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나막신

Sam1212 2022. 1. 12. 21:06

네델란드 나막신

 

아파트 현관 신발장 안에 커다란 나막신 한 켤레를 보관하고 있다.  구두와 흙먼지 묻은 등산화들  사이에 끼어  더 비좁게 만들고 있다. 나막신은  한 네델란드 노인에게 받은 선물이다.

 

일본에서 열린 한 걷기대회서 그를 만났다. 2007년에 일본 東松山(히가시마츠야마)이란 작은 도시에서 매년 열리는 쓰리데이마치(3 days march)라는 국제걷기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10km의 제일 가벼운 코스에 참가하여 중간 쯤 통과하고 있을 때 한 서양 노인이 커다란 나무신발을 신고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좀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보였다. 머리가 하얗고 얼굴의 주름살로 보아 80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다. 나무신발을 신고 뒤뚱거리며 걷는 노인이 기이해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걸음이 늦은 나는 지체할 수 없어 걸어가면서 인사만 나누고 그를 앞질렀다.

 

3일간의 행사를 마치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외국인 참가자들을 위한 파티에서 그 노인을 다시 만났다. 걷기 코스에서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지났기에 궁금한 것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83세의 노인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그와 함께 온 젊은이가 나의 질문에 대해서 친절히 통역해주었다. 네델란드에도 나막신 문화가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는 네델란드에 대한 깊은 문화 지식이 많지 않아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가지고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 도중에 2002월드컵 축구 감독이었던 네델란드 출신 '히딩크'가 떠올랐다. 그를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대한민국에서 히딩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통역을 맡은 청년은 나의 히딩크 찬사에 반가워했다. 청년은 네델란드에서는 히딩크 감독 보다 앞에 서있는 이 노인을 모르는 이는 없다고 말했다.

노인은 양복 깃에  훈장처럼 보이는 메달을 달고 있었다. 왠지 그 메달이 무게 있어 보였다.

나는 유명인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며 가지고 있던 태극기 휘장을 선물로 건넸다. 노인은 잠깐 자리를 뜨더니 당시 신고 걸었던 나막신에 자신의 싸인을 해서 답례로 주었다. 통역을 한 네델란드 젊은이는 노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었다. 노인의 이름은 H.J DOORNKAMP 라했다.

 

서울에 돌아와 몇 달이 지나서 인터넷에서 네델란드의 나막신 문화를 검색해보았다. 유럽에도 나막신 문화가 있었다. 나막신을 싸보(Sabot)라 불렀다. 노동운동 '사보타지'의 어원이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들이 나막신을 기계에 끼워 넣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노인이 정말로 네델란드에서 유명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보려했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유명인 여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함께 걸으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지구인으로서의 함께 웃고 같이 슬픔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하는 지구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하고 기품 있는 얼굴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H.J DOORNKAMP 노인 아직 살아 계시다면 90이 훨씬 넘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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