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아름다운 화장실

Sam1212 2020. 2. 18. 18:51

아름다운 화장실

 

어제 SRT 열차를 타고 지방에 다녀왔다. 열차 내 화장실을 이용하다 난감해한 일이 있었다. 화장실 앞에서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당겼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몇차례 시도에도 문이 안열린다. 안에 사람이 들어있어 문을 잠근 줄로 알고  노크를 해보았으나 반응이 없다. 마침 젊은이가 옆에 있어 문이 안 열린다고 불평하자, 젊은이가 문 옆 커다란 버튼을 누르니 스르르 열려 일을 보고 나왔다. 화장실 문 앞에서 다시 마주친 젊은이 앞에서 완전 시골사람 된 느낌이 들었다.

 

열차 화장실은 비행기의 기내 화장실보다 넓고 편리용품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열차에서 내리면서 다시 화장실 손잡이를 쳐다보니 손잡이 아래 문 열고 닫는 안내문도 적혀있다.

 

몇 년 전 여름에 한강변을 걷다가 공중화장실에 들른 적이 있다. 화장실에 들어서니 시원하게 에어컨이 작동되고 부드러운 음악도 흘러나와 기분 좋게 일을 보고 나왔다.

 

한 세대를 살아오면서 우리의 생활 문화 중에서 가장 큰 변화 한 가지를 선정하라면 화장실 문화를 꼽겠다. 바람직한 변화이며 자랑할 만 한 모습이다. 요즘 몇일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유투브를  여러편 시청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과 탈북정착인들이 올린 유투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서울의 모습에 편리하고 청결한 화장실이 모두 들어  있다. 변화된 우리의 화장실 문화가 요즘처럼 국제화 된 사회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여주는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 대 초 중국 출장을 자주 나갔다. 지방 도시의 꽤 큰 오피스빌딩 사무실에서 상담중 화장실에 갔었다. 명함을 건네고 인사한 분이 화장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난감했던 적이 있다. 화장실 문이 모두 가슴 높이여서 용변 보는 모습이 다 노출되는 형태였다.

인도 여행 중엔 더 난감한 광경을 마주했다. 도시든 시골 마을이든 엉덩이를 노출한 상태로 대중이 보이는 곳에서 용변을 보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런 생활 문화는 그 나라의 오랜 관습으로 하나의 잣대로 폄하할 필요는 없으나,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는 문화의 품격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가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은 도시가 과밀화 되어  주거 문화가 아파트 생활 문화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학창시절이 끝나갈 시기에 서울의 한강변의 반포나 이태원에 대단위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당시  서울 시민의 대부분은 단독 주택에서 생활했다.

 

당시 우리 집도 대문 앞에 1평정도 되는 독립된 화장실 건물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70년대 초까지 청소원이 똥통을 짊어지고 커다란 자루달린 바가지를 사용해 퍼내 짊어지고 날랐다. 동네 청소차가 들어오면 냄새가 진동했던 기억이 있다. 70년대 말 들어와선 조금 선진화되어 차량에 연결된 긴 호스를 사용해 화장실을 치워주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민의 주거 생활이 대부분이 아파트나 빌라로 바뀌고 사무실이나 공중 화장실 현대화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각 기업 단체 지자체별로 화장실 고급화에 많은 투자도 이루어졌다. 이제는 전국 어디를 방문해도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만나게 되었으니 즐거운 변화다.

 

이와 더불어 아름다운 화장실 선정해 지면에 공개하는 멋진 운동도 일어났다. 몇 년 전 잡지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로 선정된 기사를 본적이 있다휴게소 화장실을 들릴 때 마다 무의식적으로 혼자서 평가해보는 습관이 있다. 이제는 전국 어디에 가도 지역 특색을 살린 디자인과 훌륭한 시설이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아름다운 화장실하면 떠오르는 추억의 화장실이 생각난다. 76~78년 동부전선 금강산을 마주한 까치봉 아래서 GOP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했다. 산 능선위에 20평 남짓 지하 벙커에서 소대원 30여명이 생활 하는 초소였다. 화장실은 초소에서 20미터쯤 떨어진 능선 후 사면에 위치했다.

 

완전 자연 친화적 화장실이다. 모두 4칸으로 1칸은 소대장용이다. 땅 바닥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발판을 얹었다. 벽은 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치고 지붕은 피나무 껍질을 얹었다. 그나마 소대장 전용은 나무를 촘촘하게 엮어 밖에서 잘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성의를 보였다 바람이 술술 들어오고 비가 오면 지붕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7,8월 여름에 화장실에 가 앉으면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 경관이 장관이다.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내달리는 푸른 산 능선, 푸른 동해 바다는 멀리 공제선 넘어 좌측 원산 앞바다에서 우측 포항 앞바다까지 둥근 반원을 그리며 펼쳐진다.

 

여름밤에 화장실에 앉아 문을 열어 제치고 있으면 더욱 화려한 바다풍경이 펼쳐진다. 오징어잡이 배들이 수십 척 떠서 집어등을 밝히고 어로작업을 하는 광경이다. 오징어잡이 배들이 많이 뜰 때면 반대편 산 넘어 철책선 에서도 밤하늘을 훤하게 밝혔었다.

 

내 젊은 시절 산 속에서 험난했던 군 생활은 하루에 한번 화장실에 앉아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는 기쁨으로 큰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20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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