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올라오셨다. 오랜만에 상경하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시내 구경을 나갔었다.
남대문에서 광화문 까지 돌아보았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나라 경제가 잠에서 깨어나 고도 성장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 시내 곳 곳에 지하도와 육교 같은 건설 사업이 벌어지고 20층이 넘는 고층 빌딩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 할 때였다.
광화문 에 도착해 중앙청 우측에 신축된 정부종합청사를 둘러보았다. 당시 부근에서 가장 높은 20층을 훨씬 넘긴 현대식 빌딩으로 아직 입주는 안된 상태였다.
청사빌딩 뒷편에서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다가가니 할아버지가 앞에 있는 기와집을 바라보며 조금은 감격한 분위기로 기와집을 가리키면서 "저 집이 내 학교다닐 때 하숙집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청사 뒷편에는 아직도 개발 되지 않은 단층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전형적인 한옥으로 솟을대문을 통해 마당을거쳐 안채로 들어가고 대문과 연한 사랑채에는 방이 여러개 였다.
할아버지는 50년 만에 옛 하숙집을 마주하고 회상에 잠기는 분위기였다. 당시는 동네서 꽤 큰 집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동네 이름이 도렴동이라 말하고 휘문학교까지 걸어다녔다고 말해주셨다. 당시 도렴동이란 동네 이름도 처음 들어보았고 할아버지께서 서울에서 휘문고등학교를 다니셨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되었다.
할아버지는 생활하시면서 학창시절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셨다. 공주에서 중학교 다닐 때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사감 선생이 무척 엄했다는 이야기와 동경 유학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때 친구들이 다 죽었는데 하숙집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직접 해주신 적이 있다.
서울서 휘문 학교에 다니 일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마 할머니도 아버지나 고모들도 할아버지가 직접 말 한 적이 없어 나만 알고있던 사실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첫해 1978년에 돌아가셨다. 오늘이 할아버지 기일이다. 동생들 함께 우리 집에 모여 간단한 추도식을 가질 예정이다. 오늘 헤아려보니 할아버지와 광화문에서 하숙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50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당시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어 있다.
오늘 동생들을 만나면 할아버지가 휘문학교에 다니셨다는 이야기와 하숙집을 함께 바라보았던 일을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2020.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