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친구

Sam1212 2021. 2. 28. 17:06

내 친구 김만헌

 

후보생 시절 훈육관으로 부터 장교는 국제 신사(International Gentlman)라는 말을 들었다.

국제 신사란 행동과 언어 매너에 있어 국제적으로 교양과 품위를 인정해주는 멋진 남성이라는 해석으로 장교는 신사라는 명예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ROTC 단복을 입고 나서 부터 임관 후 짧은 군 생활과  전역 후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나의 행동거지를 통제하는 무언의 굴레가 되고 있다.

 

짧은 군 생활 이었지만 ROTC 가  물려준 정신적  유산이라면 '신사'라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군생활 하는 동안에는 물론이고 직 장 생활을 하면서도 장교 출신을 바라볼 때마다 그가 신사인가 아닌가의 잣대로 평가를 한다.  소대장 생활을 하면서 동기생 한 명이 이 기준에서 벗어나 있어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우리 동기생들은 다른 출신들보다 워낙 많은 동기들이 임관하기에 멋진 신사도 많지만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띤다.

 

김만헌 동기는 내가 만난 많은  동기생 중에서 젠틀맨쉽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친구다.  

키는 좀 크지만 언변이나 용모가 특별히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항상 정제된 언어와 절제된 행동으로 신사의기품과 품위가 느껴지게한다.  말고 글에도 항상 품위와 향기가 스며있다.

 

그는 대한민국 최정예부대 특전사 출신으로 대기업의 임원 출신이다. 동기들이 군 복무시절의 무용담을 신나게 이야기할 때에도 기업의 주요 직책에서 파워맨으로 일했던 이야기를 자랑으로 내세울 때에도 김만헌이 특전사 출신이나 파워맨 시절의 경험을  자랑삼아 말하는 적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특전사 훈련이나 복무중 고문관 소리를 들었다는 소리도 기업체 근무시 별볼일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김만헌은 내가 만난 많은 동기들 중에서 과거의 사슬에서 얽매이지 안고 신사의 품위를 지키며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모범적인 동기다.

 

***우리 동기 정근창 ***

 

근창 동기와의 만남은 그가  부루나이에 나가 있을 적에 SNS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이어서 국내 생활보다 해외 생활이 더 많아 보인다. 부루나이에서 귀국해 국내에 일년 정도 머물다 다시 아프리카 탄자니아 건설  현장으로 나갔다. 많은 동기들이 지공도사가 된 후 손자 손녀 돌보면서 이마에 주름살 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건설 현장을 누비는 정근창 동기의 능력과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일찍 기업의 현장에서 밀려난 내 눈으로 바라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오래 전 그가 나에게 자작시 한편을 보내주었다. 엔지니어 출신이 썻다고 보기엔 너무 순수하고 감성을 울리는 한 편 이었다. 가끔 정근창 동기가 보내준 시를 읽어보며 먼저 가신 할머니와 어머니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감상에 빠지곤 한다.나도 詩作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 몇년 전부터 시도해보고 있으나 동복 유격장에서 도피 및 탈출 훈련시 섬진강 건너  지리산 오르기만큼 힘들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원초적 사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기리는 시를 남겼다.  정근창 동기가 보내준 '울 엄니'는내가 만난 최고의 思母曲이다. l누가  언제 읽어도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울엄니'는 머리가 히끗히끗한 나이의 아들이 허리 굽은 어머니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읽으면 누구라도 눈물이 나온다.

 

울 엄니

 

엄니를 생각하면

웬지 가슴이 아려온다

 

보리고개 높아가던 왜정 시절

스므살도 못채우고 장손 집에 시집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호미들고 밭을 매어도

강냉이죽도 배불리 못 먹으신

울엄니

 

사랑방에 모인 남정네도

바닥에 가라앉은 밥풀떼기 바라보며

갈증도 없으면서 목이 마른 채

그많은 숭늉을 번갈아 마셨거니

그네들이 물린 밥상 들고

부엌에서 수저 들던 아낙들

 

엄니를 생각하면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진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자그마한 몸

영연생에 이삼년을 터울로

여덟놈이 빨아대던 젓가슴은

쭈그러들고

부실한 잇몸에 틀니 몇개 남아

이제는 뼈마저 쪼그라들어

바람불면 그냥 날아갈 것 같다

 

이제는 아무일도 하지말라 해도

놀 줄 모르는 손이 말을 안들어

오늘도 고연시리

덜 익은 단호박을

열개도 넘게 따 놓고는

며느한테 혼나고 있다

 

오랜만에 보아도

아들 삼형제는 알다가 모르다가

어쩌다가 알아보면

큰 상이라도 받은 양

떠들며 좋아하는 손자손녀들

오늘도 네째딸보고 둘째냐고 물으신다

 

엄니를 생각만하면

고연히 눈가가 젖어온다

 

올해 미수 팔팔 생일에

아들을 따라 주님을 영접하셨다

한 마디씩 힘겹게 따라하셨다

 

어디서 들었는지

교회도 돈내야 좋아한다며

돈 없이 교회는 안 가겠단다

그래도 기도문 하나 알려드렸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나 대신 돌아가셔서 감사합니다

외우고 또 외우시더니

이제는 혼자서도 하시겠단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내 대신 돌아가셔서 감사합니다

이러고 절하는거여?

아녀요 엄니 절은 필요없어요

 

엄니 손잡고

교회까지 산책을 했다

일 키로도 안되는 곳이지만

생전 처음이시란다

 

지나가는 빗방울을 맞으며

돌아오는 길에

기도문을 복습하셨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나대신 돌아가셔서 감사합니다

주문처럼 외우시고 또 물으신다

이러고 절하능겨?

아녀요 엄니 절은 안 하는거요

 

누군가 임종 순간에

발가락 한번 움직였다고

울 아버지 구원받았다고 기뻐했다는데

울 엄니는

입으로 시인하셨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이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내려 놓으실 때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신

나사로의 행복만은 차지하셨다.

(2008.7.15 공주에서 정근창)

 

 

"장모님이 키큰 맏사위

발 나오면 안된다며

크게 만들어준 솜 이불

40년전 들어온 그대로

이불장에 잠자고 있네"

(조정빈 동기/목화 솜이불 중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버지의 피묻은 틀이를

가져가려는 자식이 없어

무슨 전염병 만지듯

흰장갑 낀 손으로  쓰레기 통에 버렸다"

(최영미 시인/ 죽음은 연습할 수 없다 중 일부)

 

 

**내친구 정용성**

 

우리 둘이 마지막으로 배치 받은 부대는 88여단 1대대 였다. 155마일 휴전선 우측 끝단을 지키는 GOP 철책선 경계부대다. 동기생 2500여명 중 가장 오지에 배치받은 셈이다.

군 생활하면서 동기생은 큰 힘이된다. 우리 둘은 철책 근무시에는 서로 떨어져있어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으나 6개월마다 교대되는 예비대 생활 동안에는 자주 만나면서 정보를 교환하며 답답하고 험한 일상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당시 초급 장교들의 일상 탈출은 휴일에 영내를 벗어나 술집에 들러 한 잔하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우리 둘은 부대 주둔지 간성을 벗어나 주로 택시로 속초 시내로 장거리 원정에 나섰다.

속초항에 가면 오징어 횟집이 많다. 오징어 한치회는 값도 저렴하고 소주 한잔 걸치는데 최고의 안주였다. 당시 자주 들렀던 집이 팔도강산 만고강산이란 상호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월급 받아 돈이 좀 있을 때는 색시집에도 들리곤했다.

 

우리 둘이 부대 주변과 속초의 술집에 익숙해지고 좀더 강한 자극이 생각날 때에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간성 읍내에  군수나 장군들이  들러 이용한다는고급 술집이 있다는 정보였다. 용성이와 함께 공략해보기로 했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의 기백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한잔 멋있게 하자고 약속했다. 지갑의 돈을 모두 비운뒤 무일푼 상태로 공략하기로 했다.

역시 그동안 많이 이용했던 길가의 술집과는 격이 조금 달랐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한옥에  보료가 깔린방에 안내되어 상을 받았다. 상차림도 푸짐했다. 한복을 입은 여성이 정성스럽게 술잔을 따라주었다. 우리둘은 품위를 지키며 멋지게 만찬을 마쳤다. 끝내고 일어서면서 대한민국 육군 장교를 강조하며 오늘 돈 가진게 없어 반지 두개를 맏긴다며 귀한 것이니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말하고 ROTC링을 뽑아 건네주고 나왔다.

 

용성이는 등치도 좀 있지만 성깔도 좀 있었다. 우리 중대에 15기 후배가 들어왔다. 나는 사랑스런 후배가 군 생활을 잘 할수 있도록 그간 축적한 노하우를 정성 스럽게 전달해주려고 노력했다. 전역한 13기 선배가 중대장한테 기선을 잡혀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군에서 일단 등치가 크고 운동을 잘 하든지 이따금 성깔도 내보여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13기 선배는 키도 작고 왜소했었다. 새로 온 15기는 키도 크고 등치도 좋아 그런 염려는 없어보였으나 조금 이기적이고 사교성은 없어보였다.

당시 중대장은 3사관학교 2기 출신들이었는데 훈련을 독하게 받아서 그런지 성격이 불같은 이들이 많았다. 우리 중대장은 소대장들에게 열받으면 완전군장으로 중대본부 집합이란 명을 가끔 발했다.

 

한번은 중대장 집합 명령에 중대본부에 올라갔더니 신참 15기 후배가 완전군장에 식판까지 달고 도착해 있었다.

뒤로 불러서 장교가 식판 달고 다니는 장교가 어디 있느냐고 놀려주고 중대장이 소대장 군기잡는다고 완전군장 본부  올라오라고 고함치면 절대로 군장메고 올라가지마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많은 노하우를 정성스레 전수해 주었는데 6개월쯤 지나니 선배를 몰라보기 시작했다. 용성이 함께 속초 외출 하려 당직 완장을 벗어주면 거부를 한다. 그때 마다 3사 출신 소위가 선배님들 다녀오시라며 대신 서주곤 했다. 사달은 이때 일어났다. 속초에 외출 나갔다온 15기 후배가 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났다. 사연을 물으니 용성이하고 둘이 외출나가 속초 기원에서 내기 바둑을 두다가 물려주니 안되니 시비하다 용성이가 썬그라스를 끼고있던 15기 후배의 안면 눈탱이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알이 깨져 안구를 찔렀으면 큰 사고가 될 수도 있었다. 녀석이 하는말 "이제 선배고 뭐고 없습니다." 라고 말하기에 말조심해라 선배없는 ROTC가 어디있냐?"라고 말해주었다. 이 맘에 안드는 15기 후배 녀석을 해외 출장 다녀오다 공항 로비에서 만났다. 아직도 선배들에 대한 감정이 덜 풀린 표정이었다. 뭐하냐고 물으니 OO대학 교수라고 말했다.

 

군 전역 후 우리는 같은 그룹사에 들어갔다. 동네도 한 동네 살아 우리집에도 몇번 방문 했던 기억이 있다. 용성이 부친은 우리동네  교회의 목사님이셨다. 용성이 와이프도 결혼하기 전 몇 번 보았던 사람이다. 용성이는 입사 동기들 모임에 한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 해외 지사에 많이 나가있어 자주 못본 이유도 있지만 함께한 직장 동기와 출신학교 동기를 만날 때마다 정용성의 행방을 물어보는데  아직껏 아는 사람이 없다. 용성이의 조금 괴팍한 성격 때문이란 생각이 들기도한다.

더 늙기 전에 용성이와 만나 옛날 얘기 하면서 꼭  술 한잔 해야한다.

 

 

 

**내 친구 해영**

 

우린 보병학교에서 같은 구대 같은 내무반 이었다. 양쪽 침상에 나뉘어 6명 정도 잠을 잤던 것으로 기억되니 12명 정도가 2개월 정도 침식을 함께 했던 걸로 기억된다. 해영이의 모습은 들판에 서있는 허수아비 같았다. 훌쭉한 키에 깡마른 몸에 군복을 입은 모습이 꼭 허수아비가 연상되었다. 대학시절   ROTC에 지원하는 친구들은 체력에 조금 자신 있거나 장교가 되어 자신의 리더쉽을 배양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거나 뭔가 좀 목적을 가지고 지원한다. 내가 바라본 해영의 모습은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눈에 띠는 일은 술을 엄청 즐긴다는 사실이다. 틈만나면 화학학교 PX에들러 술 한잔 하고 왔다고 전했다. 그래도 비쩍 마르고 그 껄렁한 몸으로 유격훈련은 잘 견뎌냈다. 유격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 속 해영의 모습은 진짜 허수아비  모습이다.

 

보병학교 졸업을 몇 일 앞두고 커다란 콘세트 건물에 중대가  집합 교육을 받는 자리였다. 단상에 교관 한명이 나와 종이 한장을 꺼내서 10여명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이때 해영이의 이름이 불렸다. 갑작스런 명단 호명에 모여있던 동기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수근댔다. 그중에 누가 "지금 호명한 애들이 특전사 차출 명단이래"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해영이 억굴을 순간적으로 주시했다. 해영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면서 완전 넋이 나간 상태였다. 나도 걱정스러웠다. 유격훈련 까지는 그런대로 잘 받아 넘겼는데 그 힘들다는 공수부대 훈련을 또다시 받으러 들어갈 생각을하니 걱정이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1분도 안되서  해소되었다. 그 명단은 화학학교 PX 외상값 있는 동기생들의 명단으로 졸업 전 빨리 완납하라는 전달이었다.

 

보병학교 졸업후 나는 동부전선 해영은 서부 전선으로 배치를 받았다. 군 복무 중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전역후에 직장에 들어가서도 연락이 끊어지지 않고 몇번 만났다. 해영은 독문학을 전공했다. 심성이 워낙 순수하고 착해 나하곤 쉽게 잘 어울리는 친구가 되었다. 

 

직장 생활에 굴곡이 심해지고 지방 생활로 이어지면서 10년 넘게  해영과 연결이 끊어진 채로 지냈다. IMF 직후 직장인들의 혹한 시절에 해영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찾아보고 싶었다. 입사 초기 IT업종 있었기에 그 업계가 호황이기에  기업의 전산실장이나 IT전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컴퓨터에 해영 이름을 쳐 넣고 단서를 찾아내고 추적을 통해 그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오랜만에 해영을 다시 만났다. 나도 IMF의 험한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데 해영이도  험준한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좋은 직장 나와서 개인 회사를 차려 시작한 사업이 어렵게 꼬여 엄청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해영의 애주 실력은 여전했다. 오랜만에 둘이 술자리를 갖게되니 기뻣다. 해영의 애주 실력은 여전했다. 내가 건강상 술을 멀리 해 함께 취하도록 마실 수 없는게 아쉬움이다.  내가 걷기 운동을 좋아하는데 해영도 걷기를 좋아해 시간 내서 서울 근교의 걷기 코스를 여러번 함께 했다. 해영 와이프와 우리 집사람 함께 몇 번의 만남의 장도 만들었다. 해영 와이프 앞에서 해영이 옛날부터술 좋아해 보병학교 때 특전사 차출 명단 발표 인줄 알고 얼굴 하얗게 변했었다는 이야기와 지금은 좀 살이 붙었지만 비쩍 말라 군복 입은 모습이 완전 허수아비 같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말해줬다.  우리 집사람도 해영이가 술 좋아하는 줄 잘 알고 있다. 와이프는 집에 술병있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어쩌다 선물로 집에  술이 들어오면 " 이것 해영씨 갔다 주면 좋겠네" 말한다. 난 그때 마다 술병 들고 해영이 만나러 가는 날이다. 

 

술꾼은 술꾼을 만나야 즐겁다 . 내가 술을 많이 못해 해영이 대작을 못하니 항상 불편하다. 어느날 해영이와 술자리에서 내가 제안을 했다. " 내 친구 중에 너하고 친구하면 딱 좋을 친구가 하나 있는데 소개해 줄테니 함께 만나자" 해영에게 내 친구  한 명을 소개해주었다. 그 친구도 술 엄청 즐긴다. 술만 좋아한다고 친구가 될 수 없다. 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때 공감이 일어난다. 내가 보기에 둘은 완전 공감 짝이 되었다.  몇일 전에도 내가 빠지고 둘이서 함께 만나 술병을 비웠다한다.

(2021.3.6)

 

**우리 동기 한석재**

 

현대인이 도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격렬한 경쟁  환경 속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도시서 생활하며  일상을 꾸리려면  모두에게 환경에 맞게  적합한 변신과 적응이 요구된다. 얼마전 '차도남'이란 신조어를 듣고 알아봤더니  '차가운 도시 남자'  줄임말이라며 자신만만하고 쌀쌀맞고 맞고 세련된 도시 남성이라 설명한다.

 

맞다, 도시는 사람을 차갑게 만든다. 엄청난 경쟁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당연히 영악해져야 한다. 눈알도 빨리 굴려야하고  머리도 빨리 돌아가야한다. 어느 놈이 내 영역을 침범하면 고함쳐 쫓아내고 누가 실수로  내 발을 밟으면 아프다고 고함치고 상대가 나보다 약해 보이면 눈알을 무섭게 부라려야 한다.

 

아무리 착하고 심성 좋은 사람이라도 도시에서 살아 남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차도남으로 기우러져 있다. 거대 도시의 수 많은 사람들이 두뇌에는  최신 스마트 칩을 장착하고 나보다 더 눈알을 빠르게 굴리며 잡아 먹을 것 없나 두리번 거린다. 이 공간에서 살아 남으려면 빨리 변신해야 한다.   변신 재주가  좀 늦어도 주변에 포진해 있는 잘난놈, 똑똑한놈, 돈 많은놈, 끗발 좋은 놈, 말 잘하는놈, 스펙 좋은 놈, 조상 잘 둔 놈, 새끼 잘 둔 놈, 마누라 잘 둔 놈, 이 중 한 곳에는 끼어야 어깨 힘주고  남들 앞에 폼잡을 수 있다.

 

석재 동기를 처음 만났을 때 많이 놀랐다.  이 전쟁터 같은 도시 공간에 아직  때 묻지 않고 순수하고 소박한 심성을 지키며 청정하게 살아가는  동기생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시골에서  하루 종일 농사일 끝내고 상경해 시외버스 정류장에 방금 내린 시골 아저씨같은 인상이었다.

 

석재 동기를 만나면 항상  맘이 푸근하다. 긴장할 필요가 없다. 머리를 안 굴려도 된다. 눈알도 안 굴려도 된다. 석재는 누가 실수로 발을 밟아도 아프다고 고함치거나 눈을 부라리지 않는다. 아마 실수로 그랬겠지 당연히 그렇게 이해한다.  남들이 자신의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석재는 제일 다 끝내고 남의 몫 까지 맡아 일해주고 함께 퇴근 하는  스타일이다. 이 도시 공간에서 타고난 맑은 심성을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동기 한석재를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한석재 장로님 사랑해요!

 

**우리 동기 이춘계**

요즘 가장 핫한 낱말 하나를 고르라면 '백세 시대'다. 꿈만 같았던 인간 수명 백살이 눈 앞에 다가왔다. 실제로 100세를 넘기고도 정상적인 일상 활동을 하며 살아가시는 분들이 매스컴에 소개고 있다. 우리 나이에 백세 시대에 연결되어 따라나오는 문제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하나? 가 대두된다.

 

**우리 동기 김진홍**

 

김진홍 동기가 카톡으로 직접 그린 수채화 그림을 보내왔다. 너무 멋진 봄 풍경이다. 요즘 보내오는 그림들은 아마추어의 취미 수준을 넘어선 모습이다.  너무 잘 그려 그동안  미술 학원이라도 다녔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적 없다 한다. 오직 혼자서 정진해 지금 수준까지 왔다고 한다.

 

그림을 취미로 하는 친구가 옆에 있어 좋다. 진홍 동기의 그림 그리기는 나보다 10년 늦게 시작했으나 요즘은 나보다 더 즐거움에 빠진 모습이다. 내가 걷기 운동을 좋아하는데 진홍이가 나보다 더  걷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알게되었고 쉽게 가까워졌다. 진홍이에게 걷기 하면서 풍광 좋은 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림으로 그려 남겨보라고 권해보았다.

 

진홍 동기가 2018년 동해안 해파랑길을 걸으며 그린 그림들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그림이라 초보 냄새가 조금 풍겼다.  시작이 중요하다. 사실 취미생활 그림이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큰 의미가 없다. 스스로 즐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림을 그려 진홍에게 보내고 진홍 동기도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에게 보내준다. 난 내가 받은 느낌을 전해준다.

 

남 따라 그릴 필요없다. 그저 자기가 바라본 대상의 느낌을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표현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진홍 동기의 그림은 개성 만점이다. 내가 조금  걱정했던 것은 혹시 남들 처럼 더 잘 그려보려고 미술 학원에 다니면 어쩌나 하는 우려 였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스스로 만족하면 그 자체로 100점이다. 그 그림을 타인이 보고 즐거워하면 그 것은 덤으로 얻는 공동의 기쁨이다.  그리고 남들이 모두 좋아하는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창조한 이를 우리는 대가라 부른다.

굳이 대가가 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할 필요도 없다.

공자님도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 말씀하셨다.

그냥 즐기자. 즐기는 자가 최고다.

 

**우리 동기 이상모**

 

 나는 요즘 상모 동기 앞에만 가면 주눅이든다. 한국의 남자는  근로소득세 영수증을 못 받아보는 달이 이어지면 가장으로서 체면이 수직낙하 한다. 난 그 영수증 받아보았던 달이 언제인지 까마득한 기억이다.  이상모 동기는 아직도 현업을 뛰고 있다. 그것도  회사에서 전공업무 분야를 이어가고 있다 한다. 기업에서 고용 유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 밥값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와 함께 상모처럼 현업에 근무하는 동기생 만나는 자리에 나가면 마누라 앞에서 얼굴을 못든다. 월급 받아다 준 기억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상모 동기는 妻福도 있다. 행사 때면  상모는 기타를 들고 상모 와이프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 엄청 잘한다. 조금만 젊었으면 미스트롯 나갔어도 충분한 실력이다. 우리 와이프 학교 때 노래좀 했었다고 내 앞에서 자랑 여러번 했다가 상모 와이프 노래 부르는 것 본 이후론 꼬리 내렸다. 아무튼 상모 동기는 이래저래 복받은 친구다. 상모 동기가 기타를 기가막히게 연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젊었을 때 기타메고 젊은 여학생 후배들  엄청 줄세웠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동기 조달호**

 

우리 동기방에서 조달호 동기를 모르는 이는 없다. 옆 방 동기들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실력으로 이만한 유명세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본인이 이름 앞에 붙인 직함도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J대 신방과 72학번, 대한항공 모닝캄 편집장, 창조적 이벤트 전략 저자, 교수, 명사모 상임대표, 충청향우회 중앙회 부총재,한국 전통무예 총연맹 홍보대사, 한류문화협회 총재 이정도다.

 

많은 동기들 중에서 달호 동기만큼 활동력 강하고 적극적이고 창조적 멀티플레이어를 본적이 없다. 활동 영역도 다양해 정치 역사 음악 미술 무술 안 걸치고 있는 분야가 없다.

어디서 저련 거침없는 추진력이 폭발하는지 달호 동기를 보면 부럽다. 남들이 1,2년 걸려서 만들어낼 사업 아이템을 거침없이 만들어낸다. 하나의 사업 아이템을 창출하기 위해선 사람 정보 자금이 필요하다, 정보와 전문가를 모으는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달호 동기를 볼때마다  조금은 의문이가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5,6년전 달호 동기가 개설한 중국어 학당에 들어가 다른 동기 한 명과 중국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중국어와 전통의술 업계 인맥이 두터움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 학당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는 걸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달호 동기에게 여러가지 사업을 하지 말고 본인이 자신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을 선택해 집중하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기업의 비지니스 개념으로 바라보면 조달호 동기의 상품 개발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마케팅 개념이 부족해보인다. 시장을 분석해보고  타켓시장을 선정하고 어떤 채널 경로를 선택하고  Promotion 전략은 어떻게 수립하여  진행해 나갈 것인지 구체성이 없어보인다.

 

대업을 이룬 성공사의 이면에는 언제나 유능한 참모가 있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었기에  조조의 대군을 격파할 수 있었고, 장량이 있었기에 유방이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 리더와 책사(참모)는 근본이 다르다. 리더는 유능한 책사가 필요하고 책사는 유능한 리더를 만나야 빛을 발한다.

달호 동기처럼 추진력 있는 사람은  옆에 유능한 참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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