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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바위는 어디에?(인왕산)

Sam1212 2010. 10. 1. 07:57

 

치마바위는 어디에?(인왕산)

자하문 고개에서 좌측에 보이는 언덕으로 오르면 인왕산 길이다. 오늘 인왕산 산길 걷기에 다시 나섰다 . 자하문 맞은편 언덕을 오르면 성곽 밑에 새로 생긴 공원이 시인의 언덕이다.

 

 

올라가는 길바닥 계단엔 '시인의 언덕'이란 표시의 글씨가 계단마다 쓰여 있고 난간의 둥근 목제 펜스에도 시 구들이 검은 글씨로 쓰여 있다. 잘 읽어보니 모두 윤동주 시인의 시구들이다.

 

 

언덕위에 오르면 새로 성벽 아래에 조성된 공원이 나온다. 공원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 심은 나무들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조망 만큼은 시원하다.

 

 

 

 

 

북악산 능선이 길게 뻗어 내린 끝자락에 청와대의 초록색 지붕이 보인다. 남산아래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들과 산 아래 턱밑까지 올라온 건물들때문에 600년 고도의 정취를 찾아보기엔 아쉬운 느낌이다.

 

 

인왕산에 올적마다 아쉬움이 많다. 언덕아래에서 확인한 안내판도 탐방객에겐 조금 어렵게 길안내가 되어있다. 우선 이곳 종로구의 동네 이름들의 지명과 위치에 아주 혼란스럽다.

 

적선동 통의동 체부동 효자동 옥인동하는 옛 동네가 행정구역상의 명칭인지 옛 동네의 이름인지 모르겠다. 지난번 우당기념관도 효자동 인줄 알았는데 안내판에는 신교동이라 적혀있었다.

 

 

 

이곳 공원의 이름도 공원의 시설물이나 분위기로보아 윤동주 공원이라 명하면 좋겠는데 '청운공원'이라 붙어있고 안내판은 부암동이라 적혀있다. 종로구에 사는 분들은 모두 아는 상식일지 모르지만 나 같은 외지인의 눈에는 모든 게 의문이고 혼란스럽다.

 

처음 이 '시인의 언덕' 을 올라오며 약간의 의문과 기대감이 일었다. 이 꼭대기에 시인의 언덕이 있다니? 아름답고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이름 뒤엔 아름다운 숨은 애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윤동주라는 시인의 이름을 대하면서 더 큰 기대와 호기심이 발동했다. 윤동주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다. 공원의 언덕에 유동주의 '서시' 시비도 세워져있다.

 

나의 기대는 싱겁게 무너져 내렸다. 공원 안내판의 설명은 윤동주 시인이 연희 전문학교시절 누상동의 친구의 집에서 하숙을 하였는데 인사동 광화문 인왕산자락을 거닐며 시상을 구상하였다고 쓰여 있다. 인사동 광화문 인왕산을 매개로 이 언덕과 윤동주 시인을 연결하기엔 연고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왕산 성곽 길은 아직 일부분만 개통되었다.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이어진 성벽은 사직동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아직 미 개방 구역이다. 올라갔던 길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나처럼 걷기만을 즐기는 사람들은 굳이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순환 도로에 연한 산책로를 따라 사직동방향으로 탐방하는 코스도 괜찮다.

 

 

 

 

 

인왕산은 해발 338미터로 북악산 보다 높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생활사에 많은 기록과 전설을 담아 전해 내려온다.

인왕산 하면 떠오르는 연결 단어는 단연 호랑이다. 인왕산엔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호랑이가 인왕산까지 출몰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 도 있다. 그러나 100년 200년 전 만해도 서울이 나지막한 초가집과 기와집들로  가득 차고 큰 도로는 없었던 시절 무악재나 박석고개의 산길을 밤에 혼자서 넘어가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호랑이 출몰이 많았던지 산 정상 부근엔 '범바위'라 불리는 바위도 있다. 호랑이 관련 전설은 효자 박태성의 이야기가 있다. 효성이 지극한 박태성은 무악재 너머에 있는 아버지묘소를 매일 찾아 참배했는데 호랑이가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등에 태워 데려다 주었다한다. 그 후 늙어 죽은 그 호랑이를 박태성의 묘 옆에 묻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경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종로구에서 인왕산 도로에서 사직공원방향과 독립문 방향으로 갈라지는 초소삼거리에 호랑이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조선시대 많은 화가들도 인왕산의 풍광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조선 최고의 풍경화가 정선이 1751년에 그린 인왕제색도이다.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아직도 계곡엔 산안개 자욱한데 정상의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은 하늘을 향해 불끈불끈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다.

 

 이 그림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꿈틀대는 바위 봉우리들의 힘이 온몸에 전해 저 심장 뛰는 소리가 빨라지는 느낌이 들기 도하고 때로는 산안개 피어오르는 적막강산 넘어 로 우렁찬 폭포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인왕산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도로가 크게 S자로 휘어지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 고개를 들어 산위를 바라보면 겸재 그림 속의 커다란 바위산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만 같다. 이 길을 걸을 때 마다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가 인왕제색도의 안개 속을 걸어보기를 기대해보지만 지금까지 그런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오늘은 화창한 봄날 그의 그림 안개 속 그 계곡을 혼자 걸어가고 있다.

 

초소 삼거리에서 윗길로 조금 더 걸어가면 성곽이 나온다. 성벽은 산 능선을 따라 삼청터널 방향으로 한 마리 뱀처럼 구불구불 휘감아 내려간다. 이 성벽을 따라 새로 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있다.

 

오늘 또 한 번 찾아보고 싶은 곳은 '송석원'이란 곳이다. 1791년에 이인문이 그린 '송석원시화도'란 그림이 있다. 그림 속을 자세히 보면 인왕산의 암벽 자락에 종으로 '송석원'이라고 각자된 글자가 보인다. 그 아래 너럭바위에 선비들이 앉아서 시회를 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같은 시기에 김홍도 역시 달밤에 송석원에서 시회하는 '시사야연도'를 그렸으니 당시 천수경의 집 송석원은 글과 그림을 좋아하던 선비들이 즐겨 찾던 모임 장소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곳 인왕산을 찾을 때 마다 안내판에서 '송석원'이란 글자를 찾으려 두리번거려보지만 아직 발견을 못했다.

 

인왕산에 얽힌 이야기 중에서 최고의 압권은 '치마바위'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조선 왕조 역사에 나타난 연가 뿐 만 아니라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도 훨씬 애달프고 감동적이다.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을 반정군이 몰아내고 그의 처남이던 신수근 형제도 살해했다.

 

반정군은 진성대군을 왕위를 잇게 해 중종이 되었다. 진성대군의 옛 부인은 신수근의 딸 이였다. 새로운 정치권력들이 신씨를 왕비가 되도록 그냥둘리 없었고 인왕산 아래의 옛 거처로 쫓아냈다. 반정 세력에 의해 왕이 된 중종은 그가 좋아했던 옛 부인이 그리울 때마다 경회루에 올라 신씨가 살고 있는 인왕산 자락을 바라보곤 눈물을 흘렸다.

 

이 소문은 신씨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신씨 또한 중종을 못 잊어하며 인왕산 언덕에 올라가 궁에서 잘 바라보이는 바위에 함께 살 때 입었던 치마를 펼쳐 놓아 사모의 정을 전하였다한다.

 

 

 

성곽을 우측에 두고 내려오는 길은 제법 정비가 잘 되었다. 인왕산 성곽 길을 걸으며 아쉬움은 옛 그림속의 청청했던 노송들이 모두 사라지고 외래수종인 아카시아와 활엽수만 무성하다.

 

옛 성곽엔 역시 우리 소나무가 큰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어야 정취가 살아난다. 구청에서도 성곽주변의 잡목을 모두 베어내고 소나무와 우리 고유 수종으로 어린나무들을 심어놓았다. 저 어린 나무들이 어서 자라서 성벽에 큰 그늘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인왕산 자락이 끝나가는 지점에 전망대와 쉼터가 나온다. 지난해 여름 달빛 걷기를 하면서 쉬어갔던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도 볼만 했었다.

 

전망대 아래 널따란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서울의 하늘을 바라다본다. 황사가 걷힌 뒤라 봄빛에 물들어가는 남산의 두 봉우리가 성큼 다가와 선다. 산 아래 펼쳐진 무수한 빌딩의 숲에선 오늘도 생존과 부를 걸머지기 위한 소리 없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좌측 북악산 자락 끝나는 지점엔 오늘 따라 청와대의 본관의 지붕 색깔이 유난히 푸르다. 저 푸른 지붕을 향해 권력 의지를 달구며 시대의 영웅을 꿈꾸는 자들이 얼마인지 모른다.

 

세월이 가면 재벌도 사라지고 영웅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인왕산 정상의 큰 바위는 오랜 세월 산 아래서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희로애락의 투쟁을 지켜보았으나 아무 말이 없다.

 

성곽 길을 내려오며 뒤돌아서서 다시 한 번 인왕산의 바위를 쳐다본다. 무어라 한마디 한 것 같은데 내가 알아듣지를 못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