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내가 바라본 세상

고래사냥

Sam1212 2011. 10. 25. 16:48

 

환삼덩굴(고래사냥)

 

지금 쯤 안양천에 나가만 강둑은 온통 초록이다. 강변을 덮은 초록의 풀밭과 잉어가 헤엄치는 맑은 물, 회색빛 대도시 서울도 이제 많은 시민들이 오랜 동안 갈망해왔던 꿈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강물은 아직도 탁하고 천변은 푸른 온통 덩굴식물로 덮여있다.

 

나와 환삼덩굴과의 악연은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5월이 되면 고향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들리곤 한다. 그때마다 과실나무를 몇 그루 사서 차에 실고 내려가 산 밑에 있는 밭둑에 심었다.

 

고향의 밭둑에서 뿌리를 내리고 키가 쑥 자랐으리라 생각하고 가을에 내려가 살펴보면 봄에 심은 과실나무는 보이지 않고 왼 넝쿨 식물이 밭둑을 온통 덮고 있었다.

 

첫해에 심은 6그루 중에서 키가 작은 대추나무 3그루는 모두 죽어버리고 자두나무와 앵두나무 한그루만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나무는 키가 커 덮어버린 덩굴 위로 머리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다음해에는 키가 큰 감나무 2그루를 포함해 6그루를 심고 올라왔다. 그해 가을에 확인해보니 키 큰 감나무만 살아남았고 작은 녀석들은 또다시 환삼덩굴에 덮여 고사해버렸다.

 

일 년에 두 번 내려갈 때 마다 나무 주변과 나무를 올라탄 넝쿨을 모두 제거하고 기울어진 나무들을 반듯하게 세우고 오는 것으로 환삼덩굴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막아내기엔 어린 묘목들은 너무 약했다.

 

이렇게 환삼덩굴과의 4,5년간 힘겨운 싸움 끝에 심고 온 20여 그루의 과실수 중에서 현재 5그루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밭둑에 뿌리를 내렸다.

 

환삼덩굴은 늦은 봄 5월 철쭉 영산홍이 모두 지고나면 지표를 뚫고 올라오는 덩굴식물이다. 어린 이파리는 꼭 푸른 단풍잎처럼 아름답게 생겼다.

 

 그러나 그 번식력과 성장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6,7월 장마철이면 하루에 30 센티 이상 뻗어나가고 한 달 이면 주변의 모든 풀과 작은 나무들을 덮어버린다. 환삼덩굴 있는 곳에서는 어떤 풀도 하늘을 보고 자라지 못한다.

 

 다 성장한 이파리와 줄기엔 작은 가시가 돋아나고,  영양 상태가 좋은 땅에서 자라는 놈들은 잎이 어른 손바닥 보다 도 넓다. 줄기와 이파리 뒤에 돋은 작은 가시는 피부와 접촉하면 상처를 내고 독소까지 내품어 상처부위는 무척 따갑다.

 

 9월 찬바람이불기시작하면 풀꽃이 피기 시작하여 꽃가루가 날리기도 한다. 씨방이 영글어 땅에 떨어지면 그 때부터는 사람의 손으로 구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환삼덩굴의 폐해나 효과적인 제거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피해 사례는 찾아볼 수 없고 긍정적인 표현들이 의외로 많았다. 우리 땅 어디에서나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고혈압 약재로도 쓰이고 어린 싹은 봄에 나물로 먹을 수 있다고 소개되어있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로는 우리 산천을 황폐화시키는 악마의 덩굴이다.

 

지난 수년간 걷기운동을 하면서 서울의 한강과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의 식물 생태계를 관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안양천 수색천 탄천 홍제천 양재천을 덮은 초록색 물결은 가까이 가보면 대부분 환삼덩굴 군락이었다. 본류인 한강 뿐 만아니라 지천 모두가 환삼덩굴에 점령당해가고 있었다.

 

3년 전 가평에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산 아래 밭 둑 길을 걷다보니 둑길은 물론 둑 위 나무들까지 온통 환삼덩굴에 뒤덮여 고사해가는 처참한 상황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우리가 개발이니 공원화 사업이니 하면서 외적 치장에 한창일 때 쓸모없는 넝쿨 식물이 아름다운 강산을 황폐화 시키고 생태계를 망가트리고 있었다.

 

나의 환삼덩굴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이 한참 높아있을 때 새로 입주한 아파트 정원에서 환삼덩굴을 발견되었다. 재건축으로 막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 단지라서 정원수들은 외부에서 모두 옮겨 심은 나무들이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환삼덩굴의 흉측한 촉수가 스믈스믈 뻗어나가는 모습이 목격된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나무나 흙에 씨앗이 함께 묻어 들어와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힘 좋게 뻗어 나가며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 날 밤부터 환삼덩굴 퇴치 작업이 시작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 1시간 정도 공원이나 한강변으로 산책을 다녀오던 하루의 일과를 아파트 단지로 산책코스를 바꾸고 환삼덩굴 사냥으로 일과를 변경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정원의 풀숲에 들어가 넝쿨의 뿌리를 찾아내어 뽑아내어 다시는 뿌리를 못 내리게 나무에 걸어놓는다. 이미 자리를 잡고 세력을 확장한 놈들은 줄기가 새끼손가락만큼이나 굵고 4-5미터나 뻗어나갔고 작은 나무 가지위로 올라탄 놈들도 많았다. 이런 큰 놈들을 뽑다 잎이 팔뚝을 스치면 칼로 베인 듯 뻘건 상처가 나고 스친 부위는 풀독으로 쓰라림이 서너 시간이나 지속된다.

 

 여름철 양팔에 벌겋게 풀에 스친 상처를 보고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남편의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던지 나의 밤 사냥에 아내도 합류하였다. 아내는 야간 환삼덩굴 제거작업을 고래사냥이라고 불렀다. 작업에 필요한 양팔에 끼우는 토시와 장갑도 새로 장만하였다.

 

혼자서 아파트 단지 숲속에 들어가 기웃거리고 나무에 엉킨 넝쿨을 제거하는 일은 낮에는 남들 보기에 좀 쑥스러운 일이다. 아파트 숲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더라도 아내와 함께 있으니 잃어버린 물건을 찾거나 집나간 애완견을 찾아 나선 사람으로 보이고 훨씬 마음이 편하다. 간혹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아내가 뒤에서 설명을 해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내는 낮에 아파트단지를 돌면서 환삼덩굴의 위치를 보아두었다가 밤에 만 작업을 한다. 늦은 밤에 타인의 아파트 창문 앞 까지 다가간다든지 풀숲에서 덩굴을 뽑는 일은 주민들에게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일이다.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지나가던 주민이 다가와 더덕이나 약초를 캐는 줄 알고 감시의 눈초리를 받는 경우도 여러 번 있고 경비원이 랜턴을 비추며 다가온 적도 몇번 있었었다. 그 때마다 환삼덩굴의 폐해를 설명해주고 지금 뿌리를 뽑지 못해 가을에 씨가 떨어지면 아무리 큰 노력을 들여도 완전히 퇴치하긴 어려운 일이 될 거라고 장황한 설명을 해주어야했다.

 

가끔은 내 설명을 듣고 나서 그 어려운 작업을 왜 혼자 하려고 하느냐면서 아파트 홈페이지에 올려서 지원을 받으라는 사람도 있다.

 

매일 밤 우리 두 사람의 계속되는 사냥에도 불구하고 환삼덩굴의 박멸은 쉽지가 않았다. 아파트 단지를 구역별로 나누어 완전히 제거했다고 생각했으나 일주일 쯤 지나서 다시 가보면 언제 나왔는지 작은 줄기들이 다시 뻗어 나가고 있다.

 

장마철엔 4-5일 쉬었다 나가보면 어느 틈에 시퍼렇게 자라 기다란 줄기를 뻗어 나무 위를 기어오르고 있다.

 

2009년 첫해 6월에 시작하여 여름이 보내고 가을이 올 때까지 우리 아파트단지 내 환삼덩굴을 혼자 힘으로 모두 제거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해를 넘겼다.

 

그러나 2010년 6월이 되니 전해에 무성하게 번졌던 지점에서 다시 수도 없는 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판단컨대 씨앗이 한번 땅에 떨어지면 2-3년간 땅속에서 썩지 않고 싹을 틔우는 게 분명해보였다.

 

2010년에는 전년도의 경험을 살려 밤마다 더 열심히 사냥터에 나갔다. 날마다 환삼덩굴과 싸우다보니 누가 이기는지 한번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이가 생겼다. 조금은 거창하지만 나에게 부여된 소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퍼렇게 풀물이 들은 장갑을 끼고 사냥에 나서면 그 놈들도 어둠속으로 잽싸게 숨어버린다. 어둠을 헤치고 찾아내어 뿌리를 뽑으려들면 이 악마들은 잎과 줄기에 날카로운 침을 세우고 내 살갗을 향해 덤벼든다. 놈들은 죽어가면서도 나를 향해 다해 독소를 내품는다.

 

몇 일전 단지 아파트 담벼락 아래서 아주 어린놈 하나를 발견하였다. 2011년 들어와 첫 발견이다. 6월 말까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어 이제는 완전히 잡았다고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아파트 수목들 사이를 산책하면서 8천 가구가 넘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환삼덩굴이란 악마가 사라진 것은 순전히 우리 노력 때문이라고 자화자찬했었다. 누가 시켰으면 그리 열심히 그 귀찮은 작업을 매일 밤 나와서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아직 어린놈이지 만 늦게나마 싹을 틔우고 지상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풀씨가 떨어지면 최소한 3년까지 싹을 틔운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아내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전수 검사를 하였다.

 

 놈의 생태 습성 상 전년에 무성했던 지역에서 또 발견된다. 2곳에서 작은 놈들이 발견되었다. 올해 20일이 넘는 긴 장마로 땅속 깊이 숨어있던 씨앗이 늦게 발아되었음이 분명하다. 첫해와 작년과 비교하면 아주 미미한 상태지만 완전 퇴치되지 않은 것이다.

 

타인이나 공동체를 위하여 남들 모르게 좋은 일 하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요즘 나를 이렇게 기쁘게 만들고 작은 자긍심을 가지게 한다. 나이 들어 늦게서 알게된  깨달음 이다.

 

나는 오늘 밤 또다시 손장갑으로 무장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송창식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래사냥을 나간다.

 

20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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