐들의 운동장이 된지 오래였다. 나는 이곳에도 여러 번 들어가  숨겨져 있는 어떤 물건들이 남아있는지 철저한 수색을 벌였다.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벽장 안에서 축축하고 검게 퇴색한 옛날서적 과 커다란 푸른색 팔각 유리병 한 개를 찾아냈다. 후에 사랑방 마루 벽에 붙어있던 커다란 글씨(淸閒幽)를 칼로 오려내 떼어내 온 것이  큰 수확물로 남아 있다.

 

 보물찾기의 매력은 호기심과 환희다. 숨겨진 물건을 찾아나가는 힘든 과정에서 맛보는 설레임과 발견했을 때 찾아오는기쁨을 즐기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추동력은 호기심이란 생각이 든다. 호기심은 개인의 창의성을 발현케하는 촉매제 역할을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도 호기심이었고, 뉴턴의 대 발견과 발명왕 에디슨의 업적도 그 근원을 찾아가보면 호기심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발견된 보물의 가치는 매우 주관적이다. 내가 소년시절 발견해 애지중지하는 물건들은  하나 하나에 발견하기 까지의 나만의 스토리와 발견 당시의기쁨이 담겨있다. 그러나 다른사람 한테는 아무런 감동도 없는 철지난 고물일 뿐이며 현대 생활에 별 쓸모없는 옛 물건들 이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사짐 꾸리기를 십여번이다. 이 때마다 이 물건들을 정성껏 챙기면 아내는 구닥다리 물건들 이제 그만 버릴 때가 되지않았느냐고 말한다. 우리집 애들도 나의 보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 아쉽다.

 

 늙었다는 것 노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호기심이 사라졌거나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나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줄어들지 않고 젊은이와 갔다면 육체는 늙었지만 지적 상상력과 활동력은 젊은이와 갔다고 말해도 된다.

 

 어릴 적 고향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을 피하며 다락방과 벽장을 뒤지며 보물찾기를 한 기억이 어제 같다. 이제 내가 벌써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도 당시 호기심에 가득했던 소년의 마음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랄뿐이다. 한 서양 시인의 시구 처럼. " 내 늙어서도 그리 하리니. Or let me die!"

 (2015,07,10)

 

 

 

 

 

 

                              (애기 밥그릇/ 뚜껑에 '덕기 돌맛지'5자가 음각되었다)

 

                       ( 몸통양 쪽 면에 광화문과 남대문이 정교하게 음각되어있다)

 
 

 

                       (할머니 농/4개의 작은 서랍)

 

 

                                  (할머니 농 서랍에서 나온 할아버지 사진)

 

 

 

           (옛 서적/책 속에서 금방이라도 쥐벼룩이 튀어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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