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아카시아 꽃

Sam1212 2021. 5. 9. 11:42

오늘 아침 성내천 둑방 산책길에서  하얗게 꽃망울을 터트린 아카시아꽃을 만났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카시아 싱그런 향이 코에 스민다.

 

아카시아는 외국 이름표를 붙이고 있으나, 우리나라 전국 어디를 가도 산과 들에서 쉽게 마주하는 나무다. 60년대 산림녹화 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식재를 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번식력도 강해 전국의 야산과 공터를 뒤덮었다. 아카시아는 목재로 쓰기엔 재질이 안좋아 요즘들어 홀대받는 수종이 되었다. 그러나 봄철에 피는 꽃 만큼은 양봉업자의 귀한 밀원이 되고 그 향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5월이 되어 아카시아 꽃을 바라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의 추억에 빠져들곤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1970~80 년대 서울 사당동 집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당시엔 문화주택이라 했으나 건축업자들이 판박이로 지은 주택촌이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15평 정도의 마당에는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없었다.

 

어느날 어머니가 이사 가고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셨다. 여동생도 출가하고 동생들도 학교를 마쳐 집을 옮기는데 부담이 없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께서 꽃나무 한 그루라도 심을 수 있는 작은 화단이 딸린 집을 바라고 계시다는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70년대까지 당시 서울은 아직 아파트 생활이 대중화 되지 않았고  한강변의 이촌동 반포동에 가서나 아파트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동네 부동산 중계를소 찾아다니며 화단 있는 집들을 몇 군데 보았고 사당동에서 과천 가는 도로가 곧 확장된다며 길 옆 주택을 매입하라고 소개하는 부동산도 있었다.  알아본 집들을 어머니께 설명 드렸다.

 

직장이 대전으로 인사발령이나 지방 생활을하는 동안에 어머니가 고척동으로 이사를 하셨다.   교통도 불편한 그곳으로 옮긴 연유를 들어보았다. 어머니는 어느날 신문에 주택 분양 광고를 보고  현장을 다녀 오셨다. 울창한 아카시아 숲에 둘러쌓인 동네로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만발하고 향기가 온 동네를 진동해 천국에 온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부동산 지식이나 당시의 도시 발전 시각으로 보면 주택의 미래 가치는 사당동이 고척동 보다  훨씬 장래성이 있었다. 고척동은 지하철은 물론 없었고 마을 버스로 갈아타고 들어가는 시골 동네 모습이었다. 산 아래에는 아직도 과수원과 채소밭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이사한 집과 동네에  만족해 하셨다.   아카시아 숲으로 둘러쌓인 동네에 만족하시며 불편한 몸이나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언덕 위에 있는 개척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셨다. 어머니는 10년 넘게 아카시아 숲에 둘러쌓인 동네에 사시다  5월 아카시아꽃이 또 한번  만발한 모습을 보시며 돌아가셨다.

 

회사에서 회의 도중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마주한  아카시아 숲은 이제 끗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돌아가셨다.  장례식도 병원 장례식장이 아닌 집 앞 주차장 마당에 텐트를 치고  아카시아 향 속에서 문상객들을 맞았다.

 

올해도 성내천 둑방에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둑방길  꽃을 바라볼 때마다 아카시아 향을 좋아하시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친구 엄마들은 허리 꼬부러지시면 요양원에도 들어가시고  90을 훨씬 넘기신 분들이 많으시다. 우리 엄마는 63세에 집에서 돌아가셨다.  올해도 어머니는  나에게 또한번 아카시아  향을 보내주고 계시다.

 

(2021.5.11 어머니 기일 을 앞두고 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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