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기념물을 선물하다
기념물이나 기념품이란 어떤 물건이나 상징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시대 군대 생활을 한 이들은 기념물을 만들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다.
전방의 병사들은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탄피를 잘라 반지를 만들어 끼고 나가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조금 여유있는 병사들은 나무 조각품으로 제대 기념물을 만들기도한다.
내가 근무하던 철책선 동부 산악지대 장교들 사이에선 피나무 바둑판을 만들어 기념물로 가지고 가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이런 마음은 2~3년간 첩첩산중에서 문명 세계와 완전 단절된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들게된다.
군인 아니면 감히 와볼 수 없는곳, 전역 후에도 다시와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추억 공간과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자신만의 상징물을 가지고 싶은 심정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런 생각은 제대 말년이되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조금 여유로와질 때 찾아온다.
내가 전역을 맞이한 초소는 당시 7-5P로 불리던 곳으로 금강산 연봉을 마주하는 산능선 위의 지하 벙커였다.
이곳에 76년 6월에 대대 본부에서 신고를 마치고 철책선 순찰로를 4시간 넘게 걸어 자정이 다되어서야 도착했다.
군 생활 2년이지나 78년 6월에 다시 첫 부임했던 7-5p에서 전역을 맞게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역 날자를 보름 쯤 앞두었을 때 초소장실 방모퉁이 서있는 총거치대의 새하얀 목질의 피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초소 내부의 사소한 작업에 필요한 목재는 피나무를 잘라 각목이나 판재를 만들어 사용했다.
피나무는 목질이 연해 톱 낫 손칼 만으로도 쉽게 자르고 깍고 다듬기 쉬운 나무다.
피나무 총 거치대를 30cm정도 잘라냈다. 내가 직접 전역 기념물을 만들어 보기로했다.
두께7cm 길이30cm 의 각목이다. 나무 싸이즈에 맞는 단순하고 쉬운 형상을 구상해야 했다.
간성 예비대 BOQ에서 선배(부산 수산대)한 분이 가지고 자랑하던 나부상이 생각났다.
임산부상을 구상했다. 처녀가 임신한 모습이 부끄러워 얼굴을 두손으로 가린 모습이다. 고민했던 조각하기 어려운 두손 처리도 그런대로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었다. 1주일 정도 걸렸다. 내가 만든 목조각 첫 작품이다. 아마추어의 첫 작품치곤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임부상은 우리집 거실 진열대 위에 항상 서있었다.
우리집 애들이 조금 흉칙하고 민망해 치우기를 바랬지만, 나에게는 바라볼 때마다 군생활의 추억을 불러깨우는 물건이었다.
우리 전우회를 이야기할 때마다 동기생들이 부러워한다. 전역후 40년이 넘도록 소대단위로 모임을 지속하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 2019년 하반기 소대 전우회를 하면서 모임을위해 항상 수고하는 총무에게 작은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이모임을 실질적으로 만들고 이끌고 있는총무 강필중 대원이다.
사실 나는 전우회 모임에 처음 나와서 강필중 대원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와 함께 한 군생활이 너무 짧기때문이다. 강필중 대원에게 물어보니 전입신고를 분명히 나에게 했다고 말했다.
카톡방에 올라온 전역을 앞두고 찍은 단체 사진을 보니 신참병인 그가 분명히 있었다.
계산해보니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7-5P에 올라간 것이 6월초이니 길어야 20정도 함께 생활한 셈이다.
강필중 대원에게 내가 만든 전역 기념물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나의 전역 기념물이 그의 입대 기념물이 된다. 분명히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새로 입대하는 신병을 위해 전역하는 소대장이 기념물을 제작한 셈이다.
바로 그 신참병이 훌륭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먼저 나간 소대장과 전우들을 위해 전우회를 만들었다.
지금 모두 흰머리 날리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옛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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