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향기(香)

Sam1212 2015. 1. 19. 18:51

 

 

                                      (가지고있는 향을 모두 전해주고 깨끗한 자태로 남은 모과)

 

 

향기(香)

 향기는 코를 통해서 감지 할 수 있는 좋은 기운이다. 향기 자체가 인간의 생명 유지나 신체 발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생활에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자연의 향기는 꽃에서 나온다. 일반적으로 좋은 향기는 크고 화려한 꽃 보다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작은 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 선비들은 엄동설한을 이기고 피어난 매화 향과 난향을 제일 좋아했다. 나는 들녘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들국화 향을 좋아한다. 

 

과일들 도 좋은 향을 머금은 것 들이 많이 있다. 나는 모과 향을 좋아한다. 모과는 수박이나 참외 만큼 크지도 않고 사과나 자두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색을 가지지도 못했다. 조금은 투박하고 과육을 직접 먹을 수 없는 못난 과일이지만 향기만큼은 으뜸이다.

 

지난 가을 아내와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가을 바람에 떨어진 모과 2알을 주워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작은 쟁반에 담아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더니 탁자 곁을 지나칠 때 마다 은은한 향이 코 끗을 스쳐가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모과는 한 달이 넘어가자 향은 좀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가지고 있는 향을 내보내 주었다. 2달 째 접어들자 표피가 검게 변하면서 퇴색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몸이 검게 썩어가면서도 나쁜 냄새가 나거나 과육이 물러져서 물이 흘러 주변을 더럽히지도 않았다. 주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향을  남김없이 나누어주고 깨끗한 자태로 떠나는 모습은 작은 감동이었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누가 나에게 어느 분에게서 그런 향기를 맡았냐고 물으면 나는 법정 스님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싶다. 법정 스님은 수도자로 이 세상을 살다 떠나셨지만 특정 종교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말씀의 향기를 나누어 주셨다. 불교의 수도승이란 자리가 불자 아닌 일반 대중들과 유리되기 쉬운 위치지만 스님처럼 대중 속에서 사랑을 받은 분은 드물다.

 

스님 이전에도 많은 고승들이 대중을 상대로 지혜를 나누었으나 불교 특유의 깨우침을 전달하는 선문답 형식이 주류를 이뤄 대중과의 소통은 좀 거리가 있었다. 스님은 어렵고 딱딱한 언어를 쓰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나는 스님과 종교도 다르고 한 번도 만나 뵙거나 설법을 들은 적도 없다. 다만 스님이 생전에 대중을 상대로 많은 책을 써서 발표하셨기에 글을 통해 아름다운 향기와 가슴 서늘한 기운을 접할 수 있었다.

법정스님의 글은 깊은 울림이 있고 떨림이 있다. 마치 적막한 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영혼을 울리는 범종소리와 같다. 그런 울림이 있는 글은 아무나 쓸 수 없다.  머리에 든 지식으로 쓴 글이 아니다. 스님의 글은 가슴으로 깊은 사유의 과정을 거쳤기에 정제된 순수한 문장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고 흘러나온다. 맑은 가을날 시원한 바람에 실려 오는 들국화 향기 같다.

 

 

스님은 많은 글을 남기셨다, 스님의 글을 읽어보면 글 속에는 가시가 하나도 없다. 젊은 시절 처음 글을 세상에 내보낼 때에는 다소 가시처럼 보이는 옹이들이 몇 개 붙어있기도 했다. 당시 세상의 부조리와 부딪치면서 생긴 옹이라 생각된다. 요즘 세상에 필명을 날리고 있는 작가들의 글을 읽다보면 곳곳에 자신을 올리고 권위를 뽐내며 세상을 호통 치는 가시도친 글들과 마주칠 때가 많다. 

 

글은 쓰는 사람의 생각을 문장화 한 것이다. 문장 속에 글쓴이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아무리 자신을 과장하고 미화하고 축소하고 감춰도 읽는 사람은  다 알아본다.

 

 스님은 세상을 떠나면서 대중들을 향해 향기를 담아 전달했던 향수병을 깨버리고 입적하셨다. 마지막까지 수도자로서 구도 정신을 실현하고 독자들에게 설법한 무소유의 정신을 지키셨다. 인류 문화사에 자신의 생각을 책을 찍어 세상에 알리고 세상을 떠나면서 판각을 불살라버린 이는동서고금에 없었다.

 

 

나는 이 땅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한 하늘아래서 법정 스님과 함께  숨 쉬고 살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존경한다. 이런 분이 몇 분만 이 땅에 계시면 세상은 훨씬 맑고 향기 그윽할 것이다.

                (2015. 1.19    두 달 간 함께 한 모과를 떠나보내며)

 

 

 

 

 

 

 

법정   글 모음

- 어느날 내가 누군를 만나게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한다.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 만큼 성숙해지고풍요로워 질것이다.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 깨어있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그 순간을 살줄 알아야한다.좋은 친구란 주고받는 말이 없어도 마음이 편하고 투명하고 느긋하고 향기로운 사이다.그 밖에 또 무었을 찾는다면 그것은 헛된 욕심이고 부질없는 탐욕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일의 과정에서 일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삶의 순간순간에서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 것인가?'하는 물음에서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내려놓음은 일의 결과가 세상에서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연과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내안의 자연을 찾는다.궁극적으로 내가 기댈 곳은 자연뿐임을 아는 마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와지는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써 거듭나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 이야만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나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것에도 얽매이지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산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지식이 지혜로 깊어지려면 거기에는 어떤 여과 과정이 있어야할 것이다.무었보다도 자신의 일상을 객관화시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순수한 집중을 통해 생의 밀도같은 것을 의식하는일이다.철저하게 자신을 응시함으로서 자기 존재에대해 자각하는 일이다.나는 무었인가? 나는 왜 사는가?어떻게 살것인가? 자기 자신에대해 이와같은 원초적 물음을 던져야한다.그러기 위해서는 홀로있는 시간이 필요하다.외부의 정보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우리가 홀로있다는것은 온전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홀로있는 시간을 거의 잊어버렸다. 빽빽하게 꽃혀있는 밀(密)에서 툭 트인 허(虛) 를 익힐 필요가있다.

                                                                                                                         (맑고 향기롭게 중에서)

-걷는 것은 어디에도 의존하지않고 내 힘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흥이나면 휘파람을 불 수있고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멈추고 눈을 닦을 수도 있다.길벗이 없드라도 무방하다. 치수가 맞지않는 길벗은 오히려 부담이된다.좀 허전하드라도 그것은 나그네의 체중같은 것. 혼자서 걷는길이 생각에 몰입할 수 있어 좋다.살아온 자취를 뒤돌아보고 앞으로 넘어야할 삶의 고개를 헤아려본다.

-홀로있음은 보라빛 외로움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길이다.그것은 당당한 인간 실존이다.사람은 홀로있을때 순수해진다.모든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된다.그리고 궁리를 한다.가장 옳바른 것을 생각하고 깊은 것을 들여다보고 높은것에 눈을 주게된다.

-중노릇이 어렵다는것은 남의 福田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내 心田이 시원치 않으면서 어떻게 남의 복전이 될 수있겠는가. 僧寶란 남의 의지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있는 사람들 중에서)

-산에 오르면 우선 산으로 부터 해방되어야한다.되지도않는 말작난에서 벗어나 입다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있어야한다.

-질문은 지성적으로 전개되는데 답은 체험적이어야한다. 왜냐하면 지적인 대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으켜 최후의 답에 이룰 수 없기때문이다.

질문이 멈춰야 해답이나온다.선은 설명 해설등 논리 전개를 거부한다 자기 안에서나온 질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야한다.

답은 질문속에 이미 잉태되어있기때문이다.

                                                                                                                          (텅빈 충만 중에서)

 

 

 

 

 (우면산 오르는 길 계단에 피어난 들국화  많은 등산객이 지나갔건 만 누구도 꽃을  밟고 간 이 없다)

 

 

 

.

 

 

 (길상사 돌담 아래 안식처)

 

 

 

 스님이 손수 만들어 사용했던 나무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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