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엄마의 일기

Sam1212 2011. 12. 26. 13:30

 

엄마의 일기

 소년 시절 우연히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남의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볼 때  그 두근거림은 마치 사춘기 소년이 문틈으로 벌거벗은 여인의 나신裸身을 훔쳐보는 느낌과 같다.

 

 이어지는 일기를 계속 읽어야할지 그만 덮고 들쳐보았다는 흔적을 남기지 말고 나가야할지 망설여진다.하지만 결국 다 읽고나서야  덮게 된다.

 

 요즘은 학생이나 성인 모두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아마도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홈피나 블로그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남에게 보여 진다는 전제로 쓰는 글이다.

 

 사람이 성장하면 옷으로 치부를 가린다. 걸치고 있던 옷을 전부 벗어버리면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기는 생각의 나신이다. 사람의 정신 세계도 타인에게 들어내 보이기 싫은 부분이 있다. 일기는 자신과의 대화다. 자신과의 대화는 항상 진솔하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전제로 쓴 글이기에  위선이나 가식이 끼어들 리가 없다. 따라서 내면 깊숙한 자기만의 비밀스런 이야기나 생각들이 종종 기록되어 지곤 한다.

 

 어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시는 아버지 집에 갔다. 우연히 장롱 서랍 밑바닥에 보관돼있던 엄마의 일기를 발견하고 읽게되었다. 대학노트에 일기 형식으로 쓴 글들이다. 노트에서 분리하여 두꺼운 파일에 편지와 그림들과 함께 철해져 있었다. 엄마의 일기를 읽어 내려가며 떨리는 가슴은 내 나이 60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사춘기 소년의 마음과 다를 게 없었다.

 

 글에 나타난 가장 빠른 날자가 1964년이고 주로 66년에서 69년에 쓴 글들이다. 엄마가 30대 중반 나이에 쓰신 글이다. 당시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생 시절이다. 엄마가 남긴 글 속엔 농촌으로 시집와 시부모를 모시며 살면서 격어야 하는 어려움, 아버지와 떨어져 살면서 지내는 외로움, 위장병으로 고생하시며 암으로 판정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들이 글귀마다 절절이 배어 있다. 글 중에 가장 오래된 1964년이라 적혀있는 한 편의 시는 내가 초등학교시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육필로 된 글은  활자로 된 글보다  읽을 때 전해져오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가끔은 맞춤법도 틀리고 가필한 것도 당시의 글쓴이의 마음을 좀 더 생동감 있게 전한다. 마음속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망설이고 떨렸던 감정들이 읽는 사람의 가슴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당신의 떨림이 나의 떨림이 되어 전해온다. 어제 밤 엄마의 특유의 반듯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들을 혼자 읽어 내려가며 55년 전 젊었던 엄마와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벌써 16년이 지났다. 젊어서부터 지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신 엄마는 당신의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신변 정리를 차분히 하셨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유품들은 며느리들을 집으로 불러서 물건의 내력을 말해주고 나누어주셨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전화로 나를  집으로 부르셨다. 거실에 놓여있던 그림이 그려진 백자 항아리를 내어주시며 가져가라하셨다. 꽤 아끼셨던 물건이나 나는 현대 작품으로 값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골동품을 좋아하는 내가 잘 간수 할 줄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워낙 생각이 깊으신 분이라 작은 물건 하나를 주면서도 아마도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했을 걸로 나는 알고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의 신변을 꼼꼼히 정리하신 엄마가 어째서 남에게 보이기 주저했을 일기장을 치우지 않고 가셨는지 알 수 없다. 우연히 남기신 글들을 내가 훔쳐본 것인가? 내가 이 글을 읽을 것을 예상하셨을까?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언젠가 누군가 당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며 남기고 가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12월 26일 엄마의 일기를 읽고서)

 

 

 

 

 

 

하아얀 복음자리

"따르릉___________"

"어머님이세요? 저에요 00에요 빨리 오셔서 저희들 사는 것 보셔야죠."

몇 일 전부터 새 아이가 어리광 섞인 말로 졸라댄다.

언제나 활짝 개인 가을 날씨처럼 밝은 말소리가 내 마음을 즐겁게 하고 사랑스럽다.

아직 며느리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이기에 좀처럼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오늘은 열일을 제치고 잠간 다녀왔다.

저녁 내내 머릿속은 그 애들 집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피곤도하고 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다.

잠은 안 오고 눈만 감으면 머리맡에선 아름다운 요정들이 잔치나 벌어진 듯 바쁘게 오가며 소근 거린다.

"해 뜨는 집 이었어요"

"해 뜨는 집이라뇨?"

"글쎄요,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군요. 집안 구석구석 햇님이 웃고 있었어요."

"새 댁도 곱던가요?"

"그러믄요, 너무너무 곱고 귀여웠어요."

"무슨 옷을 입고 있던가요?"

"핑크색 꽃무늬 드레스였어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번 안아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못했어요."

"왜 못했나요?"

"벌써 나보다 먼저 곱다란 나비 한 마리가 꽃 아씨 허리를 뒤에서 꼬옥 껴안고 있지 뭐에요."

"그랬군요."

"말도 해봤나요?"

"그러믄요, 꽃 아씨가 말해 줬어요. 이 드레스는 어머님이 주신 돈으로 그이와 백화점에 갔을 때 산거에요. 참 예쁘죠?" 하구요.

"그랬군요."

요정들의 속삭임은 그칠 줄을 모르고 분주하기 만 하다.

그 중엔 나도 요정이 되어서 끼어있었고 물론 새댁도 요정이다.

나는 꿈 아닌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떠 본다. 어둠침침한 방안에 밝고 화사한 미소가 내 입가에 번져 감을 느낀다.

저 사랑스런 복음자리 언제나 즐거운 음악과 기쁨의 웃음만이 넘쳐 흐르리--.

"오---, 하나님 저-- 하이얀 복음자리에 언제나 화평만이 흐르게 하소서----!"

이제 낡고 묶은 둥지는 서서히

아주 조용히 부서져 나가야 하리---!.

                                             첫 며느리를 맞은 시어머니 황정옥 씀

 

 

 

 가끔 가끔 코에 스며드는 악취는 한없는 불안과 공포를 가져온다.

자궁암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님을 연상케 할뿐더러 여전히 자꾸 나도 어머님과 같이 될 것만 같은....!

이런 때면 또 떨어진지 2개월이 되도록 아무런 소식조차 없는 그이가 원망스러워진다.

원망을 하다보면 한없이 서글퍼지고.....!

불안과 공포로 뒤얽힌 신경은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져 가고 있다.

(암이냐? 아니냐?)

아니다. 결코 아닐 것이다. 하면서도 어쩐지 자꾸 나 자신 암 환자로만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1964년 X월 X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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