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국방의 의무

Sam1212 2022. 6. 25. 20:12

우리는 전후 세대다. 전쟁 중에 태어난 사람도 있으나  참혹한 전쟁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세대에 비하면 축복받은 세대다.

그러나 우리는 휴전이란 이름으로 남겨진 분단 조국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더 힘들게하는 일은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평화와 전쟁의 외줄타기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이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전쟁의 공포가 한반도 위를 한번도 떠난 적이 없다.  드디어 평화가 시작되었다고 큰 소리로 외친 적이 몇번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언제나 위장된 평화였고 더 크고 위험한  전쟁의 준비기간이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국방과 안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언제나 지켜야할 최고의 가치로 다가선다.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 중에서  상위에 위치하며 중요시된다. 수천년 이어져 내려온 민족 국가의 역사에서 주변 강대국의 끊임없는 침략과 근세에 이르러  식민지로 전락했던  우리의 경험으로서는  당연한 결과다.

 

안보와 국방은 나라의 초석이다. 초석이 무너지면 나머지 경제 사회 문화가 독립적 주체적으로 발전 유지하기 불가능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국민 모두가 공감하기에 군의 위상과 역할은 언제나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

 

군이란 조직을 경제적 측면으로만 바라보면 나라든 개인이든 비생산적 집단이다. 이 비생산적인 집단에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하여 안보라는 제방을 든든하게 쌓는  이유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미래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 둑이 무너지면 다른 모든 분야가 물속에 침몰한다.

 

이 땅에 태어난 남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자긍심으로 무장하는 마무리 과정이  군복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군인은 나라의 명에 따라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쳐야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시절 역사 교육을 통해 나라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며 충성이라는 가치관을 정립한다.. 그리고 군역을 마침으로 나라에 충성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풀리지 않는 자물쇠를 채운다. 

 

한국의 남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할 나이에 이르면 군 복무를 어떻게 해야할지를 결정하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육해공 해병대 중에서 어느 군을 택할지 선택하고 .대학생인 경우 학업을 마치고 갈 것인지 재학중에 다녀올 것인지를  택한다. 늠름하고 멋진 군이 좋아서 사관학교 입학을 택하는 젊은이도 있다.

 

나 역시 젊은시절 이런 선택의 순간에 서서 고민한 적이 있다. 내 경우는 조금 특이한 선택의 기로였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에 큰 사고가 있었다. 허리를 다쳐 병원에 3개월이 넘게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큰 사고였기에 퇴원 후에도  완치되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  20세가 되어 군 입대 신체 검사를 받았고 현역 입대 불가 등급을 받았다.

 

대학 2학년이 되자 언제 방위병으로  입소해  복무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했다.  방위병 입소를 앞두고 숙고의 시간을 가졌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나 육군 현역 입대 부적합 판정을 받아  방위로 군생활을 마친다는 것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대학 운동장 아래 학군단 사무실이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학훈단 사무실에 들러 신체검사에서 방위 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ROTC에 지원 할 수 있는지  문의해보았다. 행정 장교가 입대 판정과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ROTC에 지원해 모든 과정을 통과했다. 허리 다친 것이 완쾌되지 않아 조금 걱정되었지만 훈련 과정에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런 결정을 하게된 바탕엔 몇가지가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시절 태권도부에 들어가 운동을 했다. 고등 학교선택을 

잘못해 상업학교에 들어갔다. 교과 과정들이 내 적성에 맞지않아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기에 남모르는 고민과 갈등의 시간이 있었다. 당시 나를 붙잡아 끌어당긴 것은 태권도였다.  내성적이었던 내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운동이었다. 바로 그 점이 나를 이끌었다. 태권도 수련을 통해 좀더 외향적이고 남자다운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과후 열심히 운동해 2학년 때에는 많은 부원들 중에서 선수로 선발되어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통령배에 선수로 출전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배경이 있다. 고등학교 때 방학이 되면 인천에 있는 외가에 놀러가곤 했다. 당시 이종형(이병훈/ 101학군단 7기)이  ROTC 장교로 복무를 마치고 막 취업한 상태였다. 형이  나에게 ROTC 병영훈련 사진들을 보여주곤 했는데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꽤 멋있어 보였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작은형 (이병욱/107학군단 11기)도 ROTC를 하고 있었다.

 

후보생 시절  여름방학 중 실시되는 군부대 입소 1달간의 병영훈련은 긴장하고 들어갔으나  큰 걱정 없이 마치고 나왔다. 우려했던 체력에 자신감을 얻었다. 군대의 맛을 조금 본 셈이다. 2년차 때 한번 더 들어가는 병영 입소훈련과. 소위 임관과 함께 초급장교 전문과정에 다시 4개월 훈련과 교육을 받고 부대배치를 받았다. 광주 보병학교에서 받은 유격훈련은 내  체력의 한계점을 점검해보는 과정이었다.

 

어느분이 '군대에서 3년을 썩었다.'라는 표현을 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썩었다는 표현은 쓸데없이 낭비했다는 표현이다. 젊은 시절 2~3년 군 복무는 적지 않은 소중한 기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각의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젊은시절 아니면 감내할 수 없는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경험해보는 체력 훈련이다.  그리고 군이라는 특수 집단이 강제하는 통제 시스템에의해 개인의 이성과 자율이 속박당하는 체험은 스스로 할 수 없는  자기 극복의 귀중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 청년들이 경험할 수 없는 이런 독특한 군대 경험으로 무장하고 직업 전선에 뛰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오늘의 선진화되고 화려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국민개병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성은 적정 연령에 이르면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해야한다. 학교 시절에 국민이 수행하여야할  4대 의무에 들어간다고 배운다.

 

전쟁의 위험 상황 아래 사는 사람들, 그들은 남보다 빠른 상황 판단력을 필요로한다. 신속한 상황 대처 능력과  위험 회피 방법을 찾아내는  창의성을 발휘해야한다. 이들은 많은 위험을 극복해왔기에  저강도의 위험은 쉽게  자신감을 가지고 대응한다.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의 반쪽인 대한민국이 오랜 농경문화와 유교의 전통 문화에서 빨리 탈피하여  오늘날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세계 선진국 대열에 함께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놀라운 업적은 분단이 만들어낸 국민개병제의 군복무 경험이 밑바탕에 축적된 젊은이들의 역활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도 많은 국민들이 우리 군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씩씩하고 용감한 모습에 찬사와 격려를 보내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진다. 그러나 나약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대할 때면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보며 느꼈던 울분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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