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子장사와 금융감독
월초에 몇 명의 공익근무원의 전배치가 있었다. 요즘 이곳으로 배치 받아 온 공익들은 우연이지만 모두 가정환경이 극빈한 애들이다.
영근이가 처음 이곳으로 배치 받아왔을 때 그의 첫인상은 귀여운 미소년 같았다. 첫날 간단한 신상 조사를 했다. 주소 생년월일 가족사항 학력 사회경력 애로사항 따위이다.
"임대아파트에 있으니 주거 걱정은 안 해 도 되겠네, 아버지는 뭐 하시냐?"
"요양병원에 입원해계십니다."
"어머니는 뭐하시는데?"
"일 다니시다 허리가 아파서 집에 계십니다."
"동생은 뭘 하는데?"
"군에가 있습니다."
"그럼 뭐 해서 먹고 사냐?"
"제가 알바라도 해야 하는데 솔직히 걱정입니다."
"야! 영근아 너는 안 들어 와도 될 것 같은데 왜 들어왔어. 너 말고도 들어올 애들 많으니 소집해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라."
휴가를 줘서 병무청과 구청에 공익 면제가 가능한지 알아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점심은 사먹지 말고 도시락이나 김밥을 싸가지고 오라 했더니 녀석은 하루에 두 끼 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도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라고 했더니, 한 번은 바나나를 싸가지고 와서 먹는걸 보았다.
하루는 점심 때 돈까스를 사주었더니 맛있게 다 먹는걸 보고서 이 녀석이 배고픔을 참으며 나한테 지금까지 두 끼만 먹으면 충분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영근이는 토요일 일요일에 마음 놓고 알바를 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영근이와 맞바꾼 우진이가 이곳으로 왔다. 우진이는 나이는 영근이 보다 두 살 어린데 비대한 몸집에 서너 살은 많아 보였다.
"신수동 351 지하 우측, 우진아 대한민국에 이런 주소가 어디 있냐?"
"그 주소 맞아요!"
"어머니하고 둘이 사네, 어머니는 뭐하시는데?"
" 공장에 다니세요."
"뭐 하는 공장인데?"
"봉제 공장요."
"몇 시에 나가서 몇 시에 들어오시냐?"
"아침 8시에 나가서 저녁 8시에 오십니다."
"집이 어렵구나. 여기 들어오기 전 뭐했냐?"
"남자 장사했어요."
"여자 장사는 아는데 남자 장사는 뭐냐?"
"호스트 바에요."
녀석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야 임마! 그런 세계 발 한번 담그면 빠져나오기 힘들어, 영근이도 신촌에서 부킹맨 하다 빠져나왔다고 하더라."
"눈 딱 감고 일이년 일하면 외제차 굴릴 수 있어요."
"그런 일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어려서부터 아는 형들하고 일해서 걱정 없어요. 다음 달에 여수에 내려갔다 와야 해요. "
"너 등짝에 용 문신 했냐? 영근이 민호 모두 팔뚝에 문신했던데."
"그렇지 않아도 다음 달에 할 거에요."
"어머니가 하라고 하던?"
"엄마는 좋아하지 않아요."
"할 라면 엄마한테 승낙 받고 해라."
이곳으로 근무 명을 받고서도 파견이다 교육이다 하며 애를 먹이던 경상이가 1일자로 출근했다. 그간 화가 한참 나있었으나 막상 얼굴을 보니 꽤 순진한 인상이다.
"재산 현황은 쓸 필요 없고, 살고 있는 집 전세인지 월세인지만 말해."
" 천 만 원에 30만원 월세입니다."
"부모님 모두 60이 넘으셔서 일하기는 어렵겠네?"
"네, 그냥 집에 계십니다."
"그러면 들어오기 전에 네가 벌었겠구나. 얼마나 벌었는데?"
"월 170-180 벌었어요."
"그 정도면 꽤 괜찮은데! 어딘데?"
"이태원 라운지바에요."
"집 전화번호는?"
"지난달 정지당했어요."
"야 임마 ! 핸드폰도 정지당하고 집전화도 정지당하면 어떻게 해."
"핸드폰은 요번 월급타면 살릴 거 에요."
불법 대출로 부실화되어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의 부실 규모가 7조원이나 된다고 연일 매스컴이 난리법석이다.
불법 대출로 손실을 초래한 사업주 회장님이 머리를 숙이고 검찰청에 붙잡혀 들어가는 모습이 TV화면에 한번 비추고 나서는 매스컴의 포커스는 감독기관인 금감원에 집중되어있다.
모든 공공 비리의 일반적인 행태가 그렇듯이 이번에도 감시 감독권한을 가진 자들이 만들어냈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사업주가 개인과 조직의 역량을 최대로 동원하여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축재하려는 욕망은 당연한 일이고 우리사회의 전체적인 부의 창조와 발전을 이끌어가는 동력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탐욕이 지나쳐서 공공의 이익이나 안전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법과 규정을 만들어 놓는다. 그 테두리에서 벋어나는지를 감시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공공조직과 인력들이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에 그 기능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사의 감사가 생선을 훔친 고양이 역할을 했다.
금융은 국가 경제의 핵심으로 인체의 심장에 비유한다. 금융업은 신용 생명이다. 이번 사건으로 금융기관 신용의 한축이 무너져 내렸다. 특히 이번에 터진 저축은행은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금융기관이다.
영업중단으로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다수의 서민 예금자들은 영업이 중단 된다는 기밀을 미리알고 돈을 빼간 일부 실력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지금 요란하게 여기저기 손가락질하며 난리법석을 피우지만 사태의 뿌리가 어디서 뻗어 나왔는지 들여다보면 근원이 보인다.
이번 사태의 감추어진 밑바닥에는 우리사회의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 파워 그룹의 이기주의 뿌리들이 얽히고설켜있다. 이번 문제가 터진 저축은행 뿐만 아니다.
많은 국영기업체의 감사 자리들은 권력을 잡은 인사들이 조선말기 세도정치가 판칠 때 벼슬자리 팔아먹던 전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사실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면서도 이어져 나가고 있는 일이다.
금융업주 입장에서 보면 내가 감독기관 출신을 감사 자리 내주고 호화사무실에 고액 급여를 지불하는 이유는 그가 축재하는데 도움이되 달라는 역할로 이미 반전되어 있다.
당신의 그 매끈한 교제술로 이따금 따끈한 정보도 빼내오고 주인인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는 당신의 그 화려한 연줄 도 좀 빌리자는 말이다.
이 간단하고 단순한 내용을 다들 알고 있었다. 우리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최고의 지식층이고 전문가라는 분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빙글빙글 돌리고 전문용어로 포장하고 법조문을 들이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가증스럽다.
그간 감독의 칼자루를 쥐고 거들먹거리고 비리를 눈감아주고 수 천 만원 수 억 원의 뇌물을 챙겼던 사람들이 이제 분노의 칼날 앞에 떨고 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분노한 젊은이가 "저런 놈들은 모두 총살 시켜야 되."라고 내뱉는 분기서린 말에 나도 공감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모두 총살시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 근원을 바꾸기 전에는 언제라도 발생되는 일이다.
"눈 딱 감고 1.2년 고생하면 외제차 굴릴 수 있어요."라고 남자 장사 하겠다는 공익요원의 말이 귓가에 자꾸 맴돈다.
(2011년 10월 11일 신문 경제면에 실린 금융비리를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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