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손이 시려운 날에

Sam1212 2015. 1. 14. 13:46

 

 

          할머니의 복주머니:내가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면 주머니 안에서 모아놓셨던 돈을 손에 쥐어주셨다. 

                 아직도 주머니 안에 나에게 줄려고 모아둔 돈들이 남아있다.

 

 

 

손이 시린 날에

 

 

사랑이란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를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Harry Harlow)는 붉은 털 원숭이 실험을 통해서 밝혀냈다. 애정의 형성은 어미가 새끼에게 주는 먹이나 보상에 있지 않고 새끼에게 제공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스킨십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나는 처음 이 글을 읽고 놀랐으며 공감했다. 사랑이란 감정의  형성은 피부 촉감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그 애정의 깊이는 기억으로 뇌 속에 집적된 양에 따라 강도를 더 한다. 신이 주신 이 신비의 정신적 에너지는 그 개체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분출한다.

 

몇일 전 소한이었다. 소한 대한 하는 절기는 요즘은 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고 달력 속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을 뿐이다. 오늘처럼 추운 날이면 할머니는 소한 추위 한다고 말씀하셨다. 손이 시려운 날이면 할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날 밖에서 놀다 방에 들어오면 할머니께선 내 손을 잡아채어 "손발이 꽁꽁 얼었네, 아주 고드름이 되었구나" 하시면서 여긴 쩔쩔 끓는다며 나를 방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 밑으로 끌어당긴다. 내가 방바닥이 별로 따뜻하지 않다고 불만의 목소리로 투덜대면 다시 언 내손을  할머니의 따뜻한 종아리에 대고 손과발을 녹여 주시 곤 했다. 나는 어린 시절 많은 시간들을 할머니와 함께 했다. 내 잠자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던 할머니의 손길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몇일 있으면 할머니 기일이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앞에 놓고 동생과 우리 가족이 함께 조촐한 추도식을 가진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영정사진 속의 60대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들어가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한 많은 기억들이 가끔씩 튀어나와 애정의 불씨를 살려낸다.

 

 

할머니는 우리 집안에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이셨다. 해방 후 어렵게 38선을 넘어 월남하면서도 예수님 사진을 정성껏 가지고 내려오셨다. 예수님 사진을 항상 안방 벽 중앙에 걸어두셨다.

 

할머니는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치셨다. 성경을 읽으실 때면 글자를 한자 씩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읽으시기에 읽는 속도가 우리 3/1정도다. 그러나 한 번 책을 잡으시면 3시간 4시간을 한 자리에서 꼼작 않고 읽으셨다. 성경책 속의 이야기를 어린 손자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 해주시지만 나는 별 재미가 없었다. "할머니 그 애기는 지난번에 들은 얘기에요"라고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끼셨으나 작은 소리로 말하면 잘 못 알아들으셨다.

 

할머니와 한 방에서 자다 새벽에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떠보면 할머니는 조용히 혼자 일어나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계셨다. 우리는 추도식 때 마다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를  부른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서 어머니를 할머니로 바꾸면 내 어렸을 적 이야기다.

올 겨울같이 추운 날이면 할머니의 기억은 내  저장칩에서  튀어나와 따뜻한 사랑의 불씨를 지피고 들어간다.

                                                                                                     (2015.1.13 할머니 기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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