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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 원정기(내 인생 최고의 여행)

Sam1212 2022. 8. 5. 17:38

몽골 초원 원정기(내 인생 최고의 여행)

 

게르 숙박은 몽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목인의 생활 체험이다.  약간의 염려와는 달리 편안한 하루 밤이었다. 서울에서 몽골 여행을 신청하며 게르에서 하룻밤은 가슴 설레며 기대했던 나만의 여정이었다. 그것은 푸른 초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하얀 고깔 모양의 원통형 텐트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밤하늘에 펼쳐지는 별들의 잔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어제 밤에 그 꿈을 이루었다.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나는 밤하늘에 더 눈길을 자주 주었다.  아쉬움이 있었다면 달이 너무 밝아 별들의 잔치가 기대에 조금 못미쳤다.  

새벽 5시 부터 일어나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캠프촌 밖으로 나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초원을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가는 수백 마리의 양과 염소 떼들의 장관을 바라보았다.

오늘 오전 관광코스는 칭기스칸 청동 기마상이다어제 캠프촌에 오면서  초원 언덕 위에 우뚝 선  큰 기마상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오늘  방문해보니 서울 광화문 보다 더 크고 웅장한 청동 기마상이다.   

칭기스칸,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전쟁영웅이다씨저도 나폴레옹도 그 앞에 서면 초라하게 보인다. 오늘의 300만 몽골공화국 국민들 그의 이름 후광으로 자존심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내가 이 여행기 제목을 몽고인들이 보면 무례하게 생각될 '원정'이란 단어를 넣은 이유가 있다800년 전 우리의 조상 고려인들은 몽고인들의 침입으로 엄청난 희생과 핍박을 받았다국제사회에서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받은 과거의 슬픈 역사를 극복하는 길은 단 한 가지뿐이다그 길은 우수한 문화와 경제력으로 상대국을 부럽게 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길이다. 가장 바보 같은 길은 문화의 힘도 경제의 힘도 키우지 못하고 과거의 쓰라린 상처만 되씹으며 상대국에게 악담을 해대는 일이다오늘 우리 원정대 21명은 영예로운 전자의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 위에 우뚝 서 초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칭기스칸의 동상. 오늘을 사는 몽고인들은 옛 조상의 화려한 과거를 팔면서 살아간다몽고 전사들의 말발굽 아래 국토가 불바다 되고 피투성이 몸으로 강화도로 진도로 제주도로 도망 다니던 조상들그 후예들이 오늘 징기스칸의 동상에 올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한국말로 크게 떠들어대며 그들의 초원을 내려다보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울란바토르 시내의 간등사와 라마박물관을 관광했다한 나라 백성의 종교는 당시대의 정신문화의 밑바탕이다. 때로는 정치권력에 핍박을 당하기도 하지만 민중의 간절한 염원을 완전히 꺽은 적은 인류 역사에 없다. 몽고의 사회주의 시대 간등사에서 쏘련에 빼앗긴 대형 불상 그리고 폐쇄 되어 사라진 수많은 사원들, 그러나 민중의 간절한 염원은 이를 다시 살려냈다잿더미로 폐허된 절터에서 온전하게 살아남은 붉은 기둥 하나. 그곳에 귀를 대고 소원을 빌면 부처님의 응답이 있다는 그들의 믿음오늘 땡볕에 서서 기둥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소원을 비는 몽골 여인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절 밖을 나와서도 간절하게 기도하는 여인의 잔영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저녁 식사 후 찾아간 울란바토르 시내서 마주친 삼성 현대 엘지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업 로고들이다. 울란바토르 중심가에 '서울의 거리'로 이름 붙인 번화가에서 마주하는서울 시내에서  보았던  우리 기업들의 로드샵 간판들이 가슴 울컥하게 만든다

800년 전 공녀로 천리 길을 끌려와 눈물을 흘렸을 고려 땅의 수많은 여인들, 오늘 가장 번화하다는 젊음의 거리를 메우고 있는 저 젊은이들 중엔 고려인의 피가 흐르는 이들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오늘 우리는 문화와 경제의 힘으로 평원을 점령해 나가고 있다.

 

이번 여행에 큰 행운 중 하나는 현지 안내를 맡은 두 몽골 처녀 지혜양과 지나양을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어도 잘하고 똑똑하고 성실하고 상냥하고 미모까지 겸비했다덕분에 몽골의 역사와 풍속을  깊이 있게 알고 이해하는 여정이 되었다. 지혜양은 한국에 1 년간 유학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 나라의 젊은이를 보면 나라의 장래가 보인다. 몽골의 두 젊은이를 바라보며 미래 몽골의 모습이 희망차 보였다. 다시 한 번 몽골리안의 세계 제패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칼이 아닌 문화의 힘이어야 한다.

 

오늘은 울란바토르 시내관광 일정이다버스로 국회의사당 앞 광장으로 나갔다사회주의 국가 또는 사회주의를 경험한 국가의 수도는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국가를 대표하는 건물 앞에 큰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정부 주요기관 건물들을 배치한다. 그리고 광장 안에는 혁명가 또는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서있다. 몽골의 수도 역시 전형적인 광장 중심 배치 구조다. 좌측으로 중앙우체국 중앙은행 시청사 박물관 우측으로는 오페라하우스 문화회관 같은 공연시설이 배치되었다. 광장 중앙엔 독립 영웅의 동상이 서있고 중심 건물인 국회의사당 정 중앙에는 역시 거대한 칭기스칸의 좌상이 광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광장 바로 앞에 있는 중앙박물관을 방문했다. 어느 나라든지 중앙박물관은 그 나라 문화의 자존심이며 나라 보물의 총 집합소다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제국이었으나 박물관 규모나 전시물들은 조금 왜소한 편이다. 로마 영국 러시아 터키와 비교하면 초라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몽골의 세계 지배 원인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 동양의 유목민 집단이 군사력으로 동양의 모든 나라들을 평정하고 서구 나라들까지 정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학자들은 유목 민족의 기동성에서 찾는다유목민은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가축들을 데리고 초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들의 거주 공간 게르는 한두 시간이면 해체하여 수레나 말 잔등에 실고 이동할 수 있다유목민은 거주 하는 땅위에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하거나 이동에 불편한 크고 화려한 장식물들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동서양의 수많은 왕국들을 정복했지만 지상의 보화에 눈독 들이지 않았다. 신라 경주의 9층 목탑을 불살랐으나 왕국의 보물들을 카라코룸이나 북경으로 반출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으면 불국사의 다보탑 석가탑도 옮겨갈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말 달려 나가는 앞길을 막아서는 자들이나 장애물들은 인정사정없이 죽이고 파괴하고 짓밟았다. 박물관 전시물들은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답게 화려하진 않았지만, 민족의 기원부터 현재 몽골공화국 까지 역사의 단계별로 관람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 되고 전시되어 있었다.

 

몽골 전통 음악 공연장을 찾아 관람했다. 어느 민족이나 희로애락 삶의 감정을 음악이나 춤에 담아 전승한다유목민족인 몽골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노래와 춤을 가지고 있다마두금 음악과 흐미라는 독특한 성대 울림의 노래를 이곳 공연장에서 정상급 연주자와 싱어에게 들어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여행 오기 전 꼭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가슴 떨리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말로 표현을 하면멀리 천산산맥 깊은 동굴 속의  천년 된 용이 동굴에서 나와 부르짖는 노랫소리라 표현하고 싶다. 바람을 탄 노랫소리가 천리 초원을 가로질러 고비 사막을 넘어 가며 휘파람 소리가 되어 들려오는 느낌 이다춤사위는 역시 북방 유목민족 답게 빠르고 경쾌했다. 특히 어깨 춤사위는 동양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빠르고 흥이 넘쳐났다오늘 한 시간에 걸친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은 동양의 다른 나라들 여행에서 경험했던 공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오늘 몽골초원 원정 45일 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공연 관람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사지 휴식 시간을 가졌다안마사의 숙련된 손놀림으로 빡빡한 일정에서 온 신체적 피로를 말끔히 풀었다.  초원에서 만리길 떨어진 동방의 무지개 뜨는 나라에서 찾아온 머리 희끗한 노인 먼 옛날 조상님들의 한을 조금 풀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