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감동

Sam1212 2022. 1. 5. 11:07

 

옛날이나 지금이나 특이한 분야에서 특별난 재능이나 기술로 밥벌이를하고 권력에 가까이 접근하는 직업인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궁중연회나 사대부가의 혼사에 분야별 전문가들이 활동했다. 이들의 권한과 이권이 점점 커지고  전횡이 사회의 적폐가 되기도 했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화장(花匠)은 행사장을 꽃으로 장식하는 이를 말한다.  생화가 아닌 조화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오늘날 플로리스트(florist)역할이다.

 

수모(首母)는 여성의 머리를 장식하는 머리어멈으로 불렸으며 요즘의 헤어디자이너(hair designer) 메이크업 아티스트(makeup artist) 스타일 리스트(stylist) 역활이다.  가체(加髰/가발)를 사용해 머리를 풍성하게 장식한다. 당시 가체장(加髰匠)이 만든 가체의 가격이 엄청난 고가로 사치 풍조로 비난받았다.  정조 때에는 가체 사용 금지령까지  내렸다.  

 

조방꾼(助房)은 기생을 관리하며 그들의 일정과 돈관리 고객관리를 했다.  오늘날의 매니지먼트사(Management co.)나 엔터테이너(entertainner) 또는 포주 역할을 했다. 주로 궁궐의 대전별감이 맡아보다 18세기 이후에는 의금부 나장 포도청 군관 같은 하급관리나 중인들이 독점했다.

 

기업에서 이벤트팀장을 지냈던 친구들이 있다. 이벤트 팀이란 부서 명칭이 기업에 등장한 것은 1990년대로 기억된다. 경제 성장으로 대기업 그룹사들이 많이 등장했고 이들이 주관하는 대형 행사들이 많이 진행되고 나서다. 각 기업의 홍보부서에서 맡아 진행하던 크고 작은 행사들이 대형화되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가 생기면서 행사를 전담하는 부서가 만들어졌다. 기업들이 국제화 되고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MISE 산업의 수요가 번창하자 하나의 독립 기업으로 태어나기 시작했다.

 

부서의 임무는 당연히 외부 행사를 많이 유치하고 맡은 행사를 빈틈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일이다. 행사를 완벽하게 진행한다는 의미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가자나 고객에게 감동을 준다는 무형의 목표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일은 관람자 시청자인 대중을 상대로 감동을 연출해 내는 일이다. 이일에 그들의 전문 지식과 경험 그리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성공 요소다.

 

이런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책임자나 전문가를 만나보면 당연히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른 면이 발견된다. 한마디로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다. 이들은 대중의 심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고 대응 방법을 안다. 대중을  어떻게 웃기고 어느 시점에서 울리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지를 기획 연출한다. 고객이 무엇을 바라는지 말 몇 마디 나누고 눈빛 만 보고도 알아채고 상대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들은 경쟁에서 힘들게 유치한 수억원 짜리 행사를 스케쥴대로 완벽하게 진행했더라도 수주사 호스트인 회장께서 만족 하는지 눈치를 살피는 일을 빼먹지 않는다. "저는 회장님을 한국의 메디치라 부릅니다" 그들은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환심을 사는 기발한 아이디어들 준비해 항상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있다. 차기 행사의 결정권자인 그가 불만을 표시하면 단발 행사로 끝나기 때문이다. 

 

사기업에서 이런 분야에서  전문인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요즘 몸값을 높이고 있다. 사기업을 떠나 공공기관이나 정치권에 들어가 활동하며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권위와 오만 속에서 생활하던 힘쎈 조직 속의  잘나가는  이들은  사기업에서  모셔온  꺼벙하게 생긴 전문가의 두뇌 회전과 날렵한 손재주에 '역시'라는 감탄사를 발한다. 

문제는 공공 부분에 진출한 전문가라는 사람들 중에  변두리에서 놀던 3류 기술자가 끼어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눈 속임 행사가 감동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결국 행사 주인공의 품격도 함께 떨어진다.

 

"사모님 오늘은 이 핸드백 메고 나가시지요" 하며 여직원의 남대문 시장 좌판에서 구입한 짝퉁 핸드백을 들려준다.

그리고 10년전에 유행한  색바랜 동대문 시장 점퍼를 입혀드린다.

"00님 오늘 일정은  재래시장 방문인데 편한 이 운동화 로 바꿔 신으시죠"하며 뒤축이 많이 닳은 낡은 운동화를 신겨들이고 어깨에 멘 백팩 속에는 비닐 봉투에 싼 김밥을 넣어준다.

두 분의 사진은 다음날 매스컴에 크게 보도된다. 사모님이 손에든 핸드백이 한국 00사에서 만든 20년전 유행했던 제품이란 기사가 실렸다. 또 다른 방송사는 00님의 뒤축 닳은 운동화가 화면에 잡혔다.

 

소품을 활용해 대중의 감동을 매수하는 초보적인 기법이다. 그러나 이처럼 연출된 감동은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그것은 화학 조미료를 듬뿍 넣은 음식과 같다. 깊은 맛이 없고 혓바닥 미뢰를 한차례 자극하고 사라진다.   뜨거운 감동은 가슴 속  심장을 울리며 생성되어 차거운 머리를 한바퀴 돌아나와 눈물선을 자극한다. 이런 감동은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거나 찾아냈을 때 발현된다.

 

2005년 겨울 감동의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 소록도 한센 병원에서 43년간 환자들을 간호하며 돌보았던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83)와 마가렛(82) 두분의 수녀가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는 기사다. 오스트리아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두분의 수녀는 1959년 1962년에  아직 전쟁의 상처를 완전히 벗지 못한   한국의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들어왔다.   소록에서  한센인을 돌보며 39~43년간 헌신적으로  자원봉사를했다. 나이가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소록도 사람들에게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조용히 짐을 꾸려 떠났다는 감동의 스토리다. 

 

큰 감동을 불러낸 내용은  두 수녀 할머니가 40년이 넘도록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보며  봉사를했다는 사실보다 한국을 떠나면서 기자회견이나 환송식 같은  요란스런 겉치례 행사를  사양하고 달랑 편지 한장만 남기고 홀연히 소록도를 떠났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지극히 작은 일인데 언론 기사로 나가면,  한 일보다 높이 평가받는  것 같아  그동안 굳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두 수녀 할머니가 희미하게  지워져가던  2021년 6월에  두 할머니의 기사가 신문 구석에 조그맣게 실렸다.  우리 대통령께서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해 두 수녀 할머니를 환대해주려고 대통령궁으로 초청했으나 정중하게 사양했다는 기사다.

 

'소록도의 두 천사와 다시 만나다' ' 대통령  두 천사에 감사의 선물'  신문 헤드라인에 실려 지구촌의 감동을 민들어 낼뻔한 기획이 두 할머니의 고집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오스트리아의 두 수녀 할머니의 작은 기사는 내가 뽑은 2021년 지구촌 최고의 감동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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