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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길(불광천)

Sam1212 2011. 10. 27. 15:01

 

가장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길

 

불광천은 북한산 서쪽 의 구파발과 불광동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역촌동 응암동 증산동 신사동 성산동을 적시며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홍제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들어간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서 2002년 월드컵 4강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던 웅장한 경기장건물을 뒤로하고 천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불광천도 서울의 다른 하천들과 마찬가지로 2009년에 하천 정비 사업을 새로 하면서 걷기코스가 새로 잘 만들어졌다.

 

천변 길로 내려와 천천히 상류 쪽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하천을 가로지르는 철교와 증산교를 만난다. 어둠침침한 증산교 아래를 지나다보면 교각 벽면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비정규직 없는 사회'라고 휘갈겨 쓴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언젠가 노동자의 원한이 휩쓸고 지나갔음을 말해준다.

 

걷기 운동을 하다보면 유명 브랜드의 운동복과 운동화에 썬 그라스로 무장하고 이상한 팔 동작을 하며 걷는 미끈한 여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곳 불광천을 걷다보면 다른 서울의 하천보다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한낮인데도 걷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걷기운동을 나온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친근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 일바지 차림의 아주머니 색 바랜 추리닝차림의 아저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따금 전적인 걷기운동가 차림의 사람들도 보이지만 하나같이 막 일을 끝내고 아랫마을로 놀러가는 차림의 모두가 친근감 있는 한동네사람처럼 보인다.

 

조금 더 상류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그 이유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수색천은 하천의 둑이 높지 않아 주변 주택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어떤 곳은 동네의 작은 길을 건너면 바로 불광천 둔치다.

 

아무리 잘 가꾸어진 생태하천이라도 4차선 도로를 건너던지 높다란 육교를 건너야 한다면 노약자나 어린이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곳 동네들은 우리가 70, 80년대의 서울의 모습을 아직 많이 보존하고 있어 더욱 정겨워 보인다. 오뉴월 논에 피 돋아나듯이 삐쭉삐쭉 솟아오른 성냥갑 아파트들 도 이곳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단층 주택들과 3 4층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점심 먹고 불광천에 나오면 한 동네 사는 연탄 집 아저씨 쌀가게 집 할머니 세탁소 아줌마 지하 노래방아저씨를 마주치게 된다.

 

불광천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명소도 몇 개 있다. 그중 으뜸은 북한산의 웅장한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확트인 시야에 병풍같이 둘러친 북한산의 멋진 모습을 30분정도 걸으면서 감상하는 즐거움은 이곳 불광천에서 만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다.

 

불광천을 가로지르는 새로 놓은 아취형의 '해담는다리'에 위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절경은 서울시에서 '전망 좋은 장소'에 선정되었다는 안내문도 보인다.

 

 또 하나의 명소는 천변에 마련한 작은 쉼터이다. 이 쉼터는 개인이 마련하여 기증했는데 나뭇잎 모양의 3평정도의 나무판위에 기다란 통나무를 눕혀 놓아 걸터앉게 만들어 놓았다. 크기와 디자인 모두 잘 어울리는 설치 작품이다. 바닥에 제작자와 함께 '북한산과 하늘을 바라봅니다.' 라는 글도 작은 철판에 새겨있다.

 

 

"사는일이 바쁘고 힘들때

이곳에 털퍼덕 앉아

멀리 북한산과 하늘을 바라보지요.

그냥 잠시 쉬었다 가시라고 조각가가 만들었습니다."

 

불광천이 지금처럼 빈틈없이 잘 가꾸어지기 전에 이 길을 걸어 올라오면서 이 쉼터에 앉아 북한산을 바라보았을 때 조금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얼마 전 다시 찾아가본 불광천은 강남의 양재천 만큼이나 잘 치장되었다. 칼라 아스콘으로 매끈하게 포장된 길엔 유명 브랜드로 전신을 무장한 걷기 족들도 쉽게 눈에 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