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아버지 가족사진)
빛바랜 사진을 꺼내보며
지난 연말 한 모임의 만찬 자리에서 가장 연장이신 한 분이 "요즘은 무슨 일을 시작 하게 되면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분의 말씀인즉 나이가 들고 보니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하거나 ,어떤 일의 의사결정을 내릴 때 마다 자신의 사후에 어떤 평가와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는 의미다.
자신의 죽음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내리는 결정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진솔하고 신중하고 이성적인 판단일 것이다.
젊은 시절 혈기왕성하고 의기충천 할 때는 이런 신중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권좌에 앉아 명성과 부귀와 권력에 취하면 죽음이란 그림자가 발밑에 함께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 인간들의 모습이다.
삶이란 여행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죽음이란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하고 멀리하게 만든다.
여름철 밝은 낮에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듯이 혈기 왕성한 젊은이에게 죽음이란 그림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매일 매일 발밑의 그림자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야말로 재미없는 무겁고 어두운 삶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한다. 봄 여름철에는 그림자가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가을철이 다가와 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해야 그림자의 존재를 알게된다. 해가 서산 마루에 걸치게 되면 자신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있음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죽음을 삶의 당연한 동반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시기도 젊음의 혈기가 다 빠져나가고 자신의 머리에 돋아난 흰 머리카락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는 시기와 같이 한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아름다운 삶 가치있는 삶은 죽음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죽음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빛을 잃는다.
아름다운 삶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최대의 적이고 방해물은 죽음의 존재를 잊는 일이다. 영원한 삶을 누릴 것 같은 망각에 빠질 때 불행의 씨앗은 잉태된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승리에 도취하고 권력과 부귀에 취하면 마음이 흐려져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우를 경계하는 외침이다.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개선장군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민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시내를 행진한다, 이 때 장군은 노예 한 명을 자신의 뒤에 세우고 '메멘토모리'를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한다.
장군이여 당신도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여 세상이 만들어내는 환호와 쾌락에 취해 차가운 이성의 판단력이 흐려지지 마소서!
현대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도시인들에게도 가끔은 '메멘토모리'의 외침이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지위나 부의 권좌에 앉아있지 않아도 필요하다. 로마의 장수가 아니기에 노예를 시킬 수 없다. 돈이 많지 않아 별도의 인물을 고용할 수 없다면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철지난 묵은 앨범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내본다. 빛 비랜 사진 속에는 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남겨주신 분들이 있다. 나의 안전한 성장과 성공을 기대하며 사랑과 헌신을 아낌없이 내주신 분들이다. 지금은 사진 속 의 한 분만을 만나뵐 수 있다. 그 분들이 거기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메멘토모리'의 속삭임을 듣는다.
(2012년 1월 30일 빛 바랜 사진을 꺼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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